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기계공학부 남구현 교수
1980년에 제작된 영화 <부시맨(원제: The Gods Must Be Crazy)> 에는 칼라하리 사막에서 문명과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부시맨(코이산족)이 등장한다. 부시맨은 지나가는 비행기에서 조종사가 버린 빈 콜라병을 줍게 되고, 이로 인해 여러 가지 겪게 되는 상황들이 매우 코믹하게 그려진다. <부시맨>은 인간성 상실에 저항하는 주인공에게 투영된 고도로 물질화된 인간 문명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볼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흥행과 함께 무거운 교훈을 남긴 영화로 기억되고 있다.
영화에서 콜라병을 접한 부시맨들은 처음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영험한 물건인양 콜라병을 숭배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씨앗을 빻거나 가죽을 펼치고 옷가지에 무늬를 새기고 심지어 소리를 내는 악기처럼 사용하는 등 요긴한 기능을 가지는 물건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콜라병은 부시맨에게 주어져서 요긴하게 사용되지 않았다면, 땅에 묻혀 완전히 분해되기까지, 알려진 것처럼 100만 년이 걸리는 유리일 뿐이다. 우리와 같은 현대 문명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폐기물인 셈이다.
이 사례를 통해 되새겨 보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폐기물이라고 부르는 존재는 기능이나 가치가 모두 소진된 제품이나 상품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굳이 기억을 짜내어 40년 전 영화를 소환할 필요도 없이, 얼마 전 종영한 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에서 버려진 플라스틱 페트병이 얼마나 요긴하게 수통이나 음식물 보관용기로 쓰였는지 떠올려 보면 그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아직 못다 쓴 건전지 같은 물건들이 폐기물이라는 이름으로 버려지고 나아가 환경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을까?
뜻밖에도 답은 경제에 있다. 간단히 말해서 사용한 제품을 다시 사용하는 것보다 새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사용한 제품은 세척, 운반, 처리 등의 과정을 통해 다시 사용되는데, 어떤 재료는 제작 비용이 워낙 저렴해서 재사용의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더 싸게 새제품을 구입할 수 있을 정도다.
이렇게 재사용하는 것보다 새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더욱 경제적인 대표적인 재료 중 하나가 바로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은 무게를 기준으로 유리나 심지어 철과 같은 금속보다 결코 저렴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양이 다른 재료에 비해 월등히 적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경제성이 높은 재료이다. 예컨대 1ℓ 물을 담기 위한 수통을 만들 때 필요한 유리나 철, 플라스틱의 무게를 각각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재료의 생산 비용뿐 아니라 어떤 형상을 만드는 가공에 있어서도 매우 적은 비용이 소비되므로, 플라스틱은 다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더 싸다는 놀라운 경제 현상을 낳은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 관점에서는 플라스틱 제품을 재사용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경제 활동이라 할 수가 없다.
더욱이 플라스틱 제품은 컵이나 그릇 같은 식기류처럼 세척해서 다시 사용하는 것이 썩 내키지 않고, 유리나 금속처럼 제품이 막 생산되었을 때 그 깨끗한 외형으로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플라스틱 재료를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열이나 압력을 통해 전혀 다른 상태로 만드는, 즉 재활용을 하여야 하는데 이는 추가적인 비용을 소비시킨다. 즉, 플라스틱이라는 재료는 재사용을 하든 재활용을 하든, 그 길이 결코 녹록치 않다.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 방법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조차도 힘들면 잘 없애 버리기라도 해야 한다. 그 이유는 플라스틱이 환경에, 그리고 결국 인간에게 끼칠 수 있는 해악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은 산소와 같은 다른 물질에 의해 꾸준히 반응하여 분해되고, 다시 전혀 다른 수많은 물질로 윤회를 거듭하게 된다. 꽤 오랜 시간 분해되지 않는 물질들도 긴 시간이 흐르면서 잘게 쪼개지게 되고 잘게 쪼개질수록 반응이 가속되어 결국 분해되는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그런데 플라스틱은 잘게 쪼개지지도, 쪼개진 상태에서도 다른 물질과 쉽게 반응하여 분해되지도 않는다. 플라스틱은 기존에 자연에서 존재했던 물질들과는 달리 인간에 의해 새로이 합성된 물질로, 마치 불청객과 같이 자연에서 불편하게 오래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분해되지 않은 플라스틱이 모든 조건에서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상황, 특히 생명체와의 관계에서 악영향을 준다고 보고된 사례만 해도 이미 많다. 심지어 플라스틱이 힘들게 분해되더라도 그 과정 중에 형성되는 물질이 독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지독히도 환경에 고약한 물질임은 틀림없다.
따라서 플라스틱 폐기물은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문제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경제 문제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고, 훗날 거대한 사회 비용이라는 청구서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경제적 문제이기도 하다. 매일 같이 쌓여가는 플라스틱 폐기물로 인해 자연으로부터 여러 가지 경고를 받고 있는 우리 인류는 이 문제에 어떠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을까?
필자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묻는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획기적 대책이나 인류의 야심찬 대응 방안을 듣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직까지 문제 해결을 위한 뚜렷한 해결책은 없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답변일 것이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완전하거나 획기적인 방법은 아직까지 보고된 바 없다. 만약 그런 것이 존재했다면, 우리가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고민을 계속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문명과 기술 발전의 양상을 회고해보면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간이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는 없었다. 따라서 플라스틱이 야기하는 사회 및 환경 문제도 결국은 해결될 것이라 조망한다.
참고로 소수의 플라스틱 물질을 단순한 분자 단위로 분해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쏟아져 나오는 플라스틱 폐기물을 막대한 비용으로 재활용하거나 처리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이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플라스틱이라는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간에게 불가능한 선택지이다.
문제는 해결책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는데 환경이 플라스틱 폐기물을 수용할 수 있는 한계가 계속 다가온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플라스틱은 잘 분해되지 않고 쌓여가는데 소비량은 오히려 증가하기 때문에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소리다. 따라서 누군가에 의해 언젠가 획기적 기술이 개발되는 것만을 넋 놓고 기다릴 수는 없고, 문제 해결을 위해 더 많은 인간이 고민할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필자는 문제 해결을 위해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도 효과적인 준비는 더 많은 인간이 이 문제를 명확히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통해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방법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해 그러한 기술이 평가되고 발전된다면 결국 플라스틱 문제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경제성만 보고 핵 폐기물을 길거리에 내다 버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플라스틱이 그 정도로 위험한 물질은 아니지만,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자연과 우리 인류에게 해악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마치 작은 핵폐기물이라고 생각한다면 허투루 버릴 수 있다는 인식은 많이 개선될 것이다. 지구상에서 플라스틱을 소비하는 유일한 존재는 인간이고, 인간의 이러한 인식 변화는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첫걸음이다. 그리고 근시안적 경제성이 아닌 장기적 관점에서 플라스틱 재활용 및 친환경적 폐기에 대한 경제적 관점을 조율하고, 인센티브 등의 유인책으로 인류 집단지성이 자연스럽게 혁명적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오늘 여러분이 무심코 버린 페트병 단 하나가 백 년 후 여러분의 손자, 손녀 밥그릇에 미세 조각으로 흘러 들어갈지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반도체 공정(MEMS)을 전공으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국민대학교 기계공학부에서 <기계재료학>, <기계설계>, <전기전자공학>, <수치해석> 등과 법학부에서 <인공지능과 법률언어처리> 교과를 강의하고 있다. 플라스틱 재사용 및 재활용 분야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 왔고, 현재 국민대학교 북악인성교육센터가 지원하는 <알파프로젝트> 에서 플라스틱 재활용 활동 모임인 <플라스틱 르네상스>팀을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