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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아름다움의 추구: -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와 제단벽화

(미술학부 김희영 교수)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는 완벽한 인체미와 조화를 통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시대적 변화와 신앙적 성찰을 거치며 외적인 아름다움보다 정신적 아름다움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와 제단벽화를 비교하며 미켈란젤로의 예술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봅니다.

예술의 정수는 무엇일까? 눈으로 볼 수 있는 완벽한 아름다움인가? 아니면 물질적인 모습 안에 내재된 정신성인가? 이 질문에 대해 수많은 철학가나 예술가들이 시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입장을 제기해 왔다. 현대미술의 근간인 르네상스 예술가들에게도 이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다.

중세에 비가시적인 신성을 상징적으로 구현하는 것을 강조했던 것에서 벗어나, 르네상스 시기에는 사물에 대한 관찰과 감각적인 경험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법칙 안에서 인간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보완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르네상스의 거장으로 기억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의 작업은 미적인 완결성으로 보는 사람들을 경탄하게 한다. 인물이나 자연의 사물들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면서 완벽한 질서와 조화를 추구하는 큰 방향에는 공감했던 거장들도 사실상 예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고심하고 평생을 예술가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을 성찰하고 조정하기도 했다. 회화와 조각을 넘나들며 야심찬 대작을 제작했던 미켈란젤로의 경우를 돌아보자.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는 1475년에 피렌체에서 출생하여 1564년에 로마에서 사망할 때까지 회화, 조각, 건축 등의 수많은 르네상스의 명작을 남겼으며 시인이기도 했다 [도1]. 그는 피렌체의 지적인 환경에서 르네상스 거장들의 인문학적인 입장을 섭렵하면서 베키오 궁의 <다윗>(1501-1504)상을 제작하였다. 그는 30대에 로마로 이주하여 바티칸의 사도 궁전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1508-1512)[도2]를 포함한 주요 작품을 통해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주도하며 활발하게 활약하였다.

사진 - 도1

▲ [도 1]

사진 - 도2

▲ [도 2]

미켈란젤로는 88세에 로마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예술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을 발전시키고 변화했기에 그의 예술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60세 정도부터 예술과 삶에 대한 입장에 중요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의 생애의 후반기 대표작 중의 하나인 시스티나 성당의 제단 벽화 <최후의 심판>(1534-1541)[도3]은 르네상스의 질서와 조화를 탈피하는 매너리즘 양식의 시작을 알렸다.

사진 - 도3

▲ [도 3]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이어서 자신의 예술관을 글로 남긴 유일한 르네상스 작가인 미켈란젤로는 그의 시를 통해서 예술에 대한 그의 통찰과 인생관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즉, 완벽한 이상미를 구현하는 시기를 거쳐 점차 그의 기독교 신앙관이 분명해지고 내세에 대한 성찰이 심화되었다. 그러면 미켈란젤로의 대표작인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1508-1512)와 벽화(1534-1541)의 차이를 비교하면서 그의 예술관 변화를 돌아보도록 하자.

피렌체의 문화적, 지적인 환경에서 훈련받은 미켈란젤로는 1530년경까지 전성기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에 근거하여 자신의 예술관을 확립했다. 그는 피렌체 회화의 과학적인 전통을 수용하면서도, 과학적인 진실보다는 미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의 로마는 최고의 부를 누리고 정치적으로도 전 이탈리아를 주도하고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었던 그는 가시적인 세계의 아름다움, 특히 인체의 미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데 몰입하였다.

4년간 초인간적인 작업의 결과로 완성된 천정화에 묘사된 인물상들의 웅장함은 면밀한 관찰에 기초한 사실적인 인물 묘사를 넘어 이상화된 영웅적인 인체미의 극치를 보여준다[도4]. 미켈란젤로는 신의 로고스로 천지가 창조되어 가는 질서와 구약의 주요 서사를 단계별로 제시하였다. 로마의 전성기 르네상스는 기독교와 이교라는 상충하는 요소를 융합시키는 경향이 있었으며, 천정화를 제작할 당시 미켈란젤로는 기독교와 이교, 양자를 동일하게 중요시하였다. 이 천정화는 도상학적으로는 성서의 이해에 바탕을 두고 신학적인 해석을 담고 있으면서도, 인물들은 그리스의 신들과 같은 이상화된 아름다운 인체의 형상으로 묘사되었다. 잘 알려진 천정화의 중앙에 있는 <아담의 창조>[도5]의 예를 보자. 미켈란젤로는 경험적인 관찰에 기초한 정확한 해부학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었고,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부분들을 총합하여 완벽한 인체를 완성하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상화된 미를 구현하였다. 그는 신성이 물질계에 반영된 것이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했으며, 아름다움을 작품으로 구현함으로써 신의 계시를 드러내고자 했다.

사진 - 도 5

▲ [도 4]

사진 - 도 6

▲ [도 5]

1517년 종교개혁으로 인해 교회가 분열되고 교황청의 세속적인 권력 확장 시도가 좌절되었으며, 더욱이 1527년 로마의 약탈(Sacco di Roma) 사건으로 인해 교황의 권위가 더욱 실추되었다. 이러한 상황 안에서 1530년경 르네상스의 황금기는 저물었고 가톨릭교회 고위 성직자의 부패를 청산하고 교계 기강을 확립하려는 내부 쇄신 운동이 이어졌다.

한편 타락한 교회의 쇄신을 강력하게 설교하다가 1498년에 결국 화형을 당했던 피렌체 도미니코회 수도사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의 예언자적인 기백에 깊은 영향을 받아 미켈란젤로는 청년 시절에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1530년경 가톨릭교회를 포함한 이탈리아 사회가 동요하는 상황에서 미켈란젤로의 신앙심은 깊어졌다. 그리고 당시 로마교회 내부의 개혁과 독일의 종교개혁과의 타협을 희망하는 인문주의자들에 공감하였다. 교회의 토대를 파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교리를 개혁하여 영적으로 쇄신된 새로운 형태의 가톨릭교회를 구축하는 전망을 가졌다.

이러한 변화는 미켈란젤로의 작업에도 반영이 되었다. 이 시기에 제작된 시스티나 성당 제단 벽에 있는 <최후의 심판>[도6]이 이러한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약 20년 전에 제작했던 천정화에서는 질서와 조화의 구조 안에 완벽한 이상미로 가시적인 아름다움을 직접적으로 구현했다. 이에 반해, 제단 벽화에서는 비대칭적이고 소용돌이치는 구도 안에서 공간, 원근법, 인체 비례 등의 기본적인 르네상스의 균형이 무시되고, 과장된 인체 비율과 뒤틀린 자세로 무기력해 보이는 수많은 인물이 화면을 가득 채워 불안, 죄의식, 두려움, 긴장, 공포감을 불러일으킨다[도7, 8].

사진 - 도 5

▲ [도 6]

사진 - 도 6

▲ [도 7]

사진 - 도 6

▲ [도 8]

이 작업은 이상주의에 심취했던 미켈란젤로의 전성기 르네상스 작업에서 벗어나 매너리즘(Mannerism) 양식으로 전환한 문제작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변화는 단지 양식의 전환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의 변화를 겪으면서 인생과 예술에 대해 근원적인 전환을 맞았던 시기에 일시적이고 가시적인 물질세계의 아름다움이 아닌 영원한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예술가로서의 염원을 담고 있다. 말년의 미켈란젤로는 완벽한 이상미를 구현하던 자신의 기량을 내려놓고, 신의 은총과 영혼의 구원을 갈구하며 신적이고 진실한 아름다움을 모색하였다.

도 1. Daniele da Volterra, Portrait of Michelangelo Buonarroti, 1564, plaster, 22 x 22 x 45cm
도 2. Michelangelo, The Paintings of the Ceiling and the Last Judgment in the Sistine Chapel, 1508-1512, fresco, Vatican City
도 3. Michelangelo, The Last Judgement, Altar Wall, 1536-1541, fresco, 1,370 x 1,220cm, Sistine Chapel, Vatican City
도 4. Michelangelo, Detail of the Paintings of the Ceiling in the Sistine Chapel, 1511, fresco, Vatican City
도 5. Michelangelo, The Creation of Adam (cropped), Detail of the Paintings of the Ceiling in the Sistine Chapel, 1511, fresco, 230.1 x 480.1 cm, Vatican City
도 6. Michelangelo, Christ and Mary, Detail of Last Judgement, Altar Wall, 1536-1541, fresco, Sistine Chapel, Vatican City
도 7. Michelangelo, A Group of the Saved, Detail of Last Judgement, Altar Wall, 1536-1541, fresco, Sistine Chapel, Vatican City
도 8. Michelangelo, The Damned in the Air, Detail of Last Judgement, Altar Wall, 1536-1541, fresco, Sistine Chapel, Vatican City

김희영 교수 프로필 사진 -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김희영 교수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및 동대학원 미술이론 석사, 미국 시카고대학교 서양 미술사 석사를 거쳐 아이오아대학교 서양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년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로 부임했으며, 서양미술사학회장 및 한국미술이론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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