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를 원작으로 한 디즈니 실사영화 ‘인어공주’에 이어 ‘백설 공주’도 논란의 중심이 된 가운데 IMDB 평점 1.6을 기록하며 역대 최악의 애니메이션 실사영화로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인터넷을 보면 ‘다양성’이라는 키워드가 ‘백설 공주’를 점령하고 있다. 그럼 도대체 이 영화에서 ‘다양성’을 어떻게 표현했길래 이렇게 영화가 관객들에게 매도당하고 있는 것인가?
픽션(Fiction)에서 발상의 전환은 What If? (만약에?)에서 시작된다. 만약에 지구가 좀비 세상이 된다면? 만약에 기후변화로 갑자기 종말이 온다면? 만약에 외계인과 친구가 돼서 자전거를 타고 함께 하늘을 난다면? 만약에 로봇 슈트를 입은 정의의 백만장자가 세계 평화를 지켜준다면? 이렇듯 인간의 욕망과 상상력을 통해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꿈들을, 완벽하게 만들어진 ‘허상’(Illusion)을 보고 즐기며 매일의 고통을 잠시 잊은 채 살아간다.
그렇다면, 만약에 ‘백설 공주’가 흰색 피부의 모습이 아닌 라틴계나 흑인, 또는 아시아계이면 어떨까? 라는 아이디어는 매우 긍정적이고 흥미롭다. 관객들에게 새로운 재해석을 보여줄 수 있고, 그토록 원하던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작품이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라는 장르였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1937년에 처음 개봉한 디즈니 최초의 애니메이션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숲속 아기 사슴과 대화하는 착한 백설 공주가 일곱 난쟁이에게 구출되어 함께 마녀를 물리치는 권선징악의 이야기로서 ‘만화’로만 그 표현이 가능했다. 그런데 그 ‘만화’들이 영화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실사화되면서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1986년 한국 실사영화 ‘공포의 외인구단’이 처음 개봉했을 때도 관객들의 호기심에 흥행은 성공했지만, 이현세 작가의 원작 ‘만화’와 너무 많이 차이가 나는 바람에 실망 섞인 목소리가 높았다.
만화 속 주인공 오혜성과 최엄지의 그림은 결코 동양계 한국인의 모습이 아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들도 절대 일본인의 모습이 아니다. 그럼, 서양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가? 애니메이션과 일치율이 100%인 완벽한 외모의 서양인을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영화 속 ‘다양성’은 과연 ‘실사’와 ‘만화’ 중 어느 쪽일 때 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영화가 ‘허상’이라면 만화는 그 ‘허상’이 꿈꾸는 ‘메타 허상’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새하얀 피부색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만화’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만화’ 캐릭터는 관객들에게 ‘허상’(꿈)을 보여주었고, 피부색이 다른 전 세계 관객은 ‘만화’ 속 ‘백설 공주’와 ‘백마 탄 왕자’를 재미있게 부담 없이 받아들였다. ‘만화’ 속 캐릭터를 마치 진짜처럼 존중하고 그 차이를 인정하며 다양한 관객이 좋아했으니 ‘다양성’의 목표를 이룬 것이다. 만화 ‘스노우 화이트’의 진정한 의미는 피부색이 아닌 ‘백설 공주’의 눈처럼 하얗고 착한 마음씨를 표현한 것이 아닐까? ‘만화’ 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