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림 동문은 삶의 반경에서 작품의 재료를 찾는다. 실, 섬유, 가죽 등을 감고 꿰고 쌓으며 1분, 1초를 허투루 쓰지 않고 정직한 노동을 쌓아 올린다. 단단한 일상이 예술로 치환되는 경이로움은 지극히 평범하고 규칙적인 행위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시간의 비가 내린다.
삼청동의 가을은 짙고 선명하다. 가을을 즐기려는 외국인 관광객으로 가득한 삼청동의 평일, 신혜림 동문은 번잡함의 틈을 비집고 작업실로 매일 출근한다. 어느 후원가로부터 지원받아 쓰고 있다는 삼청동의 작업실에서 신혜림 동문은 금속을 갈고, 두드리고, 실, 섬유, 가죽 등을 감고, 꿰고, 쌓으며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
“단순한 작업을 하다 보면 명상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1차원적인 작업이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하죠.”
신입생 시절, 강의실 대신 마젠타 밴드 동아리방으로 직행한 업보는 전공 선택에 장애가 됐다. 원하던 도자공예를 전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신혜림 동문은 휴학을 결정했다.
“미대 입시생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였어요. 한 선배의 제안으로 김여옥 교수님의 작업실에서 아르바이트하게 됐는데 금속을 두드리고 광내는 단순한 작업에 빠져 복학을 했죠. 학교로 돌아갈 땐 분명 작업에 집중할 생각이었는데 복학생 선배였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연애를 시작했어요. 또 학업이 뒤로 밀렸죠.”
음악에, 연애에 밀렸던 학업이 1순위가 된 것은 졸업을 앞둔 4학년이 되어서였다. 누구보다 작업에 진심이었지만 성적은 좋지 않았다. 학부생 때도 지금 내놓는 작품처럼 금속에 다양한 재료와 색감을 더하는 방식으로 작업했기 때문이다.
“다른 학생들은 금속에 광내고 용접을 했어요. 교과 과정에 제 작업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저에게 한계가 느껴져 유학 가고 싶었어요”
신혜림 동문은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국내의 한 패션 대기업에 취업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유학자금을 모으고 작업도 할 생각이었다.
신혜림 동문은 5년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차고에 딸린 공간을 임대해 작업실을 차렸다. 유학자금도 개인 작업물도 없었다. “‘작업실이 있는 삶’을 오랫동안 꿈꿔왔어요. 작품에 오롯이 몰두하며 홀로 작업하는 그 고요함이 ‘제가 원하는 삶’이라는 것을 알았죠. 어린 나이에 돈보다 작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일찍 깨달아 내릴 수 있었던 결정이었어요.”
신혜림 동문은 개인 작업을 하며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금속공예학과에 진학했다. 학부 때 성적이 뒤에서 두 번째였다면 석사 과정은 매우 우수했다. 다양한 재료에 탐닉하며 장신구 분야에 두각을 보였고, 석사 과정 졸업 후 바로 국민대학교 금속공예학과에서 시간강사를 거쳐 겸임교수로 임용됐다.
“두 아이를 출산하고 그해 6개월을 두 번씩 쉰 것을 제외하면 15년간 대학 강단에 섰어요. 제 작품이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했죠.”
임신과 출산, 육아로 많은 여성 작가가 작업을 쉬거나 놓게 되는 시기에 신혜림 동문은 일상에서 접하는 재료에 눈을 돌려 신혜림만의 정체성을 구축했다.
“패션업계에 종사하며 사 모은 옷과 가방을 정리해 공예 재료로 삼았어요. 섬유와 가죽 등을 일정한 크기로 색감 있게 잘라 층층이 쌓았죠. 타이벡은 아토피가 있는 아이의 방수이불에서, 고무 소재의 플라스틱 비닐은 샤워커튼에서 집 안에 있는 사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재료를 찾았죠. 공예 재료를 찾는 과정은 상당히 치열하고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애정이 있어야 파고들 수 있어요. 저는 아이들이 있는 집이 가장 소중하고 애틋하기 때문에 집 안에 있는 것들을 하나둘 꺼내어 들여다보았어요.”
신혜림 동문은 ‘엄마’와 ‘작가’ 두 가지 역할을 해내기 위해 작업 방식에도 변화를 줬다. 아이가 뛰어노는 놀이터, 아이를 기다리는 차 안에서도 재료가방을 가지고 다니며 작품에 필요한 요소를 미리 작업해 뒀다.
“전시 요청이 오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미리미리 밑 작업을 해놓았어요. 두 아이 모두 엄마 손을 덜 타는 나이가 됐지만 지금도 재료 가방을 두고 있죠. 재작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놀이하는 사물>> 전시에도 재료 가방에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가공된 작업을 꺼내어 썼어요.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요청받은 전시는 다 해냈는데요. 육아든 전시든 우선 해내고 해냈으면 만족하며 살아왔어요. 지금까지 10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200회 이상의 단체전에 참여했는데요. ‘해낸다’는 마음가짐이 지금의 성취를 가져다준 것 같아요.”
신혜림 동문은 올해에만 서울, 뉴욕, 런던, 뮌헨 등 6개 초대전시회에 참여했다. 12월에는 라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장신구에서 평면작업, 설치미술까지 외연을 넓혀온 신혜림 작가의 치밀하고 밀도 있는 우주를 만나는 기회다.
“25년의 작가 생활을 총망라하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전시예요. 그런데 마냥 설레고 즐겁지만은 않아요. 4개 층을 채울 작품을 전부 새롭게 작업해야 하는데요. 앞으로 저에게 닥칠 노동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요.”
공예는 한 획으로 완성할 수 없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조수를 쓰지 않고 상당한 양의 작업을 홀로 완성한 신혜림 동문은 긴박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예기치 않은 변수를 해결하며 기도하듯 작업에 매달렸다.
“실로 작업한 작품들이 있는데 이 작품은 기도의 시간이 필요할 때 했던 작업이에요. 초를 켜고, 실을 녹이고, 감는 굉장히 단순하고 지루한 작업인데요. 사람 말소리가 나오는 라디오 소리도 듣는 것이 힘들어 적막 속에서 작업하죠.”
감고 또 감고, 시간이 고스란히 결이 되는 신혜림 동문의 작품은 압축된 시간의 퇴적층이 아름다운 측면을 이룬다. 단순노동이 가미된 작품에 신혜림 동문은 <시간의 비가 내린다>라는 제목을 붙이는데 지난 25년간 그의 작품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제목이다.
“첫 아이가 배 속에 있을 때 작은 집에 살았어요. 집이 작으니 효율적으로 재료를 정리해야 하잖아요. 그 방법이 적층이었고, 적층은 제 작품을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죠. 제가 비를 되게 좋아해요. 해가 뜨면 비는 사라지지만 땅속으로 스며든 비는 식물을 자라게 하고, 식물은 흙을 단단하게 하죠. 지금 저에게 닥친 상황들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저를 단단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저에게 시간의 비는 그렇게 내려요.”
‘돈보다는 꿈을 좇고, 일하는 엄마여서 다행이다’고 하는 신혜림 동문의 말은 작가의 언어라기보단 평범한 일상을 사는 범인의 언어에 가까웠다. 치열하게 보낸 25년의 하루를 상상하며 그 시간을 엮어본다. 정직하고 규칙적인 일상, 셈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 영감의 싹을 틔우기까지. 신혜림 동문은 오늘도 고요하고 치열하게 일상의 시간을 쌓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