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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의 근원”

(미술학부 김희영 교수)

우연한 장소에서 출처 불명의 이미지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 순간을 상상해 보자. 우리는 수 만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이미지를 그렸던 사람들과 그들이 왜 그것을 그렸을지를 상상하게 될 것이다. 미술사 책의 첫 페이지에 소개되는 동굴 벽화를 책에 있는 도판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동굴에서 그 이미지를 우연히 대면한다고 상상해 본다면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깊은 동굴 안의 어두운 곳에 왜 그 이미지가 그려져야 했으며, 누구를 위해 그려졌는지, 누가 그렸는지, 어떤 방식으로 그려지고 감상 되었을지 궁금함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축적된 인류의 역사를 담고 있는 동굴 벽화는 발견한 후대의 사람들이 타임캡슐을 어떻게 열고 이야기를 풀어갈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인간이 형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문자를 사용하기 훨씬 이전이라 여러 곳에서 출토되거나 발견되는 조각이나 그림과 같은 조형물이 왜 만들어 졌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학자들의 연구와 추측에 근거하여 이미지의 발전 계보가 논의되고 있다. 만들어진 시기의 연대를 추적하고 당시의 기후, 지형, 생활상 등의 복합적인 맥락 안에서 이해되는 조형물들은 얼핏 보기에 인간의 생존에 직결되지 않는 것 같다. 다른 어떤 동물들과 달리 인간(호모 사피엔스)은 조형물 제작이라는 활동의 증거물을 남기고 있다.

▲ [도 1]

약 1만 5천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지는 동굴 벽화들이 발견되면서 현대인들에게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구석기 시대 그림으로 알려진 스페인의 알타미라, 프랑스의 라스코 지역 등의 동굴에서 발견된 그림들은 인간의 창의성과 믿음 체계에 대한 경외심을 일으킨다. 1879년 고고학자 마르셀리노 산즈 데 사우투올라(Marcelino Sanz de Sautuola)는 동물 뼈와 석기들을 발굴하려고 방문했던 북부 스페인의 알타미라(Altamira) 동굴에서 8살 딸 마리아(Maria)와 함께 동굴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동굴 천정과 벽에 그려진 들소들의 그림을 우연히 발견하였다.(도 1) 그리고, 프랑스 남서쪽에 위치한 라스코(Lascaux) 동굴은 1940년 마을 소년들에 의해 발견이 되었다.

이처럼 시간의 층위를 거슬러 과거의 유물을 만나는 순간은 이미지를 제작한 인류와 현대인이 극적으로 만나는 신비로운 순간이다. 판독할 수 있는 기록이 부재하지만, 이미지로 보여지는 추상화된 동물이나 인간의 형상 혹은 사실적인 재현을 마주하면서 고대 인류와 현대인이 공유할 수 있는 염원, 창작의 의지 등을 숙고하게 된다. 수만 년 전에 제작된 이미지의 의미나 역할을 현대의 미적인 규칙이나 양식의 틀을 가지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우리는 동굴 벽화를 대면하면서 이미지가 제작된 배경과 의도 등을 추측하며 인간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된다.

▲ [도 2]

굽이진 통로와 방들이 이어지는 알타미라 동굴은 약 270미터에 달하며, 벽화가 많이 발견되는 장소의 천정 높이는 1.2 미터~ 2.7 미터 정도이다. 천정에 그림을 그렸을 화가는 웅크리고 앉아 그리거나 혹은 팔을 높이 들어 그려야 하며, 결코 전체 천정을 한 번에 볼 수 없는 공간이다. 긴 통로로 이어지는 동굴의 벽면과 천정에는 들소들이 주로 그려져 있고 말이나 암사슴과 같은 동물도 눈에 띈다.(도 2) 동물들의 윤곽선을 판 후에 붉은색과 목탄의 검은색으로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동굴 표면의 굴곡을 효율적으로 살려 동물의 양감 표현에 활용하기도 하는 등 뛰어난 재현적인 기술을 보여주며,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가 특징적이다.(도 3) 자연 채광이 없는 공간에 사실적으로 그려진 동굴 군상이나 단독으로 그려진 동물들이 생동감 있게 그려진 것을 바라볼 때, 어떤 의도에서 지속적으로 형상을 덧입혀 그리는 흔적을 남기게 되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 [도 3]

구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는 상징적이거나 종교적인 기능을 했을 것이라는 논의가 제기되어왔다. 이러한 그림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으나 샤머니즘(shamanism)과 같은 원시 종교체계 안에서 종교의식의 일환으로 수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접근이 힘든 깊은 동굴에서 기억에 의존하여 동물을 그리는 활동은 일상적이지 않다. 아마도 사제가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이미지를 그리면서 접신의 상태에서 그들의 염원을 전하는 등의 의식이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이 가능하다. 군집한 공동체의 지도자는 자연의 힘 앞에 무력한 인간들의 염원을 전달하는 사제의 역할을 겸했을 것이라 추측된다.

▲ [도 4]

현재 남아있는 것은 동물의 이미지이지만, 당시 그림이 그려지는 순간은 이미지의 창작이 목적이 아니라 군집한 공동체의 종교의식의 결과물로 남겨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동물의 형상을 그리는 것은 사제의 개인적인 표현을 위한 활동이기보다는 공동체의 염원, 신과의 만남을 기원하는 의식, 즉 노래와 춤이 동반되는 특별한 활동의 일환으로 그림이 그려졌을 것이다.(도 4) 제의라는 총체 예술의 형태로 공동체의 영적인 연대, 보이지 않는 신과의 관계를 확인하고자 하는 특별한 활동이었을 것이다. 동굴 벽화는 단독 작업으로 감상되거나 사실적인 재현 여부가 중요하게 평가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간혹 사실적인 동물의 형상이 그 동물을 포획하여 생존하고자 하는 강한 염원의 표출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사실상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포획한 동물들은 주로 작은 동물들이었기에, 안정된 먹거리에 대한 욕망의 표현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인류의 상징적이고 종교적인 유물을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다.

동굴 벽화는 비록 문자 기록이 없던 시기에 제작되었으나, 인간이 보이지 않는 영혼의 세계에 대한 염원이 일찍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인류 역사의 근원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이에 이미지의 근원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재현된 이미지를 이데아의 모방에 불과한 것으로 무가치하다고 평가하였다. 이것은 형이상학적 사고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플라톤이 이데아의 중요성을 언급하기 훨씬 이전 동굴에서 그림을 그리고 감상했던 인류는 이미 영적인 세계에 대한 성찰을 했고, 그 활동의 기록이 동굴 벽화로 남겨졌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인간이 왜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명확히 알 수 없고 많은 학자들이 흥미로운 논의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한 이미지의 근원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한 번쯤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도 1) Cave painting of a bison, c. 17,000-11,000 years ago, Altamira, Spain
(도 2) Altamira cave ceiling painting
(도 3) Altamira cave ceiling painting
(도 4) Altamira cave painting, black bison head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김희영 교수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및 동대학원 미술이론 석사, 미국 시카고대학교 서양 미술사 석사를 거쳐 아이오아대학교 서양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년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로 부임했으며, 서양미술사학회장 및 한국미술이론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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