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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건축의 조화

(미술학부 김희영 교수)

여름을 맞아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늘을 찾거나, 푸른 들판과 숲, 파란 하늘, 흰 구름, 흐르는 물,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몸과 마음을 쉬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당장 일상을 벗어나 자연으로 달려갈 수는 없기에 잠시 전원에서 한가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햇살이 강한 여름날 정갈한 건물의 그늘 아래에서 풍경을 내다볼 수 있는 넓게 트인 창문 너머로 곡식과 과일이 자라고 있는 비옥한 평야나 울창한 숲을 바라보는 것은 휴식과 안정의 순간일 것이다. 뜨거운 햇살과 때에 맞추어 쏟아지는 비는 생명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에 부어지는 자연의 선물이다. 더위로 인해 인간의 활동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여름은 가을의 추수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이상적인 피서지를 상상해 보는 중에 르네상스 시기 베니스 지역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 1508-80)의 전원 별장이 떠오른다.[도 1]

▲ [도 1]

파도바 출신의 베네치아 공화국의 건축가 팔라디오는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 기원전 1세기)와 15세기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건축가인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의 저서를 연구하여 비례, 균형, 절제의 아름다움을 규칙으로 삼은 당대 건축의 권위자였다. 팔라디오는 수많은 별장(villa)과 저택(palazzo)을 설계하면서 르네상스의 인본주의를 완벽하게 구현하였다. 고대 로마의 고전적인 모델에 근거한 독창적인 디자인을 창안한 팔라디오의 건축은 16세기 르네상스 시기뿐 아니라 이후 서구 유럽 현대 건축의 규범이 되었다. 유네스코는 이 건물을 1994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팔라디오가 설계한 전원주택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당대에 종종 복제된 모델이 되었던 이 건물은 파올로 알메리코(Paolo Almerico)를 위해 지어졌다(1566-1571). 이 별장은 고대 로마 건축의 유산을 이어받아 기하학적인 형태, 완벽한 균형, 정제되면서도 위엄있는 디자인 안에서의 조화로운 비례를 완벽하게 구현한 고전적인 이상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건물의 기본 구성단위는 정사각형이며, 네 개의 정사각형으로 구축되는 건물의 중심에 원형의 홀이 있고 그 위에 반원형의 돔을 지붕으로 덮는 것으로 설계되었다. 중앙의 원형 홀로 인해 ‘로톤다(La Rotonda)’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이 별장은 원과 정사각형의 단순한 형태로 우아하면서도 수학적인 조화를 보여준다.[도2]

▲ [도 2]

특히 이 별장은 동일한 구조의 네 개의 정면을 설계한 점이 매우 이례적이다. 완벽한 정사각형 건물의 각 네 면에 동일한 구조의 주랑 현관(portico, 기둥으로 지지되는 지붕이 있는 현관)으로 돌출된 정면이 설계되어, 정사각형과 십자가가 교차하는 완벽한 대칭 구조를 보여준다.[도3]

▲ [도 3]

팔라디오는 베니스에서 멀지 않은 북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의 언덕 위에 로톤다를 설계하면서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신중하게 고려하였다. 이 건물은 주변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도록 세심하게 디자인되어, 햇빛, 바람, 전망을 고려하여 건물과의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면서도 더운 여름에 피서를 위한 별장 안에서의 활동을 위한 실용적인 공간으로 잘 사용될 수 있도록 기능적인 측면도 고려하여 심미적인 형태가 고안되었다. 기능적이면서도 균형미를 갖추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된 로톤다는 통합된 삶을 지향하는 새로운 철학을 구현하였다.

자칫 산만할 수 있는 네 개의 정면으로 설계된 구조는 통합된 외관으로 성공적으로 구현되어 여러 방향으로 풍광을 바라볼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춘분, 하지, 추분과 같은 절기에 따라 달라지는 햇살과 경치를 사방으로 트인 개방된 건물 안에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구조이다. 따라서 철따라 변하는 주변의 포도원과 농지의 아름다운 광경을 네 개의 주랑 현관 너머로 바라볼 수 있다. 건물 내부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다채로울 뿐 아니라,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이 어느 각도에서 이 건물을 보아도 지루하지 않다.[도4]

▲ [도 4]

로톤타 디자인의 독보적인 특징으로는 무엇보다도 고대 건축을 인본주의적으로 복원한 점을 꼽을 수 있다. 열주와 삼각형 모양의 박공(pediments)을 갖춘 신전 입구를 연상시키는 주랑 현관 구조는 전원 별장의 디자인에 조화롭게 융합되어 마치 언덕 위에 위치한 그리스 신전과 같은 위용을 보여준다.[도5] 그리고 돔으로 덮은 원형의 건축 구조는 로마의 판테온(Pantheon)에서 가져온 것이다. 애초 팔라디오의 설계에서는 완벽한 반원형의 돔으로 보다 날렵한 외곽을 계획했으나, 추후 빈센초 스카모치(Vincenzo Scamozzi)가 돔의 외곽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로마의 판데온 외곽과 유사하게 높이가 낮은 돔으로 완성되었다.[도6]

▲ [도 5]

▲ [도 6]

로톤다는 기본적으로 원과 정사각형의 기하학적 형태가 서로 교차되면서 구성된 건물이다.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원과 정사각형의 원형을 기초로 하여 대칭적으로 설계된 로톤다는 천상의 조화를 반영하며, 나아가 우주의 법으로 통제된 소우주를 구현하였다.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적인 시각에서 볼 때, 로톤다는 조화로운 천상의 중심에 인간이 위치하고 있음을 인각 시키고 있다.[도 7]

▲ [도 7]

여기서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이자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가 고대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시각에 입각하여 그린 인체 드로잉이 회상된다. 팔과 다리를 자연스럽게 뻗은 인체가 원과 정사각형의 기하학적인 형태와 만나는 이 드로잉은 인체를 우주의 척도로 암시함으로써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적 사고의 원형을 제시하고, 더 나아가 서구 문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도 8]

▲ [도 8]

균형과 비례의 원칙으로 설계된 로톤다의 건축 형태, 부분과 전체의 조화로운 구성, 자연 안에 놓인 위치 등을 통해 구현된 것은 인간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르네상스의 핵심적인 세계관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룬 로톤다 별장은 사실상 농지 경영의 중심이었다. 이 건물 안에는 별장의 주인 파올로 알메리코가 거주하였고 그가 소유한 토지에 대한 통제를 처음부터 가시화하였다.

다소 문맥이 빗겨나가지만 잠시 상상의 나래를 우리 주변으로 돌려보자. 우리의 추억에 남아 있는 여름의 전원 풍경에서 원두막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위에 앉아 더위를 피하며 수박과 참외를 먹는 어린아이들의 그림 일기가 그리워진다. 비록 팔라디오의 여름 별장이 갖춘 완벽한 비례와 대칭적인 균형에 비할 수 없겠지만, 매미 소리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식히면서 푸르른 들판과 산등성이를 바라보고 둥근 수박을 잘라 먹던 정방형의 원두막에 대한 향수가 호사로운 여름 별장 못지않게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준다.

captions
도1. Andrea Palladio with modifications by Vincenzo Scamozzi, Villa Rotonda (formerly Villa Capra), 1566–90s, near Vicenza, Italy
도2. Andrea Palladio with modifications by Vicenzo Scamozzi, Villa Rotonda (formerly Villa Capra) from I quattro libri dell’architettura di Andrea Palladio (Book 2, page 19), 1570, 28.8 x 19.5 cm (photo: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도3. Roof. Andrea Palladio with modifications by Vincenzo Scamozzi, Villa Rotonda
도4. Andrea Palladio with modifications by Vincenzo Scamozzi, Villa Rotonda
도5. Facade. Andrea Palladio, Villa Rotonda
도6. Andrea Palladio with modifications by Vincenzo Scamozzi, Villa Rotonda
도7. domed ceiling covered by frescoes. Andrea Palladio, Villa Rotonda
도8. Leonardo da Vinci, The Vitruvian Man, c.1490, Pen, brown ink and watercolor over metalpoint on paper, 34.4 cm × 24.5 cm, 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김희영 교수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및 동대학원 미술이론 석사, 미국 시카고대학교 서양 미술사 석사를 거쳐 아이오아대학교 서양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년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로 부임했으며, 서양미술사학회장 및 한국미술이론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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