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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는 가족에 대하여…
국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이연진 교수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 세계화로 인한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서 가족에 대한 가치관은 가부장제적 이데올로기의 약화, 개인주의의 만연 및 젠더 관계의 변형 등 탈전통적 변화를 겪고 있다. 하지만, 불과 20여 년 전까지도 제때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가정을 꾸리는 일은 대부분의 대한민국 구성원이 따라야 하는 대표적 생애 모델이었다. 2000년대 중반에 히트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자. 이 드라마는 애인에게 차이고 결혼정보회사에서도 노처녀로 평가절하를 당한 뒤 재벌집 아들(무려 현빈)과 우여곡절 끝에 계약연애를 하게 된 스물아홉 살 파티시에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성 고용율이 60%대에 접어들었고 평균 초혼 연령이 31.3세인 2023년의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29살의 사회초년생 여성이 결혼에 목숨 건 노처녀로 타박 받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지 몰라도, 당시 시청자들에게 선풍적인 인기였던 주인공 김삼순의 연애기는 나름 많은 이들이 공감할 현실적인 이야기였던 셈이다(2005년 대한민국 여성의 평균 혼인연령이 27.7세였다). 이상적 가족 제도 및 생애과정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점차 과거의 경험들을 낯설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 한국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가정의 형태

제도는 속한 사람들에게 존재와 행위의 정당성을 제공한다. 역사적으로도 결혼과 출산으로 탄생된 가족은 대표적인 사회적 기관으로서 개인 및 사회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고 여겨졌다. 가정 내의 성별에 따른 노동 분업은 산업화 시대에 핵가족 모델을 유지하는 핵심이었으며 젠더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근본이 되었다.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하는 가족체제에서는 남성이 노동시장에서 돈을 벌고 여성이 사적 영역인 가사를 전담하는 것이 당연시된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증가한 현 시점에서도 일과 가정 양립지표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의 가사노동시간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월등히 길어 여전히 가사의 많은 부분은 여성이 책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통적 성역할 인식은 이성애 관계를 전제로 하기에 정상적인 가족제도의 재생산 역할은 결국 이성애라는 섹슈얼리티를 중심에 놓고 이루어져왔다.

출처: 통계청 인구동향조사

최근의 통계 수치는 이상적 가족에 대한 가치관 변화를 뒷받침한다. 많은 한국 MZ 세대는 이제 결혼과 출산이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양의 책임 역시 가정의 영역을 넘어 공적 사회제도에 의해 분담되어야 할 의무라고 여긴다. 실제로 혼인 건수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도 매년 줄고 있으며 2023년 합계 출산율은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부와 상관없이 일을 계속하길 원하며 노동을 사회적 성취로 여기고 결혼과 육아를 위해 이 사회적 성취의 과정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남성들 역시 물질과 시간의 자유를 결혼과 양육을 통한 재생산의 가치보다 우위에 두기 시작했으며, 외로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감보다 차라리 더 낫다고 생각한다.

가치관의 변화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낳았다. 통계적 정상성의 범위에 드는 가족의 범주를 벗어난 다른 가족의 형태 (한부모 가족, 동거 가족, 무자녀 가족, 1인 가구)는 상징적 지표로서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보수적’ 추정과 달리,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한부모 가족의 양적 증가는 급속하지 않지만 그중 여성 한부모 가정의 비율은 늘고 있으며, 동거 커플 및 딩크족에 대한 주목도 역시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은 2020년 이래 1인 가구 600만 시대에 돌입하여 100명 중 12명이 1인 가구로 살고 있으며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의 비중은 2045년 37%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1인 가구 생활자의 고령화 현상 및 이혼과 별거로 인한 40~60대의 1인 가구 증가와 함께 최근 10년간은 1인가구로 진입하는 20대 이하의 증가가 두드러짐을 알 수 있는데 이 현상은 젊은 세대의 결혼 의향이 줄어들며 자발적 의지로 1인 생활을 장기간 지속하려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싱글라이프를 표방하는 1인 가구의 삶이 광범위한 문화 트렌드의 한 부분이 되어 감에 따라 나홀로 소비가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필연적 소비 경향임을 인식하는 전략적 사고 역시 필요함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동성 커플 및 비혼 동거 가족을 비롯한 다양한 가족 구성의 실태에 대한 통계자료는 아직 부족하다. 부족한 통계자료는 정책의 미비로 연결되며 정책의 부재는 복지의 사각지대를 만든다. 이는 가족 구성원 내 관계 및 가족과 사회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다양한 환경에 대해 사회가 더 큰 관심을 쏟을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1인 가구가 증가함에 따라 전통적 핵가족 단위의 삶의 질 향상과 재생산 기능을 중심으로 설계된 가족정책들의 지향점이 재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구성원 개인의 자율적 선택과 공적 돌봄을 중시하는 정책으로의 변화가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결혼과 출산에 대한 전통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에 대한 편견 및 정책적 차별을 개선할 수 있는 법적 제도를 마련하고 구성원들의 사회적 권리를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공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결혼이라는 전통적 제도 안에서만 정당성을 찾을 수 있었던 기존의 가족 구성을 넘어서 빠르게 변화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 및 역할을 아우를 수 있는 정책 욕구가 증가하고 있다. 현재의 우리 모습이 낯설어질 미래 사회의 모든 가족구성원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소수를 포용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가족의 필요성을 경청하기 위한 열린 정책적 아이디어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국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이연진 교수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에서 학사학위, 컬럼비아대학교(Columbia University)에서 사회정책 석사, 펜실베니아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 후 홍콩대학교(University of Hong Kong)에서 사회정책을 가르치는 조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현재 국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다양한 사회 현상 및 건강 불평등 관련 정책 연구에 매진하고 있으며, 브라운대학교(Brown University)와 협력하여 다양한 바이오마커(biomarker: 일반적으로 단백질이나 DNA, RNA, 대사 물질 등을 이용해 몸 안의 변화를 알아낼 수 있는 지표)와 인구 사회학과의 융합 연구 개발을 수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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