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대학원 문화교차학협동과정 문화예술학전공 석사과정 19학번 이은미 학생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 이은미 학생의 직업은 사서였다. 그는 학교 도서관 비정규직 사서로 몇 년간 근무했다. 이 직업도 정규직이 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서 공무원, 사서 교사, 대학교 사서 등 정규직 사서 자리는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사서 일은 즐거웠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첫째는 비정규직이라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하고 싶은 일이 따로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코스프레와 관련된 직업을 갖는 것이었다. 이 역시 미래가 불확실하고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길이었다. 선택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마음이 하는 일은 생각하는 것”이라는 선현의 말씀에 따라 그는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결심했다. 코스프레를 직업으로 삼는 도전을 해보겠노라고!
직장생활과 입시 준비를 병행하는 건 힘들었다. 원서를 작성할 때는 집중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소개서를 쓸 때 본인을 잘 아는 주변 사람에게 검토를 부탁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조언했다. 깜빡하고 자기소개서에 쓰지 않은 내용을 검토자가 “너 이런 일도 하지 않았니? 왜 안 썼어?” 하면서 챙겨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코스프레 직업군의 종류는 다양했다. 그러나 이은미 학생은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코스프레 연구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상업 분야의 코스프레는 많이 발달했으나 학술적인 기반은 다져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영화를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의 유행이 얼마 가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영화는 대표적인 대중문화로 자리 잡았고 영화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각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영화처럼 코스프레도 학문으로 자리 잡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는 내로라하는 문화예술 관련 대학원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연구 주제를 지도해줄 수 있는지 문의했다. 열에 아홉이 “그런 주제를 연구하는 교수님은 우리 학교에 없다”는 반응이었고, 일부에서 “청강은 시켜줄 수 있다” 정도의 답을 들었다. 그러던 중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교차학협동과정이 유일하게 “우리 과가 당신의 공부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답변을 해줬다.
이은미 학생이 국민대 문화교차학협동과정에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이 학과가 직업에 필요한 ‘지식’을 알려주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문화교차학과에서는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에 임해야 하는가’ 하는 보편의 ‘지혜’를 공부한다. 논문을 쓰는 방식 또한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마음껏 써라, 교수들은 그 말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조력자다”는 식이다. 그는 현재 논문 작성 중이다. 그가 논문 지도를 받은 원고는 이전보다 내용과 논리가 훨씬 탄탄해져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욱더 힘차게 외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그는 입학시험 6개월 전 학과에 메일로 문의했고 수업을 2회 청강했다. 청강하러 온 날 교수님과 짧은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 기억을 더듬어 입학원서의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글을 잘 쓰거나 말을 잘하는 것보다 자신이 어떤 생각으로 이 공부를 하려고 하는지 절실함을 보여줬다. 그것이 합격 요인인 것 같다고 이은미 학생은 말을 덧붙였다.
석사 4학기차인 이은미 학생은 신입생이었던 작년보다 코스프레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얼핏 보면 코스프레에서 멀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코스프레와 관련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마포구립서강도서관에서 독립출판 관련 인문학 수업을 들으며 코스프레를 주제로 원고를 작성했다. 그리고 그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 출간 계약을 맺기도 했다. (아쉽게도 이 원고는 코로나로 인해 출간이 지연되고 있다)
서강도서관은 수업 수강에서부터 출간에 이르는 그의 이야기를 도서관 소식지에 실어줬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수업을 진행했던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김민섭 작가가 그를 작가로 북크루에 등록해줬다.
그 덕에 그는 올해 9월 청주공업고등학교에서 코스프레 관련 인문학 특강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예상보다 수업을 집중해서 잘 들어줬다. 코스프레에 관심 있는 학생이 많아서 수업 참여도도 매우 높았다. 코스프레를 따뜻하게 바라봐준 학생들과 강의를 기획해준 분들 덕에 인생 첫 코스프레 강의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이를 매우 값진 경험으로 기억했다.
이은미 학생은 국민대 교정을 배경으로 셀프 코스프레 촬영을 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일부 사진은 영상으로 제작해 개인 유튜브 채널 ‘한요진’에 공유하기도 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촬영을 중단했지만 내년 박사과정 때는 코로나가 종식돼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코스프레 철학을 주제로 한 석사 졸업논문을 작성 중이기도 하다. 논문이 완성되면 독립출판 형식으로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논문으로 남겨두는 것보다 출판물로 엮는 것이 사람들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코스프레를 즐기는 학생들이 이 책을 쉽게 찾아보고 자신에게 코스프레가 어떤 의미인지 인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는 자신이 아직 대학원 석사과정 학생이자 조교이고, 책은 언제 출판될지 모르는 예비 작가일 뿐이지만 매일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길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대학교에 입학하지 않았으면 난 여전히 비정규직 사서로 있었을 거예요. 입학 첫해부터 제 인생은 무서울 정도로 달라졌고 지금도 계속 바뀌고 있어요.”
이은미 학생은 끝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지만 길을 찾지 못했다면, 그때 당신은 철학적인 사유가 필요하다는 몸의 신호를 받은 거예요. 지혜로운 옛 학자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들어보고, 그 힌트로 자신의 길을 만든다면 느리지만 올바른 길을 가게 될 겁니다. 우선은 故 신해철 님의 노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처럼 ‘내가 죽어도 이건 해야겠다!’ 하는 것을 찾고, 바라는 것을 하려면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대학에서 공부하고 고민하며 찾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