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을 떠난다면 문화 유적이나 미술관을 방문하는 일정은 아마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물의 도시 베니스에서 가까운 파두아(Padua)에 위치한 단아한 스크로베니 예배당(Scrovegni Chapel) 안에 펼쳐지는 지오토의 프레스코 벽화를 둘러본다면 기억에 남을 여정이 될 것이다.
▲ [도 1]
▲ [도 2]
파두아의 은행가였던 엔리코 스크로베니(Enrico Scrovegni, ?-1336)가 의뢰하여 지어져 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 예배당은 고대 로마 경기장(Roman arena)에 인접해 있어서 아레나 예배당(Arena Chapel)으로도 불린다.(도1) c.1300-1305년에 지어진 단순하고 아담한 예배당 건물의 내부에는 초기 르네상스의 대표 작가인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c.1267-1337)가 사실적인 인체와 감정 묘사를 담아 그린 프레스코 벽화(1303-1305)가 환상적으로 눈길을 끈다. (도2) 이 예배당은 지오토가 화가로서의 명성을 널리 알렸던 시기에 제작한 벽화로 유명하며 2021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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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배당이 지어진 계기가 흥미롭다. 유명한 문학가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의 『신곡(Divine Comedy)』에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지옥에서 심판받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이름이 거명되지 않았으나 스크로베니 가족의 문장이 돼지인 것을 고려할 때 1290년경에 사망한 파두아의 은행가 레지날도 스크로베니(Reginaldo Scrovegni)를 추측하게 하는 문구가 있다. 이에 엔리코는 아버지의 영혼을 구원하고 자신의 죄를 속죄받고자 가족의 장례 예배당 건축을 의뢰하였으며 이 예배당을 ‘자선의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했다. 그리고 엔리코 자신을 <최후의 심판> 장면 안에서 구원받은 자들에 포함시켜 그리도록 하였다. (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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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이 예배당은 단테와 동시대 화가였던 지오토의 프레스코 벽화로 주목받는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들이 인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담은 정제된 공간 안에서 라피스 라줄리의 푸른색으로 칠해진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다채롭게 펼쳐진다. 별이 박힌 하늘과 같은 푸른 천장과 본당의 네 벽을 덮은 지오토의 벽화는 인물의 감정과 인체의 사실적인 표현, 공간 착시의 회화적인 전략이 구현되는 르네상스 양식의 시작을 알렸다. (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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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9개의 장면으로 나누어진 성모 마리아와 예수 생애의 이야기는 본당 양쪽 벽면과 제단에 걸쳐 마치 책장을 넘기듯이 이어진다. 긴 양쪽 벽의 프레스코는 세 단으로 구성되었고, 마리아의 아버지인 요아킴(Joachim)과 어머니 안나(Anne)의 생애를 포함한 성모 마리아의 생애가 상단의 한 단, 그리고 중앙과 하단의 두 단에 예수의 생애가 펼쳐진다. (도5) 이것은 당시 문맹의 성도들에게 성경의 중요한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그들은 천국에 가기 위한 성경의 이야기를 사제들에게 듣고, 교회에 전시된 그림과 조각 작품으로 구현된 작품들을 바라보면서 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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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한 색채로 구현된 이야기 장면들 아래에는 단색조의 이미지로 7개의 미덕(희망, 자선, 신앙, 정의, 절제, 인내, 신중함)과 악덕(절망, 질투, 배신, 불의, 분노, 변덕, 어리석음)이 의인화되어 있다. (도6) 미덕은 오른편에 악덕은 왼편에 배치되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작은 예배당의 내부 전체를 감싸고 있는 프레스코의 이미지로 전달되는 압축된 예수의 생애를 위로 하고, 한편으로는 눈높이에서 마주하게 되는 미덕과 악덕의 상징적인 이미지들은 예배자가 자신의 성품을 점검하고 신앙적인 결단을 하게 하는 암묵적인 메시지로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배치는 속죄를 위해 지어진 스크로베니 예배당의 의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중세에서 탈피하여 인본주의로 전환되어 가는 시기에 지어진 스크로베니 가족 예배당은 초기 르네상스의 대가인 지오토의 대표작을 보유하고 있는 보물과 같은 작은 건축물이다. 예배당 내부 전체를 채운 지오토의 완숙한 회화 작품을 하나씩 따라가며 감상하는 것은 시각적, 공간적으로 특별한 경험이다. 이와 더불어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이 건축물이 전해주는 당시 사회와 세계관의 점진적이면서도 다양한 변화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라 하겠다.
captions
* Giotto, detail. The Arrest of Christ (Kiss of Judas), Cycle of the Life of the Christ, 1304-1306, fresco, Cappella Scrovegni (Arena Chapel), Padua
도1. The exterior of the Cappella Scrovegni (Arena Chapel), 1300-1305, Province of Padua, Region of Veneto, Italy
도2. Giotto, Last Judgment, The Chapel viewed towards the entrance, 1303-06, fresco, Cappella Scrovegni (Arena Chapel), Padua
도3. Giotto, Last Judgment (detail), Enrico Scrovegni, assisted by a priest, presents the chapel to the Virgin Mary and two other figures, c. 1306, fresco, Cappella Scrovegni (Arena Chapel), Padua, Padua
도4. Giotto, Vault and Nave, 1306-1306, fresco cycle, Cappella Scrovegni (Arena Chapel), Padua
도5. Giotto, Nave wall, 1306-1306, fresco cycle, Cappella Scrovegni (Arena Chapel), Padua
도6. Giotto, Seven Virtues and Seven Vices, 1306-1306, fresco cycle, Cappella Scrovegni (Arena Chapel), Padu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