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귀족들의 삶은 ‘여가’로 가득 차 있었다. 노동은 노예의 몫이었고, 철학·예술·체육은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핵심 활동으로 여겨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가를 통해 비로소 인간이 자기 존재의 목적에 다가갈 수 있다고 믿었다.
다소 과장처럼 들릴 수 있지만,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기술 문명의 시대는 어쩌면 그리스 귀족들의 삶을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노동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게 되면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자유 시간, 즉 여가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 시간을 제대로 누리고 있는가?
우리는 이미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의도치 않은 여가 시간의 경고를 경험한 바 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회식도 없으며, 불필요한 약속도 줄었다. 여가 시간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과 우울감, 무기력에 빠졌다.
여가란 단순히 시간이 남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중요하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슬기로운 여가생활을 위한 효과적인 전략 중 하나는 바로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단지 신체적 건강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삶의 질과 행복을 구성하는 실질적인 경로로서 스포츠를 재조명해야 한다.
심리학자인 데시(Deci)와 라이언(Ryan)의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 따르면, 인간이 심리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율성(Autonomy), 유능감(Competence), 그리고 관계성(Relatedness)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스포츠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활동으로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스포츠는 자율성을 회복하는
여가 활동이다.
스포츠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선택의 자유다. 어떤 종목을 할 것인지, 어느 시간에 참여할 것인지, 누구와 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자기 주도적 선택을 통한 스포츠 참여는 몰입 경험을 제공하고, 이는 늘 누군가의 요청과 업무에 따라 움직이는 현대인에게 삶의 통제감과 자율성을 회복시켜 준다.
내가 주도하는 여가는 내 삶을 주도하고 있다는 감각으로 이어진다. “하고 싶어서 하는 운동”은 단순한 시간 활용이 아니라, 존재의 해방감을 경험하게 하는 시간이다.
스포츠는 유능감을 키우는
자기실현의 장이다.
스포츠는 도전과 반복을 기반으로 한 활동이다. 처음에는 10분도 힘들던 달리기가 어느새 30분을 넘기고, 테니스의 서브가 조금씩 정확해지는 과정은 작지만, 분명한 성취를 남긴다. 이런 변화는 ‘나는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기효능감을 키워주며, 이는 일상 속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가 강조했듯, 유능감은 인간의 행동 지속과 동기의 핵심 요소다. 스포츠를 통한 도전은 스스로 설정한 목표 도달의 성취감으로 이어져 깊은 만족과 긍정 정서의 경험을 축적한다.
스포츠는 관계성을 회복시키는
공동체적 여가다.
현대 사회는 점점 개인화되고 있지만, 인간은 여전히 사회적 존재다. 스포츠는 타인과의 교류와 협력을 전제로 한다. 팀 스포츠에서의 전략 공유, 동호회에서의 응원과 격려, 함께하는 훈련의 땀방울은 타인과의 연결감을 형성한다.
특히 중장년층이나 노년층에게는 이런 사회적 스포츠 활동이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고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함께 땀 흘리며 느끼는 희로애락의 경험은 공감을 넘어 사회적 에너지로 확대된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더 많은 여가를 누리게 해준다. 하지만 그 시간을 행복하게 향유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스스로 움직이고, 성장하며, 연결되는 경험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삶의 질을 높이고, 진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슬기로운 여가생활을 원한다면 오늘 저녁, 집 앞 공원을 걸어보는 것부터 시작하자. 스포츠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삶의 해답임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