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2014년의 나라경제를 내다보면, 말의 지혜로움과 빠른 발이 더욱 탐난다.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의 경제가 회복되면서 글로벌 경기가 호전될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회복속도는 여전히 느리다. 중국을 비롯한 경제신흥국의 성장률 역시 예전 같지 않다. 경제적 불안감 속에, 다행스럽게도 2014년에는 사람들의 불안한 심경을 환기할만한 사회문화적 행사가 많다. 소치동계올림픽·브라질월드컵·인천아시안게임과 같은 문화행사가 열리고, 지방선거 같은 굵직한 정치행사가 준비돼있다.
이러한 경제적·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 기업들은 2014년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시기를 보내야할 것이다. 필자가 공동 저술한 <트렌드코리아 2014>에서는 '다크호스'(Dark Horses)'라는 조어에 맞춰 한국 기업이 주목해야 할 소비자의 큰 흐름을 열 가지로 정리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트렌드키워드 5개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다크호스는 경마용어다. 전혀 우승을 예상하지 않았던 경주마가 뜻밖의 두각을 나타내는 상황을 의미한다. 2014년 대한민국 경제를 책임질 개별 기업들이 모두 '다크호스'가 돼주길 희망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다크호스들이여, 2014년을 예상을 뛰어넘는 승리의 한 해로 만들 수 있도록 힘차게 말 달리자.
*스냅백: 챙이 짧고 빳빳하며 시선과 평행하게 맞추거나 혹은 위로 꺾어 올려 쓰는 모자. 챙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로고나 문자가 적혀 있다. 뒤에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똑딱이 단추가 있어 스냅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멋지다’를 표현하는 말로 ‘쿨’, ‘폼’, ‘간지’, ‘그루브’ 정도만 알고 있다면 당신의 목록에 지금 바로 '스웨그(swag)'를 추가하라. 힙합 아티스트가 자신을 뽐낼 때 주로 사용하는 용어인 스웨그는 '스웨깅(swagging)', '스웨거(swagger)'라는 파생어들을 만들며 하나의 신드롬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스웨그는 한 마디로 “멋지다”, “뻐긴다”는 의미인데, 명사이자 형용사이고 그 자체로 감탄사가 되기도 한다. 스웨그의 특성은 첫째 자기모순이 있을지언정 스스로 만족하면 되는 멋, 둘째 본능적인 자유로움, 셋째 기성의 것과의 선긋기로 요약된다. 사회에선 지나치리 만큼 경박한 말과 행동이 넘쳐난다. 고가의 럭셔리브랜드보단 페이크패션과 스냅백이 열풍을 일으킨다. 사회를 관통하는 뚜렷한 기준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소비자의 수만큼 존재하는 다양성으로 채운 작금의 우리사회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로 ‘스웨그’만한 것이 없다.
니치에서 초(超)니치로, 틈새시장이 더욱 정교하게 세분되고 있다. 잘 만든 킬러 아이템 하나로 전체 소비자에게 소구하던 시대는 저물었다. 초니치란 ‘니치’에서 한 단계 더 들어가 소비자들에 의해 잘게 쪼개지고 부스러져 생겨나는 매우 작고 협소하지만 명확하고 특출한 시장을 뜻한다. 구두만을 관리하는 전문 ‘슈 샤이너(Shoe Shiner)’는 초니치를 발굴한 대표적인 사례다. 아직 국내에서는 슈 샤이너 하면 예전의 구두닦이를 떠올리지만 프랑스·스위스·독일 등의 선진국에서는 콜로닐, 불골 사피르, 블랙샤인, 짐머만 앤드 킴 등 토종 고급수제화 업체들까지 가세해 슈 케어(shoe care)가 성업 중이다. 미식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소비자의 입맛을 초세밀하게 충족시키는 직업군도 등장했다. 셰르파는 원래 히말라야 산악등반을 위한 현지 안내인을 뜻하는 말인데, 최근에는 ‘푸드 셰르파’란 신종직종이 등장했다. 이들은 사람들의 낯선 여행길을 동반하며 어디 가서 무얼 먹을지를 안내하는 사람들이다. 일반적인 맛집 소개 블로거와 달리, 보다 전문적인 지식과 고급화된 취향으로 맛기행자들의 테마 여행을 기획한다. 틈새에서, 또 다시 틈새를 찾을 시기다.
이전의 중년세대와 결별을 선언한 “신세대 중년남성”이 늘고 있다. X세대로 불리며 1990년대 한국 사회에 젊은 에너지를 불어넣었던 주역(1966~1974년생)들이 어느새 마흔 줄에 들어선 것이다. 그동안 표출하지 못한 욕망과 본능을 소년의 감성으로 분출하는 ‘어른아이’ 40대는, 안정을 갖출 시기지만 여전히 흔들리고, 놀이와 재미를 추구하는 영원한 피터팬이다. 이들의 되살아난 놀이본능은 생활스포츠 분야에 활력을 넣는 것은 물론 장난감․로봇․피규어 등 키덜트 산업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자신을 꾸미는 미적 본능과 자신을 위한 소비에 당당한 소비본능, 문화본능까지 겸비한 이들을 겨냥해 유통업체들의 중년 남성 ‘모시기’ 경쟁이 가열되고 있고 이들을 위한 전용 소비공간도 확산되고 있다. 윗세대로부터 ‘철없는 마흔’이라 불리는 21세기형 중년, 이른바 <어른아이 40대>가 기성 시장에 부드러운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
“커피마시면서 뭐해?” “자동차 구경해” 여의도 문화방송 사거리에 위치한 커피빈에는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다. 전혀 다른 업종의 두 기업, 커피빈과 현대차가 커피빈 여의도 지점 등에서 공동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매장에 선뜻 들어가기 부담스러운 소비자들은 카페에서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신차를 감상하는 기회를 즐긴다. 어디 이뿐인가. 이제 소비자들은 외식을 하러 간 고급 레스토랑에서 농산물을 구입하기도 한다. 인기 아이돌 그룹의 신곡을 듣기 위해 옷을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티셔츠를 구매한 후 무늬를 휴대폰으로 스캔하면, 2PM의 신곡 12곡이 다운로드되는 ‘의류앨범’이 바로 그것이다. 바야흐로 ‘산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더 새로운 것을, 더 빠르게 제공해주길 원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기업은 기꺼이 영역의 담을 허물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어제의 적과 손을 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조합’의 힘으로 ‘새롭고 낯선 가치’를 창조해내는 2014년형 ‘하이브리드 패치워크’는 기업에게 단순히 “협력하라”는 조언을 넘어,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실천적 해답을 제시한다.
경쟁사의 제품을 서슴없이 깎아내린다. 힙합가수의 디스전이 대중문화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돌려서 말하지 말고, 어렵게 말하지 말고, 숨기려 하지 않는다. 변화구보다는 직구, 그것도 돌직구에 더 호응하는 시대다. 2014년 <직구로 말해요> 키워드는 직설화법이 문화적 코드로 자리잡고 있는 사회적 현상을 들여다본다. 이러한 직구적 표현은 첫째, 쉽게 말해야한다. 가령 화장품 회사에선 “주황 1호”, “노랑 2호”와 같은 딱딱한 이름대신 “오렌지 봉봉”, “날아라병아리”와 같은 직관적인 이름을 사용한다. 둘째, 비방도 유효하다. 디스문화나 비교광고처럼 대놓고 상대의 결점이나 약점을 들추어내는 ‘비방형 직구’도 충분히 수용가능한 문화가 형성됐다. 셋째, 미심쩍은 것은 낱낱이 폭로하라. 권력자의 횡포나 부당함에 맞서 낱낱이 공개하는 ‘폭로형 직구’가 사람들의 갑갑증을 해소한다. 이처럼 돌직구가 난무하는 사회에서 기업이 홈런을 날리기 위해서는 ‘불쾌함’보다는 ‘통쾌함’을 전하는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 소비자들에게 솔직하면서도 호감을 형성할 수 있는 직구의 기술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