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전공 이혜경 교수는 오래전부터 연극과 다양한 분야와의 융합 프로그램을 시도해왔다. 2017년 2학기부터 한국역사학과 김영미 교수와 함께 두 가지 수업을 진행했다. 이번에는 사회학과 최항섭 교수와 함께 ‘기억과 기념’이라는 주제로 팀팀Class 수업을 진행했다. 두 교수 모두 융합 교육의 중요성을 학생들이 인지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입을 모았던 이번 팀팀Class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혜경 교수와 최항섭 교수가 함께한 이번 팀팀Class의 제목은 ‘기억과 기념의 사회적 퍼포먼스’다. 최항섭 교수는 기억과 기념은 사회학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기억과 기념을 통해 작게는 가족 단위가, 크게는 국가가 통합되기 때문이다. 기억과 기념은 사회적으로 수많은 이미지와 스토리를 통해 다음 세대에게, 문화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이혜경 교수 역시 이번 수업을 기획하기 전에 기억과 기념의 스토리텔링에 대해 연구와 창작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국의 근현대사 소재들로 공연을 준비하던 중 미디어사회학 전문가인 최항섭 교수님과 함께하면 학문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의미 있을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수업은 강의, 공동체 실습, 현장 답사, 작품 감상, 공연 발표까지 총 다섯 단계로 진행됐다. 기존 강의로만 이루어진 수업과 다른 행보를 걷는 것이다. 최항섭 교수는 이번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협업을 통한 공동창작의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요즘 학생들이 협업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사실이에요. 서로를 배려하며 도움을 주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특히 다른 학생들의 활동이 자신의 성적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민감하죠.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경쟁 체제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협업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볼 기회가 없었어요. 학문의 근본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인데, 한국의 교육체제에 사람은 내가 이겨야 할 경쟁 대상으로 밖에 인식되지 않아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대학에서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팀팀Class를 통해서 학생들이 협업을 경험하는 소중한 기회가 됐을 거라 생각해요. 기존의 서열적 성적 평가 제도가 아닌 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성적 평가 제도를 팀팀Class에서 선택한 점도 중요한 변화였어요.”
‘기억과 기념의 사회적 퍼포먼스’ 수업은 한 학기의 활동을 연극 공연으로 발표하는 것이 목표다. 그 결과로, 지난 6월 12일 수요일 국민대학교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다. 총 5개 팀 학생들은 이번 학기 중에 100주년을 맞이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역사에서 소재들을 자유롭게 선택했다. 이혜경 교수는 “우리의 역사가 지금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 사회는 이런 중요한 사실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념하는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었다”고 한다.
“요즘 학생들은 대중 매체를 통해서 역사를 많이 접해요. 그래서 역사적 내용들에 대한 사료를 직접 찾고, 미디어 보도들을 참고해서 스토리를 만들어보도록 했어요. 요즘 역사를 ‘기억 전쟁’이라고 하는데 역사 해석의 다양한 논쟁 속에서 근현대 역사를 입체적으로 공부하고, 창의적으로 재구성하며, 팀원들과 협업하고, 관객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도록 하는 것이 포인트였어요.”
이를 위해 이 교수와 최 교수는 학생들과 현장학습을 진행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서대문형무소, 백범기념관, 효창원, 경교장 등을 학생들과 함께 직접 둘러본 것이다. 이밖에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을 다룬 뮤지컬과 연극, 영화 감상을 통해 개인과 역사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배우는 시간도 마련했다. 최항섭 교수는 “현장 학습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기존 수업체계에서는 교수가 학생들을 데리고 강의실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어요. 하지만 이번 팀팀Class를 통해서 현장 경험을 할 수 있어 학생들에게 큰 경험이 됐을 거라 생각해요. 수업도 중요하지만,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장소, 공간 등을 직접 경험하고 이를 통해 이번 연극을 준비했다는 것이 큰 의미를 지녔죠.”
두 교수는 서울에서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명소들이 국민대학교와 가깝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인식할 수 있게 된 것도 부수적인 성과 중 하나라고 입을 모았다. 게다가 버스 대절, 보험 가입 등을 통해 좀 더 효율적으로 현장 경험이 가능했다.
학기 말 공연을 위해 연극 장르가 생소한 사회학과 학생들도 대본을 쓰고 극장에서 연습하면서 연극을 준비했다. 두 교수 모두 학생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했다는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이혜경 교수는 “사회학과 학생들이 연극이 생소한 것처럼 연극전공 학생들도 사회학 이론 수업이 어색했을 것”이라며 두 전공의 융합 과정을 설명했다.
“연극전공 학생들은 설문조사, 통계 작업, 미디어 이론 수업을 통해서 연극 활동에 도움이 될 관객 조사 방법과 매체 이론 등을 배웠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사회가 기념해야 할 사건을 우리 학교 학생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문항을 만들어서 120여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연극전공 학생들이 사회학과 학생들과 설문 작업을 진행한 경험은 후에 공연 기획이나 마케팅 등의 분야로 진출할 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최 교수는 “일반 연극이 아닌 사회학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로서, 청년들의 시각에서 역사적 사실들을 다시 생각하게 해보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했다. 최항섭 교수는 “학생들이 처음 하는 수업이라 부담도 많이 되고 불안했을 텐데 교수들을 믿고 따라와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와 완전히 다른 분야에 대한 경험 자체가 사회에 나가서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혜경 교수 역시 “대본 창작과 연습을 경험하며 관객 앞에 섰다는 사실만으로도 사회학과 학생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이라며 “전공 분야는 다르지만 미래를 고민하는 청년이라는 정체성, 사회적으로 기억하고 기념해야 할 역사적 사실들을 공유한다는 사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등을 통해 학생들이 하나가 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는 소감을 남겼다.
사회학적 미디어이론과 조사방법론을 배우고, 역사적으로 기억하고 기념하는 사건들로 연극을 창작한 팀팀Class. 학생들이 각자의 전공을 융합한 수업을 통해 어떠한 인재로 성장하게 될지, 벌써 미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