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은 그늘이 그리운 계절이다. 그렇지만 여름은 단순히 뜨겁고 지치는 계절이 아니다. 그것은 땀이 흐르고 숨이 턱 막히는 더위 속에서도 생명이 가장 왕성하게 자라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나무는 짙은 초록으로 물들며, 식물은 묵묵히 하루가 다르게 자라 열매를 맺기도 한다.

여름은 그렇게 자연이 가장 충실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게 만드는 시기다. 그런 여름의 계 절에도 마음의 그늘이 있는 사람은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누군가의 그늘을 그리워하게 된 다. 그런 여름의 그늘을 잘 담아내고 있는 영화로 <리틀 포레스트>(모리 준이치, 2014·2015/ 임순례, 2018)을 꼽을 수 있다.
▲ 제공: (주)영화사 진진
<리틀 포레스트>는 두 편 모두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것이다. 그 렇지만 영화의 만든 시기와 구성은 다르다. 모리 준이치 감독의 영화는 2014년 ‘여름과 가을’ 편이 먼저 개봉되고, 다음 해 ‘겨울과 봄’ 편이 개봉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네 편을 재편집하여 러닝타임을 약간 줄인 뒤 ‘사계절’ 편이 선보이기도 했다.
‘여름과 가을’ 편은 이론 토호쿠 코모리의 시골 풍경과 계절에 어울리는 요리들을 담아내고, ‘겨울과 봄’ 편은 두 계절의 풍경과 제철 요리, 추억을 그리워하는 요리를 담아내고 있다. 임 순례 감독의 영화는 개봉 시기로 보아 일본 영화의 리메이크 영화로 볼 수도 있으나 원작의 따뜻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한국 정서에 맞춰 한국적 색채로 섬세하게 재해석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 제공: (주)영화사 진진
임순례 감독의 영화에서 주인공 혜원(김태리 분)은 도시에서의 삶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교원임용 시험의 실패, 시험에 합격한 남친과 관계가 소원해지고 미묘한 감정이 들면서 무기력해지고 결국 선택한 건 어린 시절의 기억이 살아있는 비어 있는 시골집이었다. 그녀는 여름 햇살 아래에서 어머니가 남긴 텃밭을 돌보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홀로 사는 법을 다시 배운다. 엄마의 음식을 기억하고 다시 만들어 먹으며 엄마와의 추억, 엄마의 따뜻한 보호막을 다시 느껴본다.
혜원은 음식을 만들면서 “요리는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이라며 요리를 창의적으로 만들어주던 엄마의 그늘을 떠올린다. 그런 혜원은 어느새 그 자신다운 기운을 되찾고 표정도 밝아지며 시골에서 여름날의 삶을 즐긴다. 여름날 땀에 젖은 얼굴에 웃음이 피어난다. 상처는 그대로일 수 있으나 작아지며 삶이 다시 시작되는 듯한 순간이다. 그녀는 남친의 전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전화를 걸어서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말 “시험 합격을 축하해!” 난 떠나온 게 아니라 “돌아온거야!”라고 당당하게 말하기에 이른다. 여름은 혜원에게 기억으로 되살아나는 엄마의 그늘 속에서 마음의 그늘에서도 벗어나는 회복의 시간을 맞게 해준다.
일본판에서의 주인공 이치코(하시모토 아이 분)는 도시 생활에서 야망이나 실패보다 어느 순간부터 도시의 삶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온 능동적 귀향이다.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으나 그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고향의 여름은 조용하고 반복된다. 그녀는 매일 밭을 일구고, 제철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을 즐긴다.
대사가 많지 않은 영화이나 그 고요함 속에 강한 울림이 있다. 여름이라는 계절에서 그녀는 비우는 삶의 방식을 배운다. 그녀는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벗어나 단순해 보일 수 있으나 충만한 일상을 즐길 수 있는 경지에 이르며 마음의 그늘에서 벗어난다. 뜨거운 여름 자연과 땀을 흘리며 이치코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나름대로 찾아간다.
▲ 제공: (주)영화사 진진
두 영화 속에 그려진 여름은 달라 보이나 공통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연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 돌아보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힘이다. 도시에서 여름의 시간은 무더위 속에서도 쫓기는 일상에 한 틈의 여유도 자신을 돌아볼 사이도 없이 어딘가로 바쁘게 움직이게 만든다. 반면에 영화 속의 여름은 고향이라는 시골에서 아주 느리게 흐른다.
더운 날은 그늘을 찾아 쉬며 풀이 무성한 텃밭을 바라보며 여름 과일을 먹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여유를 즐기며 그런 느린 삶 속에서 놓치고 있던 중요한 것들을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영화에서 여름이라는 계절이 우리에게 무엇을 선물하고 있는가를 깨닫게 만든다. 그것은 땀 흘림의 시원한 기분이고 풍성한 계절의 맛이고 우리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과 용기이다.
영화의 두 주인공은 서로 다르게 여름을 살아가고 있으나 고향에서 그 계절을 즐기며 얻은 통찰은 닮아있다. 혜원은 도시 생활에서 지쳐 고향으로 돌아와 여름을 보내면서 내면의 혼란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며 엄마의 부재, 자신의 미래 그리고 진짜 원하는 삶에 대해 고민하며 정리하고 있다.
반면에 이치코는 풍요와 노동, 인내의 계절 여름을 보내면서 자급자족을 배우며 자립을 실천하며, 외로움과 독립 그 이면의 불안과 성숙을 경험하고, 음식을 통해 감정을 다루는 수단을 터득하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고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들은 자연의 시간 속에서 살아있음을 되찾고, 곁에 없으나 엄마의 그늘 속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혼자서도 단단하게 뿌리내리는 법을 배운다. 영화에서 여름은 단순히 계절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되묻는 시간이다.
이렇게 여름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삶이나 누군가의 그늘이 기억을 일깨워줄 수도 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계절의 흐름을 느끼고 되살아난 엄마의 기억과 함께 제철 음식을 만들며 손 끝의 감각을 되살리고 자연의 섭리를 따르며 숨쉬는 시간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렇게 여름은 단지 더운 계절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배우며 즐기고 벗어나는 시간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