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이동과 움직임은 인간의 본능이다. ‘자동차’라는 이동수단에만 국한해서는 진화하는 미래 인류의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없다. ‘빠르게, 편리하게, 안전하게’ 세 가지 명제를 충족시켜온 인간의 이동 수단은 이제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교통 생태계에 눈을 돌리고 있다. ‘자동차에 날개를 단다면?’ 이라는 실현 가능한 물음에 자동차공학과 양지현 교수는 멀지 않은 명징한 미래라 답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되면 자동차는 이동 수단을 넘어 생활의 영역으로 역할이 확장될 것이다. 이동 중에 영화를 보거나, 일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등 여가 시설, 사무실, 집의 역할이 자동차에서도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된 그다음을 잇는 기술은 무엇일까? 자동차 업계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준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작년 1월 CES 2020에서 미래 모빌리티 비전으로 우버와 공동개발하는 UAM을 공개했어요. UAM은 ‘Urban Air Mobility’의 약자로, ‘도심 항공 모빌리티’를 의미해요. 자동차, 버스, 택시 등 도심의 기존 교통수단을 2차원 평면(도로)에서 3차원 공간(하늘)으로 확대한 개념인데요.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생긴 교통 혼잡의 해결책으로 ‘플라잉카’를 적용한 것입니다. UAM은 ‘플라잉카’ 자체만을 의미하기보다는, 기존 교통수단인 자동차, 버스, 택시 등을 연계한 교통 생태계로 기대하셔야 합니다.”
양지현 교수는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시뮬레이터를 활용한 미래 모빌리티 HMI 이슈 연구>를 통해 플라잉카와 자율주행차의 승차감과 주행감을 차량 시뮬레이터에 VR을 적용하여 연구 중이다. 흥미로운 점은 대학 시절 기계-항공을, 대학원 시절에는 무인기 제어를 개발하고자 했던 항공우주 공학도였다는 점. 20대 시절에는 자동차공학으로 미래를 설계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인생의 항로를 바꾼 건 ‘Why not?’ 이라는 대학원 지도교수님의 질문에서 시작됐다.
“대학원 입학 후 처음 맡은 연구 프로젝트가 자동차 추돌 사고 방지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과제였어요.
당시 저는, 항공우주공학과에 입학했으니 자연스레 비행기나 우주선 연구를 예상했거든요. 그런데, 지도교수님께서 자동차 과제 참여를 제안하시니 이해가 가지 않아서, ‘항공우주공학과에서 자동차 연구해도 되나요?’ 라고 질문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지도교수님 답변이 아직도 명확하게 기억이 납니다. Why not? 요새는 융복합이라는 키워드가 많이 알려졌지만, 2000년 초반에만 해도 생소한 개념이었거든요. 당시 항공기에서 개발된 알고리즘이 자동차에 적용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는 지도교수님의 가르침 덕분에 산업 간 기술 융합을 미리 경험할 수 있었죠.”
양지현 교수가 대학원 시절 경험한 ‘기술 융합’은 현재 플라잉카를 개발하는 현장에서 빈번하게 벌어진다. 자동차 업계, 항공 업계, 스타트업이 협업으로 또는 독자적인 방식으로 플라잉카 개발에 뛰어들고 있는 것. 현대자동차는 우버와 손잡고 작년 1월, 전기 추진 방식의 개인용 비행체 S-A1을 공개했고, 포르쉐는 2019년 10월 비행기 제조업체 보잉과 기술 제휴를 맺고 미래 비행 택시 사업을 구상 중이다.
“세계 최대 모빌리티 기업인 우버를 비롯해 자동차 업계, 항공 업계 등 200여 개 회사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어요. 자동차 업계와 항공 업계는 기존의 기술과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하며 신중하게 접근하는 반면에, 스타트업은 이슈를 생산하며 파격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죠. 승자가 누가 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미래 자동차-모빌리티 시장에 가장 중요한 건 융합이라는 것이에요. 내부에서 독자적으로 답을 찾는 것보다 산업 간, 회사 간의 융합을 통해 미래 모빌리티 발전은 더욱 가속화되고 활성화될 것입니다.”
미래 교통 생태계 구축에 자동차 산업과 항공 산업은 때로는 동료이자 경쟁자로 사활을 걸고 하늘길을 열고 있다. 랠리처럼 앞서거니 뒤서거니 추격전이 예상되는 플라잉카 시장. 긴장감 최고, 관전 재미를 보장하는 흥미진진한 자동차 역사가 펼쳐질 예정이다.
양지현 교수는 미래 플라잉카 랠리 전에서 꼭 최고의 기술을 지닌 회사가 시장을 선점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20세기 초 내연기관차가 전기차와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도로 환경, 생산 능력, 산업 시스템 등 다양한 요소와 조건을 내연기관차가 충족했기 때문. 이것이 바로 플라잉카 시장에서 승자를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플라잉카 시장에서 산업 간, 회사 간 융합만큼 치밀하게 진행되는 것이 또 있다. 바로, 첨단기술의 융합이다. 현재 자동차에 적용되는 샤시, 배터리, 전자제어, 내비게이션, 빅데이터·AI는 플라잉카에도 적용되는 기술들이다. 소재는 더 튼튼하고 가볍게, 배터리는 장기간 비행이 이뤄지게, 전자제어는 외부 환경의 자극에도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게, 빅데이터·AI는 교통 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을 예측할 수 있게 발전될 것이다. 그렇다면 날개는? 직진, 후진, 유턴만 하는 지금의 자동차가 과연 하늘을 어떻게 날아다닐 수 있을까?
“수직 이착륙(VTOL: Vertical Take Off & Landing) 방식을 도입할 거예요. 비행기처럼 넓은 활주로가 필요 없으니 도심에 적합하죠. 기존 헬리콥터를 쓸 수 없는 이유는 소음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VTOL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엔진이나 틸트로터 등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이 있지만, 기본 원리는 추력의 방향을 수직 또는 수평으로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제어하는 것입니다. 전기를 동력 삼아 소음과 배출가스가 없는 도심형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양지현 교수는 플라잉카의 상용화 시점에 대해서는 정확한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상용화 초기 단계에는 조종사가 플라잉카에 탑승하는 단계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론적으로는 모든 구간에서 자율운행이 가능하겠지만, 법이나 제도적인 측면에서 아직 모든 과정을 자율운행으로만 운용할 수는 없어요. 예를 들어, 예기치 못한 돌발 상황에는 인간 조종사가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객기처럼 일부는 오토 파일럿 등을 사용한다고 해도 말이죠.”
플라잉카와 UAM이 있는 도심은 도시권 중장거리(30~50km)를 20여 분에 이동하게 된다. 초기 서비스는 공항, 도심 간 운행부터 서비스될 예정이다.
자동차는 인류와 함께해온 이래, 단 한 번도 진화를 멈춘 적이 없다.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등장한 수많은 혁신 기술들이 이제는 자동차를 땅 위가 아닌 하늘로 띄워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다이내믹한 미래 자동차 이야기는 국민대학교 자동차융합대학 13명의 교수가 팀티칭으로 강의하는 교양 수업 <미래자동차혁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기차, 자율주행차, UAM, 자동차인간공학 등 다양한 미래 자동차 기술을 만나보는 수업에는 물론 양지현 교수도 함께한다.
“산업계의 생생한 연구개발 동향과 더불어, 현재의 다양한 첨단기술들이 미래 모빌리티를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지 <미래자동차혁명> 수업을 통해서 경험해볼 수 있겠습니다. 자동차는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을 현실에서 구현하고 느낄 수 있게 해주죠.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플라잉카’보다 더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나기를 기대합니다.”
단단한 자동차에서 유연한 기술과 사고를 경험하는 수업. 인간의 본능이 꿈틀대는 자동차에서 감동의 기술을 만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