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교양대학 김한승 학장
교양교육이 대학 교육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교양교육은 고등교육에 필요한 기본 역량을 배양하고, 학과 중심 체제를 뛰어넘는 학문 융합의 장이기 때문이다. 전공의 칸막이를 넘어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사를 반영한 맞춤형 교육 모델을 제시하는 국민대학교 교양대학의 김한승 학장을 만나 교양교육이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대학교가 집이라면 교양대학은 현관과 같다. 신입생 모두가 교양대학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다. 또한 각 전공이 방이라면 교양대학은 거실과도 같다. 교양대학을 통해 서로 연결된다. 한마디로 교양대학이 융합의 장인 것이다. 김한승 학장은 이렇듯 그 의미가 단 번에 와 닿는 비유로 교양대학을 소개했다. 그는 또 다양성을 확보하면서도 체계화된 교과목 구조를 국민대 교양대학의 강점으로 꼽았다.
“교양대학은 수많은 교과목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들의 개인적인 목표를 반영한 맞춤형 교육을 추구해요. 주제별로 교과목을 모아놓은 모둠제가 대표적이죠.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모둠을 선택해 장래 설계에 도움 받을 수 있습니다.”
교양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수요가 많은 분야에 대해 ‘교양 모둠’을 운영한다. 교과목의 분야·연계성·융합효과 등을 고려해 공공인재, 문화예술, 철학, 고전 등을 주제로 함께 들으면 좋을 수업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공직 적격성 평가나 로스쿨 입시에 필요한 LEET는 관련 지식을 묻는 시험이 아니라 비판적, 논리적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에요. 결국 교양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 확인하는 거죠. 이렇게 공공부문에서 원하는 역량과 소양을 갖추는 데 필요한 수업을 모은 게 공공인재 모둠입니다. 공무원이나 법조계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공공인재 모둠 교과목을 이수한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국민대학교는 2017학년도 이후 입학생부터 졸업 시 부전공과 심화전공을 필수로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교양대학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관심과 특성을 반영한 체계화된 프로그램과 학습설계 지원을 위해 교양심화전공을 신설했다. 모둠제를 기반으로 하는 교양심화전공은 현재 철학 모둠인 필로소피아만을 심화전공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2021년 1학기부터 새로운 전공이 추가된다. 김한승 학장은 앞으로도 교양심화전공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K컬쳐라는 명칭으로 심화전공을 새롭게 개발했어요. 최근 세계적으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요. 단순한 한류 바람에 편승하는 것이 아닌, 좀 더 심층적으로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교육과정으로 만들었습니다.”
K컬쳐 교육과정에는 역사, 정치,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비롯해 명원민속관에서 실시하는 다례 수업도 포함된다. 대중문화 수업에 깊이를 더하고 한류를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심리학과 고전 모둠도 심화전공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김한승 학장은 교양 수업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지금처럼 다양한 배움을 얻을 기회를 다시 만나기는 어렵다고 말이다.
“전공 실력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양 수업을 통해 지혜를 쌓아나가는 것도 20대에 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에요. 우리는 삶의 연륜이 충분히 쌓인 후가 아닌 아직 미숙한 젊은 시절에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더 나은 선택을 위해선 다양한 경험을 통한 자기 역량 강화가 매우 중요합니다.”
김한승 학장은 ‘생각을 생각하는 능력 육성’을 교양대학의 교육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앞에 놓인 생각은 인류 지성의 거인들이 남긴 업적, 즉 그들의 지혜를 뜻한다. 말하자면 생각을 생각하는 능력이란 오랜 지혜와 지식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메타적 사고를 일컫는다.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생들은 남의 생각을 정리하고 요약해서 분석하죠. 이것을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지성인이라면 정리된 타인의 생각을 수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분석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가져야 하죠.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 또한 필요해요.”
김한승 학장은 생각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려면 문해력을 키워야 한다고 설명한다. 교양대학이 운영하는 글말교실의 설립 취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학부 재학생들의 글쓰기, 말하기 및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해 1:1 코칭과 특강을 제공하는 비교과 프로그램인 글말교실은 국민대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글말교실은 교양대학 전임교원들이 담당합니다. 자신이 쓴 글에 대해 피드백을 받을 수도 있고,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글쓰기에 도전해보고 싶다면 접근방법부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어요.”
글쓰기는 생각까지 포함하는 행위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논리적인 사고의 표현은 사회인의 기본 소양이지만 단기간에 갖출 수 있는 능력은 아니다. 김한승 학장은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이라면 글말교실이 좋은 훈련 장소가 되어 줄 거라고 적극 추천했다.
현대 사회는 하나의 전문 지식으로 맞설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여러 곳에 흩어져있는 지식이나 역량을 융합하고 활용해 새로운 콘텐츠를 창의해야 하는 시대다. 고정화, 정형화된 틀을 벗어나 변화에 스며들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교양대학의 역할이라고 김한승 학장은 말했다.
“교양대학이 곱하기 기호가 되는 거예요. 학생이 가진 능력에 교양을 곱해서 역량을 배가 시킬 수 있도록 말이죠. 전혀 다른 교양과 전공이 혼합돼 전에 없던 결과물을 창조해 내거나 그 가운데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도 있어요.”
교양대학은 학과 중심의 대학 교육만으로는 담아 낼 수 없는 학생들의 고민을 함께 나눈다. 그리고 무엇이 탁월한 교육인지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2018년 교양교육설계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소는 다양한 전공의 교양대학 선생님들을 한 데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연구소에서 북악교양이라는 제목으로 교원들이 참여하는 저널 발행을 계획 중이에요. 학술적인 내용도 포함하지만 무엇보다 교원 간의 소통에 큰 목적이 있어요. 교양대 선생님들의 저서나 수업을 소개하고 각 전공 분야의 이슈를 공유하며 교양 수업의 트렌트나 방향을 제시하는 거죠.”
교양교육 발전을 위한 교원의 노력이 양질의 수업을 만들어내고 그 혜택은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교양교육 강화는 대학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김한승 학장은 교양수업의 질적 개선은 교양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쉽고 재밌는 것만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듣기 편하고 쉽게 학점을 얻을 수 있는 수업만 들으려 하면 결국 그런 수업만 남을 수밖에 없어요. 대학은 학문적 근거가 약하고 내용이 부실한 수업을 덜어내고자 노력하는데 학생들이 그런 수업만을 찾는다면 양질의 수업이 줄어들 수밖에 없거든요. 자신에게 꼭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분야가 무엇인지 찾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그걸 찾아서 알려주고 학생들이 배움을 얻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양대학이 해야 할 일이라는 김한승 학장. 교육의 질과 수준을 높이고 유지하기 위한 교양대학의 치열한 고민은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