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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본 단위는 ‘하루’다.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기까지의 시간들이 쌓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되며, 인생이 된다. 여기서 <사랑의 블랙홀>은 그 하루가 영원히 반복되는, 즉 똑같은 하루가 매일 시작되는 삶 속에 갇힌 남자를 보여준다. 그 지독한 데자뷰 속에서, 한 남자만은 반복되지 않고 변화된다.
아마도 비디오나 케이블 TV를 통해 많이들 접했을 이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면서도 심오하다. 기상 캐스터인 필(빌 머레이)은 그라운드호그 데이 행사 중계를 위해 ‘펑추토니’라는 한 시골 마을에 도착한다. 방송을 마치고 지독한 눈보라 때문에 의도하지 않았던 1박 후 호텔에서 눈을 뜬 그는, ‘어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매일 똑같이 시작되어 똑같이 끝나는 ‘2월 2일’에 갇힌 필. 결국 상황에 적응하며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기적 같은 ‘2월 3일 아침’을 맞이한다.





2월 1일의 아침 일기예보에서 시작해, 수없이 많은 2월 2일의 시작을 보여주고, 마지막 장면에선 드디어 찾아온 2월 3일의 시작으로 끝나는 <사랑의 블랙홀>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오늘’이라고 말한다. 필은 수없이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피아노와 얼음 조각과 프랑스어를 배운다. 결국 무엇을 이룬다는 것은 수없이 많은 하루가 쌓였을 때 가능한 것이며, 당신이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적립’은 시작된다.
시작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대사를 지닌 영화는 기타노 다케시의 <키즈 리턴>이다. 기타노 다케시라고 하면 흔히 야쿠자들이 몰려다니며 유혈 낭자 총격전을 벌이는 영화나 만드는 감독이라고 생각하기에, <키즈 리턴>은 조금 의외일 수 있겠다. 이 영화는 십대 아이들의 청춘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이다.
마사루(카네코 켄)와 신지(안도 마사노부)는 수업 시간에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아이들에게 ‘삥’ 뜯은 돈으로 성인 영화관이나 드나드는 한심한 청춘들이다. 결국 마사루는 야쿠자 조직에 들어가고, 신지는 권투 선수가 된다. 하지만 마사루는 조직에서 몰매를 맞은 후 쫓겨나고, 신지도 링에서 쓰러진다.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난 그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다시 자전거를 탄다. 신지는 묻는다. ‘우린 이제 끝난 걸까?’ 이때 마사루가 웃으며 던지는 바로 그 대사를 위해,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107분의 러닝 타임을 달려왔을지도 모른다. ‘바보, 우린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키즈 리턴>은 희망도 절망도 하지 않는다. <키즈 리턴>은 시작 직전에 끝나는 영화이며, 인생이란 수많은 시작의 연속이라는 걸 말한다. 물론 현실은 그들을 짓누를 수 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영혼마저 잠식당해선 안 된다. 아직 우린 아무 것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 그들의 삶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여기서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들은, ‘세상’은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를 ‘선동주의자’나 ‘사기꾼’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무어가 보여주는 ‘무대뽀’ 스타일의 실천은 눈 여겨 볼만하다. 그는 자신이 주인공인 다큐 속에서, 대기업 총수를 집요하게 따라다니고, 총탄을 파는 마트에 판매 중지를 요구하며, 미국의 의료보험 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부시의 전쟁 놀음을 비난한다.
그가 아무리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린다고 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주의를 통해 조금씩 변화는 시작된다. 만약 모순을 느낀다면, 정당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집요하게 지켜봐야 한다. 무어의 다큐는 ‘지금/여기’의 일상으로부터 ‘변화의 시작’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티나 실리그가 쓴 <스무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엘도라도)은, 거친 현실과 만나야 할 대학생들이라면 한 번쯤 귀 기울일 필요가 있는 인생 선배의 조언이다. 이 책이 궁극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화석처럼 굳어져 버린 ‘스펙’보다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진 말랑말랑한 ‘크리에이티브’가 당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이 학교라면 실패만큼 중요한 과목은 없다며 도전 의식을 부추긴다.
이것은 ‘현실엔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것들이 많다’는 식으로 젊은이들을 겁주는 기성 세대의 거들먹거림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필자가 곧 대학생이 될 아들을 위해 만든 리스트를 발전시킨 이 책은, 직업을 선택하고 돈을 벌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미 스무 살의 두 배를 살아버린 입장에서 이 책을 읽는 마음은 통렬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의 몇몇 구절에서 강한 울림을 느꼈다.
실용주의의 시대에 ‘지식의 참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어쩌면 비생산적일 수도 있겠지만, EBS 지식채널에서 펴낸 <지식 e>(북하우스) 시리즈는 우리에게 지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자극을 주는, ‘지식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경마장의 말처럼 앞만 보며 ‘단기 성과주의’의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 진정한 지식은 사람들의 생각을 세포 분열시키듯 다양하게 만들고,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 책의 추천사에서 김주하 앵커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책이 독자로 하여금 열 갈래의 다른 책으로 옮겨갈 수 있는 길을 터줄 수 있다면, 이 책이 그 멋진 시작이 될 것이다.” <지식 e> 시리즈는 우리가 모르고 살아왔던 세상을 툭툭 던져주는, 노승의 화두 같은 책이다.
‘시작’이라는 테마에 대한 마지막 텍스트를 꺼낼 시간이 왔다. 바로 <글쓰기 생각쓰기>(돌베개)다.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는 걸 의외로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모멘토)든,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김영사)든, 다 읽고 나면 꽤 도움 받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글쓰기 생각쓰기>는 일차적으로는 하나의 글을 완성하기 위한 가이드지만, 최종 목표는 소통이다.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정확하고 흥미롭게 전달하는 것, 자신만의 문체를 가지는 것, 그리고 글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 이런 능력들을 원한다면, 감히 이 책을 당신에게 ‘표현의 시작’으로 추천한다.
 



해롤드 래미스 감독 <사랑의 블랙홀>
초자연적인 현상을 가정해 시간의 소중함과 삶의 의미를 돌이켜보고 진정한 사랑을 되찾는 내용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주연 | 빌 머레이, 앤디 맥도웰, 개봉 | 1993년

기타노 다케시 감독 <키즈 리턴> 
두 젊은이가 맞닥뜨리는 청춘 시절의 '허망함'을 독특한 미학의 경지로 끌어올린 영화.
주연 : 안도 마사노부, 카네코 켄, 개봉 | 2000년

마이클 무어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제너럴모터스 기업의 전횡을 고발한 <로저와 나>, <더 빅원>, <캐나디언 베이컨>, <볼링 포 컬럼바인> 등의 다큐멘터리로 미국 사회를 비판해 왔다. 2004년에는 9.11 테러와 관련한 다큐멘터리 <화씨 911>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스무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스탠포드대 미래 인생 보고서)>
2010년 3월 출간 직후 일본 아마존 종합 베스트 1위에 올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제압하기도 했던 베스트셀러. 불완전한 성인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춘들과, 사회 속에서 알게 모르게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사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깨달음을 선사한다.
티나 실리그 저, 이수경 역 | 엘도라도 | 2010년

<지식e> 시리즈(전 1~5권)
21세기 한국인을 위한 쉽고 재미있는 지식사전 시리즈. EBS에서 방영한 <지식채널e>의 영상과 메시지를 담아 한국인이 알고 있어야 할 지식을 쉽고 설득력 있게 제시하며 합리적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모색한다.
EBS 지식채널e 저 | 북하우스 | 2009년

<글쓰기 생각쓰기>

쉽고 알차게 구성한 글쓰기 안내서로 76년 초판이 나온 이후 30년간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읽은 글쓰기의 고전. 논픽션 작가이자 글쓰기를 강의해온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 전하는 명쾌하고 따뜻한 조언을 만나볼 수 있다.
윌리엄 진서 저, 이한중 역 | 돌베개 |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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