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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폭력성을 제약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
정치외교학과 홍미화 교수
 

‘All is fair in love and war’

통상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 여겨지는 ‘사랑과 전쟁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정당화된다’ 또는 ‘사랑과 전쟁에 있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 영미권의 오래된 속담이다. 박사과정 재학 중 로스쿨에서 수강한 전쟁법 수업에서 교수님이 칠판에 이 속담을 크게 쓰고 ‘과연 그러한가?’ 학생들에게 반문하는 것으로 첫 수업을 시작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전쟁은 인류의 역사에 항상 존재해왔다. 국내정치에서의 중앙정부와 같은 권위체가 없는 무정부상태의 국제정치에서 행위자 간에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물리적인 폭력에 의존하는 행동 패턴은 역사에서 흔하게 관찰할 수 있다. 동시에 전쟁이 인간에게 주는 고통과 참상을 직접 경험하면서, 인류는 전쟁의 폭력성을 제약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여왔다.
특히 민간인을 포함해서 대략 6천만 명에서 8천만 명의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국가 간 총력전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연 언제 폭력을 사용하고 전쟁을 개시하는 것이 적법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국제법(jus ad bellum)과 별개로 전쟁에서 적법한 폭력의 사용은 무엇인가에 대한 국제법(jus ad bello)이 수립되고 발전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엔헌장을 통해 국제사회는 원칙적으로 갈등 해결의 수단으로써 ‘폭력의 사용(use of force)’을 전면 금지하고, 다양한 평화적 해결 수단을 장려해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쟁이나 무력분쟁이 막상 발발하면 ‘전쟁’이라는 비상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무력분쟁 당사자의 모든 행위가 용인되거나 정당화되지는 않도록 했다.

▲ 국제 인도법에 의한 보호 대상

이처럼 전쟁에서의 행위를 규율하기 위해 마련된 국제조약 및 국제관습법의 체계를 국제인도법(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 또는 전쟁법(laws of war)이라 한다. 국제인도법은 무력분쟁에서 전투능력을 상실한 부상병, 조난자 및 포로와 적대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민간인, 의료요원, 구호요원들을 보호하고, 화학무기, 생물학무기, 대인지뢰, 실명을 유발하는 레이저 무기, 집속탄 등과 같이 전투원과 민간인 또는 군사시설과 민간시설을 구분하지 않고 무차별적인 타격 및 비례성의 원칙에 어긋나는 불필요한 고통과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무기 등, 무력분쟁의 수단 및 방법을 제한하고자 했다. 즉, 국제인도법은 무력분쟁에서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사람’과 ‘장소,’ 그리고 그 보호의 ‘종류’를 구체화했으며 이는 바로 전쟁이 사람에게 미치는 고통을 최소화함으로써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인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육전에 있어서의 군대의 부상자 및 병자의 상태개선에 관한 제1협약, 해상에 있어서의 부상자, 병자 및 조난자의 개선에 관한 제2협약, 포로의 대우에 관한 제3협약, 전시에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4협약으로 이루어진 1949년 제네바협약 (Geneva Conventions)과 국제적 무력충돌의 희생자 보호에 관한 1977년 제1추가의정서, 비국제적 무력충돌의 희생자 보호에 관한 1977년 제2추가의정서, 추가식별포장 채택에 관한 2005년 제3추가의정서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제네바협약의 비준국은 2024년 1월 현재 196개국으로 유엔회원국이 193개국인 것을 고려하면 실로 전지구적으로 보편적인 규범으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국가들의 보편적인 규범 수용 행태와는 별개로, 실제 전쟁에 있어서 모든 국가들이 모든 국제인도법을 모든 경우에 일관되게 준수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정치학의 한 연구에 따르면 화학무기금지협약은 대체로 잘 준수되는 편이나, 무력분쟁의 당사자들은 자주 민간인 보호에 대한 국제법적 의무를 위반하며, 포로에 대한 보호의무준수 여부는 그야말로 상황에 따라 다르다(Morrow 2014, p.2).

▲ 우크라이나 침공 항의 시위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년여가 지나도록 장기화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2023년 10월에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인해 우리는 동시대의 전쟁이 인간에게 미치는 고통과 참상을 생생히 목도하고 있지만, 사실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시리아 내전과 예멘 내전 등 주요국가가 개입되지 않은 전쟁이라 국제사회의 주목을 상대적으로 받지 못하고 있는 전쟁들도 많이 있다. 전쟁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중대한 인권침해의 궁극적인 원인이다. 특히 강간을 전쟁의 무기로 사용하거나, 어린이를 병사로 징집하거나, 민간인 및 주거시설, 학교, 병원 등 민간시설을 목표로 삼아 무차별적이거나 비례의 원칙에 반하여 공격을 행하거나, 심지어 민간인에 대한 식량, 의약품 등 인도적 지원을 의도적으로 막는 것을 전쟁의 전략으로 삼기도 한다. 이처럼 국제인도법을 위반하는 전쟁에서의 행위는 전쟁범죄(war crimes)를 구성하며, 전쟁이 끝난 후 국내, 국제 또는 혼합형사법정에서 개인의 자격으로 그 위반의 책임을 묻게 된다. 실제로 유엔인권이사회가 설립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독립사실조사위원회(The Independent International Commission of Inquiry on Ukraine)는 2023년 10월 유엔총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러시아 당국에 의한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과 고문, 강간 및 기타 성폭력, 어린이의 강제이주 등 전쟁범죄에 대한 증거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2023년 11월 유엔인권최고대표(The UN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인 폴커 투르크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쪽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며 중단을 촉구하는 공식성명을 내기도 했다.

▲ 이스라엘 공군의 폭격을 받은 가자 지구(위), 민간인이 머무르는 난민촌에도 공습이 이뤄지자 한 여인이 울부짓고 있다(아래) ⓒUNRWA

국제정치학자인 해프너-버튼(Hafner-Burton 2013)에 따르면 전쟁은 전쟁을 겪는 사회와 사람들로 하여금 ‘폭력의 문화’라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삼게 함으로써 어떤 행동이 수용될 수 있는가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재구성하며, 이에 따라 인권침해가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는 맥락을 조성한다고 보았다. 국가안보라는 대의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침해하는 것을 손쉽게 정당화하고, 사회 위기 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사람 사이의 사회적 유대를 끊는다는 것이다(pp.21-2). 따라서 애초에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 인권보호를 위한 최선의 정책일 것이다. 그러나 강대국 간의 반목 및 경쟁이 격화되고 국가 간 전쟁이 증가하고 있는 최근의 국제정세에서는 전쟁의 빠른 종식과 함께 지난 75년간 촘촘히 수립된 국제인권법, 국제인도법과 제도를 중심으로 현재 진행 중인 전쟁범죄 및 인도에 반하는 죄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고 수집하며 이를 기록하고 공표함으로써 전쟁 중에 더 이상의 전쟁범죄를 억지하고 전쟁 이후에 정의를 바로 잡고자 하는 노력을 국제기구, 시민사회, 언론 등 다각도에서 기울여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Amnesty International. “Armed Conflict.” https://www.amnesty.org/en/what-we-do/armed-conflict/ (검색일: 2024년 1월 17일).
Hafner-Burton, Emilie. 2013. Making Human Rights A Reali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Morrow, James D. 2014. Order Within Anarchy. Cambridge University Press.

국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 홍미화 교수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에서 영어영문학, 국어국문학 학사학위,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에서 국제학 석사, 미시간대학교 앤아버(University of Michigan, Ann Arbor)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네브라스카주립대학교(University of Nebraska-Lincoln)의 Forsythe Family Program on Human Rights and Humanitarian Affairs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전공분야는 국제정치학이며 주로 유엔인권메커니즘, 국제인권법 및 규범, 분쟁후정의, 대량학살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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