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대전환의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기술의 발전은 사회, 문화, 금융 전반에 걸쳐 우리 삶에 혁신적인 변화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보안과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을 때 겪게 될 위기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세계적으로 정보보안 분야에 관한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다. ‘세계 최상위 연구자 2%(World Top 2% Scientist) 리스트’에 선정된 정보보안암호수학과 유일선 교수를 만나 정보보안의 중요성과 전망에 대해 들어보았다.
A. 2022년도에 순천향대학교에서 국민대학교 정보보안암호수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 최상위 연구자 2% 리스트가 처음 발표되었던 2020년부터 매년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데, 올해는 국민대학교 교수로서 얻게 된 성과이기에, 개인적으로 좀 더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의 논문이 또 다른 누군가의 논문에 인용되어 새로운 연구의 바탕이 된다는 것은 연구자에게는 무척 영광이니까요. 특히나 논문은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라, 동료 제자와 함께 만드는 공동의 성과입니다. 2016년에 순천향대학교에서 훌륭한 제자, 동료와 정말 많은 논문을 썼던 기억이 있는데요. 그때의 연구성과가 다른 논문에 계속해서 인용되면서 세계 최상위 연구자 2%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당시 함께 연구했던 이들이 지금은 세계 곳곳의 대학에서 교수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요. 국민대학교에서도 동료 교수님,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의미 있는 연구성과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며 함께 성장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보게 됩니다. 우리의 연구와 노력, 열정이 만들어 낼 또 다른 성과들을 기대하면서 말이죠.
A. 학부 시절에 전자통계학과를 공부했습니다. 사실 학창 시절에는 의사인 형을 보면서 오로지 ‘의대’를 목표로 공부했었어요. 그런데 의대 입시에 실패하면서 일단 대학에 들어간 후 재도전하기로 했고, 그렇게 잠시 거쳐 가는 곳으로 선택한 것이 전자통계학이었어요. 당시 전자통계학은 과학기술대 소속이었는데요. 화학과 물리학과와 같은 자연과학 계열 학생들은 실험실에서 온갖 실험을 하는 것에 반해, 전자통계학과 학생들은 컴퓨터 자판만 두드리는 모습이 뭔가 우아하고 멋져 보이더라고요. 그 단순해 보이는 모습 이면에 존재하는 복잡한 세계와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놀라운 결과물도 매력적으로 다가왔고요. 그렇게 재수를 포기하고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을 나의 미래로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A. 학부 당시에는 보안 관련 수업이 없었는데요. 박사과정 시작 후 병역특례로 가게 된 회사가 인터넷 보안 관련 회사였어요. 마침 박사과정 지도 교수님도 보안 분야에 관한 연구를 막 시작하려던 시점이어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전공 선택도, 보안 연구의 시작도 저의 선택은 아니었지만, 내게 주어진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 준비된 자세가 ‘우연한 선택’을 ‘평생의 업’으로 만들 수 있었던 디딤돌이 되어준 거죠.
A. 모바일 인터넷 보안 연구실에서는 외부의 공격자로부터 시스템을 보호하는 연구와 5G의 유무선 구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취약점을 분석하고 이동통신 네트워크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양자컴퓨팅 기술의 등장과 함께 보안 문제가 가장 큰 걱정거리로 떠오른 것도 ‘보안’ 문제인데요.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을 안전하게 활용하기 위해서는 ‘정보보안’이 선재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개발 단계에 있지만, 양자컴퓨터는 기존의 컴퓨터보다 연산 능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날 것입니다. 기존 컴퓨터로는 수백 년이 걸려도 깨기 힘든 암호 알고리즘이 양자컴퓨팅 세계가 오면 몇 시간 만에 깨질 수 있다는 거죠. 금융, 국가 안보, 산업 전반에 걸쳐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우려에 따라 양자컴퓨터를 활용한 해킹으로부터 안전한 양자내성암호(PQC)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민대학교 정보보안암호수학과는 양자내성암호 분야에서는 국내 대학 가운데 최정상이라고 자부합니다. 국내에서도 양자내성암호 표준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 중인데요. 국가정보원이 후원하고 양자내성암호연구단과 국가보안기술연구소가 지원하는 ‘양자내성암호 국가공모전(KpqC 공모전)’에서 정보보안암호수학과 김동찬 교수님팀의 알고리즘이 1라운드를 통과하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A. 성장을 위한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요. 혼자 힘으로 될 때까지 열심히 하는 것, 그리고 먼저 연구를 시작해 성과를 거둔 선도자와의 협력을 통해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배워서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 것이죠. 물론 전자도 의미 있는 도전이겠지만, 혼자만의 연구로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속도를 따라가기는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보안 연구의 경우, 우리나라는 원천기술에는 약하지만 응용에는 강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보다 앞선 세계 유수 대학과의 협력을 통해 그들의 앞선 기술을 배우고, 이를 토대로 우리만의 연구성과를 만드는 시도가 중요하죠. 정보보안암호수학과 역시 2022년부터 2년 6개월간 진행되는 과제를 비롯한 다양한 글로벌 과제에 참여하는 등 국제공동연구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이를 통해 세계적인 기관, 학교와의 협력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우리 학교를 알리는 역할도 하는 만큼, 의미 있는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A. 연구자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우리의 연구가 누군가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특히 그 변화가 누군가의 생명, 건강한 삶과 이어지면 더욱더 그렇고요. 당뇨 환자를 위한 인슐린 펌프 보안 연구에 참여한 이유도 이러한 생각과 결을 같이합니다. 매번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당뇨 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는 꼭 필요한 기술인데, 이 기술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보안연구가 선행되어야 하니까요.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본격적인 디지털 전환이 진행되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미래가 펼쳐질 것입니다. 하지만 보안과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기술의 발전은 개인은 물론, 산업 전반, 더 나아가서 국가, 지구촌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보안연구가 선행될 때, 비로소 기술을 통해 우리 삶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라 확신합니다.
2022년에 국민대학교로 소속을 옮긴 후, 2023년 한 해는 새로운 곳에 익숙해지는 시간이었다면 2024년부터는 의미 있는 성과를 하나씩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일단은 연구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우리의 역량을 높이고 양질의 논문 작업을 활발히 진행하는 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은 물론, 아시아의 연구기관과의 국제 협력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고요. 올 상반기에 일본 최고 연구기관의 보안 분야 수장과 팀원들이 국민대학교에 방문할 예정인데요. 정보보안암호수학과 학부생의 현지 연구소 방문 및 세미나 개최 등으로 공동연구를 더 확장해 나가고 싶습니다. 실력 있는 외국 학생 유치, 외국 대학과 공동협력, 복수학위제, 공동지도교수제 등을 통해 우리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국민대학교의 역량을 키움으로써 세계적인 인재들을 길러내는 것. 꾸준히 연구를 이어가는 것만큼 중요한 저의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