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영상디자인학과 다섯 명 학생이 공동 작업하고, 하준수 교수가 감독한 <중섭, 한국인이 사랑하는 화가> 미디어 파사드 초대전이 광화문광장에서 상영 중이다. 광화문을 찾는 이들에게 2023년의 멋진 밤을 선사하고 있는 다섯 명의 학생을 만나 화가 이중섭 작품의 정수를 영상으로 담아내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봤다.
Q. 미디어 파사드 초대전 <아뜰리에 광화: 2023 광장으로의 초대>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찬영 영상디자인학과 공지방에 모집 공고 게시글이 올라왔어요. 하준수 교수님이 기획하고 계신 미디어 파사드 전시전에 참여할 아티스트를 구한다는 구인 공고문이었죠. 저와 형준님은 영상 작업에 관심이 있어 작업에 참여하게 됐어요.
김준엽 하준수 교수님께서 직접 작업 제의를 해주셨어요. 우선 처음에 이야기를 들었을 때 ‘광화문광장’에 작품을 올릴 수 있다고 하니 마음이 무척 설렜죠. 그런데 설레는 마음도 잠시 작업량이 상당했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정륜이 형에게 도움을 청했죠.
임정배 수업 시간에 유화를 활용해 작품을 제출한 적이 있어요. 이번 전시에 유화를 표현해줄 작가가 필요하다며 직접 하준수 교수님께서 작업을 제의하셨어요.
Q. 지난 8월 1일부터 상영되고 있는 <중섭, 한국인이 사랑하는 화가>에 관해 소개해주세요.
주형준 이번 전시는 이중섭 작가님의 작품을 도시 공간에서 시민들이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에요. 원화 작품 27점을 총 5부로 재구성한 약 15분 30초 분량의 영상이죠. 대담하고 거친 선묘를 특징으로 해학과 소년의 천진무구함, 가족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표현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요.
Q. 다섯 명의 학생이 맡은 작업은 무엇인가요? 원화를 재해석하는 방법과 연출적인 부분에서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중점을 두고 표현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찬영 1부 ‘중섭이 머물던 풍경’을 맡았어요. 1부에 등장하는 <섶섬이 보이는 풍경>은 이중섭 작가님의 제주 생활을 상징하는 작품이죠. 시점을 근경에서 원경으로 이동시켜 관객이 이중섭 작가님이 바라봤던 제주 풍경을 공간감 있게 느낄 수 있도록 연출했죠. 제주에 있는 이중섭 미술관에 가면 실제 풍경을 볼 수 있어요. 지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고 했는데 이 점이 가장 어려웠어요.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은 이중섭 작가님이 바라봤던 풍경과 다르고, 그림에는 왜곡이 있잖아요. 상상력을 발휘해서 섬, 돛단배, 나무, 가옥 등 각각의 요소를 배치했죠. 감성을 자극하는 디테일이 좀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옥정륜 준엽이와 함께 2부 ‘편지화, 그릴 수 없는 사랑의 빛깔’, 4부 ‘은지화에 담긴 예술혼’, 5부 ‘가족, 마음으로 그린 그림’을 작업했어요. <길 떠나는 가족>, <은지화>, <현해탄>의 드로잉 애니메이션을 맡았죠. 2·4·5부는 1·3부와 다르게 2D 작업이 많은데요. 이미지로 소리가 들리는 공감각적인 효과에 좀 더 신경을 썼죠. 아무래도 2D 작업이기 때문에 원화를 최대한 살리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여겼는데요. 모든 작업이 그러하듯 예상치 못한 일이 있었어요(웃음).
김준엽 <현해탄>은 이중섭 작가님이 가족과 짧게 해후한 후 다시 이별하는 내용이 담긴 작품인데요.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닿지 못하는 그 애절함을 영상에 그대로 담아야 하는데 체임버홀의 세로가 짧아 원작보다 현해탄의 거리가 가깝게 구현됐고 애절한 마음도 덜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 부분은 3D툴을 활용해 공간에 심도를 줬죠. 정륜이형이 드로잉한 작업에 저는 리깅과 애니메이션을 맡았는데요. 2D 리깅은 드로잉을 관절별로 레이어를 나눈 후 뼈를 심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효과를 주는 작업이에요. 영상에 리듬감과 생동감이 잘 살아난 것 같습니다.
임정배 3부 ‘생의 기쁨과 슬픔’에서 <흰 소>를 표현했어요. 화가 이중섭의 작품에서 ‘소’는 일제시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매우 특별한 작품이기 때문에 부담감이 상당했어요. 무엇보다 2D를 3D로 재구성해 표현하는 작업은 아무래도 원작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는 데 한계가 있죠. 그래서 이미지의 가공과 재구성, 연출 부분에서 하준수 교수님과 여러 번 회의를 거쳤어요. 자연스러운 소의 움직임을 위해 이중섭 작가님의 여러 <흰 소> 중 소의 형태와 비례가 사실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를 선택해 모델링을 진행했고, 원화의 거친 유화 질감과 직선적 미가 살아있도록 형태를 다듬었죠. 걷고, 달리고, 고개를 하늘로 향해 드는 여러 가지 움직임을 시도해 작품과 가장 잘 부합하는 액팅을 선택했어요. 일제 강점기, 힘겹게 앞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민족을 형상화하기 위해 어두운 톤과 채도가 낮은 광활한 대지를 배경으로 삼았어요.
주형준 이중섭 작가님의 작품 27점을 3D 액자 안에 넣어 전시하는 작업을 맡았어요. 작품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레이아웃을 구성하고, 미디어아트인 만큼 관객이 보기 편하게 구성했죠.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과 대극장면의 싱크가 잘 맞도록 컷 편집 과정에서 세심한 부분을 신경 썼습니다.
Q. 이번 작업을 통해 느낀 점과 소감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모두 2D의 작업물을 3D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림의 모든 요소를 하나하나 분리해야 해요. 이중섭 작가님의 그림체가 개성이 강하다 보니 레이어를 분리하는데 헷갈리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좀 더 단순한 스케치로 구성된 습작을 찾아보며 이중섭 작가님의 표현 방식을 세밀하게 공부했죠. 학부생 신분으로 국민화가 이중섭 작가님의 작품을 움직이는 영상으로 재해석하고, 서울의 역사·문화·정치의 중심지인 광화문에 작품을 올릴 수 있어 영광이었어요. 가족, 친구, 지인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영상디자인학과 학부생들에게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다양한 작업 기회를 제공해 주고 계신 하준수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Q. <중섭. 한국인이 사랑하는 화가> 전시의 종료일(12월 13일)이 얼마 남지 않아 아쉽습니다.
모두 작업 기간이 채 한 달이 되지 않아 여름방학 동안 다들 숨 가쁘게 작업했는데 어느새 전시 종료일이 다가오네요. 하지만 아쉬움도 잠시! 이중섭 작가님을 소재로 하준수 교수님이 기획하고 저희가 작업한 또 다른 성격의 전시가 서울에서 열립니다. 실감미디어 전시인 <중섭이 그린 사랑>이 중랑아트센터에서 12월 6일부터 2024년 9월 14일까지 열리는데요. 미디어아트가 선사하는 다양한 스펙트럼과 감동이 궁금하다면 꼭 오셔서 즐거운 관람 하시길 바랍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