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산업은 21세기 초반에 눈부신 성장을 보였다. 2020년 12월 발표한 ‘BoF(Business of Fashion)’와 ‘맥킨지&컴퍼니(McKinsey & Company)’의 글로벌 패션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글로벌 패션시장 규모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시장 상황이 다소 위축되었음에도 약 2조 5천억 달러(약 2,752조 5천억 원)로 추정되었다. 이러한 글로벌 패션 산업의 시스템적 혁신과 팽창은 전례 없는 풍족한 의생활 및 패션 향유의 혜택을 대중들에게 제공하였고 무엇보다 많은 일자리 창출을 가져 왔다. 즉 전 세계적으로 7천 5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패션 산업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2000년에서 2014년 사이 평균 소비자가 60% 더 많은 의류를 구매하면서 전체적으로 의류 생산량은 두 배로 증가하는 등 패션산업의 호황을 가져왔다. 하지만 이에 따른 대량 생산·소비는 자연을 파괴하는 화학 폐기물, 의류 폐기물 양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는 역기능도 가져왔다. 시스템 혁신 덕분으로 실현된 가속화된 패션제품의 생산과 의류 소비의 증가는 한편으로 다양한 환경 문제와 연결된다.
프랑스 자연환경연합 ‘노트르플라넷(notre - planet)’은 섬유산업의 탄소 배출량이 항공기와 선박의 것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발표했다. ‘UN 환경 프로그램(UN Environment Programme)’은 최근 보고서에서 섬유/패션산업은 전세계 물 소비의 20%, 탄소 배출량의 8-10%를 차지한다고 발표했다. 한 벌의 청바지를 만드는 데에는 1kg의 면이 필요한데 그 생산 과정에서 약 7,500-10,000L의 물이 필요하다. 이는 한 사람이 10년 동안 마실 수 있는 양이다. 이외에도 염색 등 제조 과정에서 추가로 소비되는 물의 양과 그 환경에의 영향은 사실 파급효과를 부인할 수 없다. 순환 경제 전문 연구기관 엘런 맥아더 재단은 섬유 염색이 물을 오염시키는 세계 두 번째 요인이라는 보고서를 펴낸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합성섬유의 오염 문제가 심각하다. 매년 바다에 50만 톤의 플라스틱을 배출하는데 이는 생수병 500억 개와 맞먹는 양이다. 착용 후 의류 제품의 폐기 시에도 많은 문제가 뒤따른다. 전 세계적으로 거의 1,000억 개의 의류 품목이 매년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20년 전보다 400% 더 많이 만들어진다. 그 중 3분의 1은 결국 매립지에 직행하고 이는 매년 7%의 비율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환경오염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과 이에 따른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추구하는 구체적인 기업들의 실천이 패션 산업 영역에서도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업계에서는 이러한 패션 산업이 유발하는 환경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를 줄이기 위해 친환경 천연 재활용 소재를 활용하며 윤리적이고 지속가능한 패션을 지향하려는 노력들이 활발하다. 일반적으로 ‘친환경 패션 (eco-friendly fashion)’이라는 개념으로 알려진 이러한 기업들의 노력은 ‘지속가능한 패션(sustainable fashion)’, ‘업사이클링 패션(upcycling fashion)’, ‘컨셔스 패션(conscious fashion)’, ‘슬로우 패션(slow fashion)’, ‘에코 패션(eco fashion)’ 등의 다양한 용어 및 개념들과 혼용되고 있다.
친환경 패션 흐름의 선두로 꼽히는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Patagonia)는 창립자 이본 쉬나드의 환경에 대한 인식과 소신있는 기업 철학으로 혁신에 앞장서 왔다. 파타고니아의 ‘Don’t Buy this jacket’의 광고는 이 기업의 소신의 산물이다.
파타고니아는 제품의 60%가 재활용 소재를 이용해 생산되었음에도 이 과정에서 20파운드의 탄소배출이 되었고 이는 완제품 무게의 24배나 되는 양이라고 스스로 밝혔다. 지금도 자사 제품의 수선 서비스 지원과 함께 재활용과 대를 물려 입는 트렌드를 확산하기 위한 아름다운 그린 마케팅도 적극 추진 중이다. 파타고니아는 지속적으로 옷의 이야기를 기념하고 옷을 더 오래 입도록 장려하며, 옷 수선과 재활용을 쉽게 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중고제품 구입 판매 교환을 도와주고, 마침내 더 입지 못하게 된 옷도 파타고니아에 보내면 이를 받아 새 원단으로 재활용한다. 파타고니아는 마케팅만 친환경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친환경적인 제작에도 적극적이다. 가령 2020년 FW시즌의 ‘스냅티’는 100% 재활용 폴리에스터 신칠라 플리스 원단으로 만들었으며,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공장에서 생산되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스위스 업사이클링 패션 기업 프라이탁(Freitag)은 트럭의 방수천, 자동차의 안전벨트 등 버려지는 폐품을 재활용하여 전 세계 단 하나뿐인 디자인의 가방을 만든다. 프라이탁 공장에서 나오는 에너지도 재활용하여, 공장의 50%는 재활용열로 운영되며, 연간 140일 이상이 비가 내리는 스위스 특성을 이용해 빗물을 받아 가방 제작에 필요한 물의 30%를 빗물로 활용하고 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ADIDAS)는 해양환경보호 단체인 팔리 포 오션스(Parley for Oceans)와 손을 잡고 재활용 플라스틱 폐기물을 이용해 만든 신발 생산을 추진한다. 최소 50% 이상의 팔리 오션 플라스틱(Parley Ocean Plastic: 해양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활용한 소재)을 함유한 고성능 재생소재 프라임블루(PRIMEBLUE)의 적용으로 2022년 대중을 대상으로 한 상품라인 출시를 기획 중이다.
이러한 친환경 패션의 움직임은 이제 럭셔리 패션에서도 예외가 아닌데, 친환경 패션에 가장 적극적인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스텔라 맥카트니(Stella McCartney)는 매 컬렉션 마다 다양한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친환경 패션을 시도해왔으며 그 일환으로 ‘AtoZ Manifesto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는 A부터 Z까지 ‘Accountable(책임 있는)’, ‘Zero Waste(제로 웨이스트)’ 등 26개의 알파벳으로 만들어낸 26개의 단어로 지속가능한 패션에 대한 가치를 추구하는 협업을 통해 컬렉션으로 발표한다.
버버리(Burberry)는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하기 위해 출시한 ‘Rebuberry EDIT’컬렉션을 통해2022년까지 모든 아이템에 친환경 소재를 포함할 계획임을 발표했고, 재생 폴리에스테르 100% 소재의 의류 커버백을 사용한다. 또한 버버리의 시그니처 오크(signature oak) 색 포장재는 국제삼림관리협의회(Forest Stewardship Council, FSC)에서 인증한 재사용 및 재활용 가능한 커피 컵 재생소재를 활용했고, ‘행거 테이크백(Hanger take-back)’ 프로그램으로 버려진 옷걸이를 재사용한다. 프라다(PRADA)는 기존에 사용하는 나일론 소재를 모두 해양 플라스틱 폐기물로 만든 재생 나일론으로 대체하려는 다양한 제품 제작 혁신을 추구하고, 이와 관련해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과 협업한 컨텐츠도 제작했다.
사회적인 이슈에 누구보다도 민감한 할리우드 또한 이러한 패션계의 변화에 호응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패션의 중요성을 알리자는 취지에서 '에코 에이지(Eco-Age)' 설립자이자 배우 콜린퍼스의 아내인 리비아 퍼스가 만든 '그린 카펫 챌린지(Green Carpet Challenge)’는 할리우드 시상식 레드카펫을 친환경으로 물들인다는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제인 폰다는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화려한 시퀸 장식의 레드 드레스를 입고 우리나라 영화 <기생충>의 작품상을 시상하며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는데, 이 드레스는 그녀가 2014년 칸 영화제에서 착용했던 드레스였다. 이러한 레드카펫의 움직임은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과의 협업으로도 이루어지며 브랜딩으로 연결된다. 티모시 살라메는 2020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까르띠에(Cartier)의 빈티지 브로치와 해양 플라스틱, 어망, 섬유 폐기물로 만들어진 프라다(PRADA)의 재활용 수트를 선보였고, 레아 세우드는 오가닉 실크 파유(faille)로 제작한 루이비통(LOUSI VUITTON)의 친환경 드레스를 입었다.
엠마 왓슨은 꾸준히 지속가능한 패션에 대한 목소리를 내왔는데, 2016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열린 ‘멧 갈라 패션쇼’ 레드카펫에서 캘빈 클라인(Calvin Klein)과 에코 에이지(Eco-Age)의 협업에 의해 플라스틱병을 재활용해 제작된 드레스를 입었고, 2017년 뉴욕 트라이베카 영화제에 착용한 버버리(Burberry)의 화이트 오프숄더 드레스는 엄격한 국제 유기농 섬유 기준 GOTS(Global Organic Textile Standard)의 100% 인증을 받은 실크로 제작된 친환경 지속가능 패션이었다. 이외에도 최근 UN에서 연설한 방탄소년단 또한 국내 패션기업 코오롱FnC의 업사이클링 브랜드 ‘래코드(Re;code)’의 재활용 수트를 착용하고 제76차 유엔총회 특별행사에 참석하며 지속가능성에 대한 UN의 의지를 지지했다.
불과 수백 년 전까지만 해도 인류의 오랜 숙원은 어떻게 하면 많은 옷을 생산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고, 이것이 산업혁명 이후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기술 혁신 덕분에 마침내 패션의 민주화와 대중화를 통해 대중이 양질의 의생활을 향유할 수 있게 된 것이 불과 반세기 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너무나 풍족한 패션 생산 시스템의 수혜가 오히려 지구의 환경에 독이 되는 상황이 된 현실이다. 지속가능한 패션 소비생활은 이제 기업들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몫이기도 하다. 앞서 소개한 의식 있는 패션(conscious fashion)은 소비자의 시각의 변화도 수반하며, 패스트 패션(fast fashion)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슬로우 패션(slow fashion) 또한 생산과정뿐 아니라 소비과정에서의 변화의 흐름을 지향한다.
소비자들은 꼭 필요한 옷만 구입하여 오래 잘 입는 습관뿐 아니라, 옷을 사용한 후 폐기하는 작은 습관에서도 환경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가령 폐기되는 의류 제품은 다양한 방식으로 버려지는데, 헌 옷 폐기함에 버려진 옷들은 일부 재활용 되지만 95%정도는 대부분 아프리카 등의 국가로 수출되고, 여기서 중고 시장에서 절반 정도 판매된 후 나머지는 소각되거나 해당 지역에서 그냥 폐기되어 심각한 하수와 자연의 오염을 유발한다. 석유·석탄을 원료로 뽑아낸 합성섬유들로 만들어진 의류들이 썩지 않고 미세플라스틱이 돼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 되는가 하면, 버려진 옷들을 태울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지구 온난화에도 영향을 준다.
유럽연합 경제위원회(United Nations Economic Commission for Europe, UNECE)의 사무총장 올가 알가예로바(Olga Algayerova)의 말처럼 이제 지속가능성이 다음의 패셔너블한 트렌드가 되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Make sustainability the next fashionable trend”). 아마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삶의 방식을 바꾸고 미래 세대가 누릴 수 있는 건강한 환경 개발에 참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가능한 오래 입고 나눠 입고, 할 수 있다면 자연에서 썩어 분해될 수 있는 천연재료의 옷을 입는 방안도 고려되어야 한다. M세대와 Z세대의 가치소비 트렌드는 이러한 친환경패션의 확산에 든든한 그린라이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