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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

게임체인저도 때론 뒤를 향한다
삼성전자 부사장
디자인경영센터 차세대디자인팀 팀장

김진수 동문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 90학번

내 인생에서 주인공은 당연히 나이지만, 내 힘이 닿지 않는 영역에서는 주조연이거나 조연, 조금 슬프게는 엑스트라 역할까지 해야 할 때가 있다. 김진수 부사장은 그럴 때마다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활시위를 뒤로 당기는 양궁 선수처럼. 멀리 뛰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걷는 멀리뛰기 선수처럼. 영화 속에 나오는 게임체인저들도 잠시 뒤를 향할 때가 있다. 괜찮다. 그럴수록 스토리는 더 흥미진진하고 극적이니깐.

꿈을 이룬 자동차 디자이너

유년 시절의 김진수 부사장은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자동차를 그렸다. 그 자동차는 아버지의 첫 차 포니였다.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며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공업디자인학과에 입학했고, 동아리 폼에서 자동차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일필휘지로 자동차 스케치를 하는 선배들을 만나고 온 날에는 더욱더 자신의 꿈을 명확하게 그릴 수 있었다.

▲ 김진수 부사장은 삼성전자에서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첫 직장은 90년대 SUV인 갤로퍼를 만든 현대정공(현대모비스)이었다. 졸업한 해인 1997년에 디자이너로 입사해 휠, 아웃사이드 미러, 스포일러 등 자동차의 파트 제품으로 디자인을 시작했고, 그다음 해 말 IMF 위환위기는 현대자동차그룹 내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 하나가 현대자동차와 현대정공의 합병이었다. 김진수 부사장은 좀 더 다양한 자동차 디자인을 다룰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하루아침에 새 조직에서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일해온 디자이너들과 손발을 맞춰야 했다. 새로운 동료들의 견제와 동료였던 현대정공의 선후배들이 회사를 하나둘 떠나는 혼돈의 상황. 김진수 부사장은 오로지 실력 하나로 스스로를 증명해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밖에 없었다.
“자동차 디자이너라면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도로교통법상의 규제 같은 내용인데요. 예를 들어 사람과의 추돌 시,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한 아웃사이드 미러의 폴딩 각도, 인체와 닿을 수 있는 부분의 범퍼 코너 라운드 엣지 등이 정해져 있습니다. 차량 내부도 마찬가지겠죠. 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크래시 패드, 스티어링 휠 등에도 디자인 규정이 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는 구현이 가능한 디자인인지를 미리 알고 작업한다면 전체적인 업무가 효율적으로 이뤄지겠죠. 유관 부서의 동료들을 찾아 귀찮아할 정도로 묻고 또 물었습니다.”
김진수 부사장은 아무리 예쁘고 새로워도 도로에서 다닐 수 없는 날카로운 엣지의 디자인, 사출을 통해 도저히 제작할 수 없는 구조, 아름답지만 도로교통법을 따르지 않는 디자인 등을 걸러내며 자신의 디자인에 경쟁력과 차별화를 더했다. 그 결과 사원 4년 차에 인테리어를 디자인하는 신규 프로젝트인 JM의 리더가 됐다. 상당히 빠른 과제 리더의 역할이었다.

fun한 챌린지 모바일 디자이너

김진수 부사장은 새로운 조직에서 잘 융화되어 실력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성취감을 주는 직업인 것은 분명했지만, 결혼은 자동차 디자이너 김진수가 아닌 개인 김진수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여느 날과 같이 새벽에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를 본 순간, 인생에서 제일 소중한 아내의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알았다. 눈물로 베갯잇을 적신 채 잠이 든 아내의 모습을 보고 김진수 부사장은 남편의 역할과 가족의 행복을 찾기로 결심했다.

▲ ‘인생 디자인은 없다’ 만족보다는 매일매일 더 나은 디자인을 고민하는 김진수 부사장

삼성전자 경력사원에 지원해 포트폴리오 심사와 실기를 치르고 남은 면접. 그런데 업무로 인해 최종 면접에는 도저히 참석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면접 관리자는 면접 순서를 마지막 대기자로 조정해 주면서 실기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지원자이니 꼭 참석하라고 당부했다. 외모를 단장할 시간도 없이 헐레벌떡 캐주얼 차림으로 들어선 면접장에는 단정하게 넥타이를 매고 블랙 수트를 입은 지원자들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면접장, 옷차림을 보고 당황한 면접관들의 표정, 그렇게 시작된 면접.

▲ 삼성전자 서울 R&D 캠퍼스, 사무실(왼쪽)과 라이브러리(오른쪽) ⓒ삼성전자

김진수 부사장은 2002년 12월에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로 입사했다. 첫 프로젝트는 워치폰이었다. 워치폰은 당시 삼성전자 내부에서 진행해본 적 없는 새로운 유형의 폼팩터였다. 3×4 키와 배터리를 스트랩에 탑재한, 지금 생각하면 손목 스트랩에 핸드폰을 채운 디자인이었다. 프로토타입이 1차로 제작되었고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전 직장에서는 인정만 받아온 디자이너였는데 프로젝트 중단은 디자이너 인생에서 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과연 내가 휴대폰을 디자인할 수 있을까. 엄청난 갈등이 있었죠. 그런데 결국에는 ‘휴대폰도 자동차랑 똑같다’는 결론이 나오더군요. 자동차 바디에 그린 하우스(차체에서 앞 유리창, 옆 유리창, 뒷 유리창 경우에 따라 지붕까지도 유리로 덮인 구조물을 지칭한다)를 들어내면 휴대폰이다. 벤츠 카브리올레나 BMW 4시리즈 컨버터블 같은 오픈카가 있다고 치면 앞유리창을 없애고, 휠을 빼고 보면 그게 휴대폰이 되잖아요. 자동차든, 휴대폰이든 디자인의 기본은 같습니다. 기본적인 조형에 충실하고, 시원하게 뻗은 라인으로 복잡함을 최소화하자. 나는 단 하나만이 존재하는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가 아니다. 나만이 좋아하는 기존에 없는 유니크하고 세상에 없던 디자인을 추구하던 나를 버리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디자인, 사용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드는 디자이너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로 결심했습니다.”

▲ 김진수 부사장이 디자인한 ‘울트라 에디션2 슬라이드폰(SGH-U600)’(왼쪽)과 ‘무명의 슬림 슬라이드폰(SGH-E250)’(오른쪽) ⓒ삼성전자

잭팟은 다음 프로젝트에서 터졌다. 김진수 부사장이 디자인한 무명의 슬림 슬라이드폰(SGH-E250)은 해외에서만 5,000만 대 이상 판매되고,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에서 삼성 휴대폰 돌풍을 일으켰다. 이듬해에는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수상하며 시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진행한 미니스커트폰으로 불렸던 울트라 에디션2 슬라이드폰(SGH-U600)은 세계 최대 모바일 박람회인 MWC에서 전 세계로 홍보되었고, IF디자인어워드, 인간공학디자인상 등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레드닷 어워드에서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최초로 최고상인 Best of Best를 수여했다. 이 상을 받은 디자이너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김진수 부사장이 유일하다.

디자인은 人프라에서 나온다

김진수 부사장은 삼성전자 입사 후부터 지금까지 약 20년간 삼성전자가 최초로 시도하는 다양한 모바일 프로젝트를 맡아왔다. 최초로 구글 OS가 탑재된 갤럭시 i7500, 한 손에 쥘 수 있는 타블렛 갤럭시 Tab 7, 스마트 워치 Gear S, VR 디바이스 Gear VR, 360도 카메라 Gear 360 등 다양하다. 그런데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결과물 뒤에는 보급형 모델, 웨어러블 디바이스, 액세서리, 양산되지 못한 제품과 함께한 시간이 더 길었다.

▲ 김진수 부사장이 맡았던 프로젝트 ‘Ruggedized폰(B2100)’(왼쪽) ‘Gear 360’(가운데) ‘Gear VR’(오른쪽) ⓒ삼성전자

“수석 그룹장이 되어도 메인 프로젝트를 도맡아 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다른 그룹과 업무가 겹치지 않으면서도 다른 많은 사람들은 관심이 없지만 조직에는 꼭 필요한 일들을 찾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Ruggedized폰(B2100)입니다. 이 모델은 삼성전자에서 최초로 방수방진 기능을 탑재한 핸드폰으로 여행용 러기지, 아웃도어 용품에 착안해 디자인한 제품입니다. 캐러비너처럼 연결이 가능한 큼지막한 연결고리, 후레쉬로 사용할 수 있는 LED 랜턴 등을 디자인 요소로 적용하고, 방수 기능과 튼튼함을 어필하기 위해 기구개발팀과 함께 솔루션을 찾았습니다. 그 결과 삼성전자의 방수방진 레퍼런스 모델이 되었으며, 5세대까지 출시되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IF디자인어워드에서 수상하며 디자인 부문에서도 인정받았습니다.”
디자인으로 온탕과 냉탕, 자동차와 모바일폰, 미국에서 삼성과 애플의 두 차례 소송을 오간 25년 차 디자이너. 디자인 하나로 일희일비하지 않고 25년의 시간을 지켜낸 산업 디자이너에게 인생 디자인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디자이너로서 본인의 결과물에 만족하는 디자인이 있다면 그건 자만이자 독이 될 수 있습니다. 늘 아쉽습니다. 제가 잘한 것이 있다면 관련 부서의 임직원을 만나서 ‘한번 해봅시다!’라고 부탁하고, 동료의 노고에 진심과 고마운 마음을 가끔은 한잔의 술로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요(웃음). 직장생활이 논리로 돌아갈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일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잖아요. 제 디자인들이 전 세계 시장에 나가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사람을 기반으로 한 人프라, 인프라가 아닙니다(웃음). 그리고 네트워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 후배님들, 반갑습니다! 인터뷰에는 공업디자인학과 김근영(20학번, 왼쪽)ㆍ강수정(22학번, 오른쪽) 학생이 함께했다.

김진수 부사장은 학부생 때 등록금을 모으기 위해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전공을 살려 미술학원에서 강사도 해봤고, 큰돈이 필요할 때는 이삿짐센터에서 짐도 날라 봤다. 그때 알았다. ‘디자인에 비하면 몸을 쓰는 일은 정말 어렵구나. 나에게는 디자인이 제일 어울리고, 재미있는 일이 되겠구나’ 그래서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바라보고 귀를 열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완성차 산업을 지나 모바일 산업의 최전선에 서면서 시대의 변곡점들을 잘 지나왔다. 여전히 디자인은 챌린징하고 재미있다. 활시위를 팽팽하게 뒤로 당겨본다. 한 스텝 뒤에서 멀리 뛸 준비를 해본다. 세상의 인사이트를 디자인에 반영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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