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갈 곳 잃은 청춘은 산을 찾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는 ‘산스장’, ‘산린이’ 해시태그를 단 인증샷이 넘쳐나기 시작했고, 코로나19 확산이 멈추지 않는 이 기세라면 우리는 앞산, 뒷산, 북한산, 지리산, 한라산, 산이라면 가리지 않고 백두대간을 종주해 버릴지도 모른다. 산 탄 지, 어느덧 1년. 우리는 산에서 무얼 발견했나. 산이 놀이터이자, 연구소이며, 충전소인 산림환경시스템학과 김기원 교수에게 여쭈었다. 교수님은 산에서 무엇을 보시나요?
유년 시절, 김기원 교수는 산 하나를 넘어 학교에 다녔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마을 아이들과 산길을 걸어 등하교했는데 마을 끝에 집이 있어 친구들이 하나둘 집으로 가고 나면 혼자 산길을 걷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이 변하는 모습을 감상하며 산길을 걸었던 기억이 대학에서의 전공을 산림자원학과로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사람의 태도를 결정하는데 환경이 영향을 준다고 하잖아요. ‘환경결정론’이라고 하는데 저야말로 환경결정론의 표본이라고 할 정도로 저에게 딱 맞는 학과를 선택해 대학에 진학했지요. 대학에서 나무 식물을 연구하는 수목학이라는 전공과목이 있었는데 어느 날은 교정을 돌며 나무 아래서 수업을 하는 거예요. 나무 이름을 묻는 교수님 질문에 답하는 학생이 아무도 없는데 제가 조심스럽게 답하니 교수님께서 깜짝 놀라시더군요. 동기들 가운데 저는 그리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는데 그 이후 교수님은 제게 애정을 주셨고, 저는 전공에 더 많은 애착을 갖는 계기가 되었어요. 대학원에서 조경학을 공부해 산림욕장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후에는 오스트리아로 유학 가 산림공학을 공부했죠.”
산길을 따라 걷다 보니 도착한 오스트리아의 빈. 김기원 교수는 우니버지테트 퓌어 보덴쿨투어 빈(Universität für Bodenkultur Wien:빈농과대학)의 작은 정원에서 가슴에 새길 문구 하나를 발견한다.
‘숲 없이 문화 없고, 문화 없이 숲 없다.’
- 조셉 웨셀리-
“오스트리아의 임업 교육자 조셉 웨셀리가 한 말이에요. 진화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인간은 숲 언저리에서 태어났어요. 지구상에 숲이 전개되면서 식물이 새로운 환경을 만들었고, 그로 인해 다양한 동식물종이 생겨날 수 있었죠. 결국 숲이 새로운 종을 잉태하고 출산한 것인데 사람 역시 식량, 쉼터, 잠자리 등 삶 자체를 숲이 제공해왔죠. 이처럼 인간의 삶은 나무와 떼려야 뗄 수가 없죠. 신화에는 나무와 숲과 관련된 것들이 많고, 또 이 신화로부터 영감을 받아 새로운 예술들이 창조되었죠. 인류의 지식과 정보, 지혜를 전달하는 데 쓰인 종이 역시 나무에서 왔죠. 숲은 생활 재료로써, 인간을 먹여 살리는 영양 물질로써, 정신적인 가치로써 역할을 해왔으며, 그 덕분에 인류의 삶이 가능해지고 문화를 창조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김기원 교수는 유학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와 생물학적, 물질적, 생태학적 측면에만 집중하는 산림 시스템의 관습에서 벗어나 문화정신적인 측면을 사람들에게 좀 더 알리고 싶었다. 산림환경시스템학과 전영우 명예 교수와 동료들이 1992년 결성한 숲과문화연구회에 가입해 현재까지 운영이사로 활동하며, 숲과문화연구회가 발간하는 격월간지 <숲과 문화>의 발행인과 편집인, 회장을 역임하였다. 숲과문화연구회는 산림전문가와 숲을 좋아하는 일반인들과 함께 숲과 문화, 종교, 음악, 미술, 철학에 영향을 준 나무 식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학술토론회를 열고 있으며, 한 달에 한 번 국내 숲 탐방도 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이전에는 1년에 한 번씩 해외로도 숲 탐방을 다녀오기도 했다.
“국내외 숲을 탐방하며 우리 숲만의 고유한 매력에 감탄하고 있어요. 우리 숲에는 민족의 정신이 담겨 있죠. 우리를 ‘백의민족’이라고 하잖아요. 흰옷을 입고 흰색을 숭상하는 우리의 전통은 역사적으로 추적해보면 자작나무에서 온 것이라고 해요. 일제 수탈로 망가지고, 6·25 전쟁으로 민둥산이 된 숲을 20년 만에 울창한 숲으로 일군 기적을 만들기도 했죠. 유엔식량농업기구가 인정한 최단기간에 국토녹화에 성공한 국가로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우리의 조림 기술을 배우러 올 정도입니다. 자작나무 숲에서 시작된 우리의 민족정신과 숲에 깃든 우리 문화, 역경을 딛고 울창한 숲을 일군 역사 등 우리 숲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곳곳에 있습니다.”
김기원 교수는 국민대학교 학생들이 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대학의 환경을 적극 활용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비대면 강의로 수업이 진행되고, 바깥 활동이 자유롭지 않은 요즘 젊은 청춘들도 정말 답답할 거예요. 산과 숲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의과학 분야에 입증이 됐는데요. 용두리부터 국제관, 예술관, 체육관, 과학관, 성곡동산까지 이어지는 K*힐링코스와 성곡도서관 주변의 숲을 걷는 것만 해도 일상에서 큰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좀 더 마음에 여유가 있다면 열매와 목재 등 인간의 삶을 위해 헌신한 나무의 삶과 지금의 숲을 일구기 위해 노력한 선조들의 노고도 잊지 않았으면 하고요.”
지난 10년간 새학년도 첫 주마다 국민대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산을 방문하는 시기와 주기에 대해 조사를 해왔다는 김기원 교수. 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학교인데도 산을 자주 찾는 학생이 없어 설문조사 때마다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는 김기원 교수에게 젊은이들이 산을 찾기 시작하는 이 시기가 산과 숲의 매력을 제대로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것을 해야 성공하는 시대, 시대를 앞선 산덕후이자, 정년을 앞둔 산림학자에게 또 다른 산길이 펼쳐지고 있다.
“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소나무숲’ 하면 대관령자연휴양림이죠. 산림학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곳입니다. 보통 구불구불한 소나무가 많은데 대관령자연휴양림의 소나무들은 대나무처럼 일직선으로 곧게 자라있죠. 일반적으로 숲을 만들 때 2~3년 기른 묘목을 캐어 심는데 대관령자연휴양림은 소나무가 직접 씨를 떨어뜨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숲이에요. 직접 파종해서 숲을 만들었다는 뜻으로 ‘직파조림’이라고 하는데요. 바로 대관령자연휴양림이 대표적인 직파조림숲입니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빽빽한 이곳에 서 있으면 왕대숲에 온 듯합니다. 가슴이 확 열리는 기분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
“청정한 환경을 지닌 제주도는 우리나라의 보물섬 같은 곳이에요. 특히 저는 봄에 제주도를 찾는 것을 좋아하는데 향기 나는 식물이 많아 진한 꽃과 숲 향기에 취하게 됩니다. 제주도에 있는 다양한 숲 중에 사려니숲길을 좋아하는데요. 산책로가 12킬로미터에 달하는 사려니숲길은 대부분 방문객들이 입구 주변만 걷다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꼭 입구에서 출구까지를 걸어보길 추천합니다. 입구에서 출구까지 아늑한 숲 풍경을 감상하며 조용히 산책을 즐길 수 있습니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원래 소나무숲이 있던 자리였어요. 해충인 솔잎혹파리로 인해 소나무숲을 벌채한 후 어떤 나무를 심을지 산림청 관계자들이 고민하던 중 선택한 나무가 바로 자작나무지요. 18,150평에 나무 껍질이 하얀 자작나무 70만 그루를 심어 굉장히 인상적인 숲의 풍경을 완성한 특별한 곳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노란 단풍이 드는 가을과 잎을 떨구고 자작나무의 하얀 수피만 남는 겨울을 추천하는데요. 특히 눈이 내린 그다음 날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파란 하늘에 대나무처럼 솟아오른 나무와 바닥을 하얗게 적신 눈의 절경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만듭니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가 패합니다. 이로 인해 빈 거리는 남편을 잃은 아내와 부모를 잃은 아이, 상이군인으로 가득 차고, 오스트리아 국민은 우울한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발견한 요한 폰 헤르베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곡을 만들어 보라고 권유합니다. 밝고 경쾌한 왈츠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과 <빈 숲속의 이야기>는 예술을 사랑하는 빈 시민들과 오스트리아 국민들이 전쟁의 아픔을 딛고 재기하는 데 힘을 불어넣은 곡으로 유명하죠. 빈의 숲은 빈 시민들과 오스트리아 국민의 민족혼이 담겨 있는 곳입니다. 저에게도 유학 시절 추억이 있는 곳으로, 숲과문화연구회 해외 숲 탐방에서 제가 이 숲을 안내하기도 했습니다.”
https://www.wienerwald.info/en
“미국 세콰이어&킹스캐년 국립공원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가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세콰이어 나무의 지름이 무려 11미터로 나무의 덩치가 얼마나 큰지 아마 직접 보지 않는 이상 상상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세콰이어&킹스캐년 국립공원에 가면 나무와 숲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 한없이 겸손해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숲과문화연구회의 해외 숲 탐방으로 다녀온 곳인데 또 방문했으면 하는 회원이 있을 정도로 숲에 감명을 받게 되는 곳입니다.”
https://www.visitsequo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