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로자들은 오래 일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OECD에 의하면 긴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노동생산성은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정해진 퇴근시간이 되어도 퇴근하지 않는 것이 널리 퍼지다 보니 오히려 '칼퇴근'이라는 표현이 나오고 '칼퇴근 할 수 있는' 직장은 분명한 장점을 가진 것으로 여겨질 정도이다. 하지만 자리를 오래 지킨다고 일을 많이 하는 것일까? 정해진 시간동안 돌아가는 조립라인이 존재하는 공장이라면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21세기의 사무실에서는 그러한 생각이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근무태도, 보다 정확히는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을 중시하는 근태문화는 남아서 사람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오히려 개별적인 성과측정이 어려운 사무직일수록 일단 오래 남아 일하는 모습으로 평가되는 경향까지 나타난다. 뭘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오래 일하고 있으니 뭔가 많이 하고 있고 잘하고 있는 것이리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최근 네트워크와 모바일 단말의 발전과 더불어 새로운 모습이 나타난다. 꼭 사무실의 자리에서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니라, 유무선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의사소통하고 사무실 데스크탑 대신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같은 단말을 이용하여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일하는 ‘스마트워크’가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2010년 원격근무진흥법(Teleworking Improvement Act of 2010)이 발의되어 상하원을 통과했다. 글로벌 IT기업 씨스코(Cisco)의 조사에서는 2600명의 설문 중 66%는 출퇴근에서 해방될 수 있다면 임금이 깎여도 좋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 IBM은 전직원 2000명의 60%가 고정 좌석이 없는 모바일 직원이다.
우리 정부에서는 세종청사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출장과 원격지 근무가 늘어나는 상황을 반영해 스마트워크를 위한 거점을 확대하고 있기도 하다. 최근 개소한 서울역 스마트워크 센터는 출장 공무원들을 위한 사무공간과 시설뿐 아니라 특히 다수의 기관간 영상회의가 가능한 회의실을 갖추어 비대면 상황에서도 협업이 용이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서울역 스마트워크 센터의 개소로 정부에서 운영하는 스마트워크 센터는 14개에 이른다.
한국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출퇴근 시간을 직원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출근시간의 만원 지하철이나 교통체증에 의해 지친 상태로 업무를 시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필요하다면 집을 포함해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근무하는 것도 가능하다. 여러 사람들이 참석해야 하는 회의 일정은 개별적으로 만나거나 전화를 해서 약속을 잡는 대신 아웃룩을 이용하여 참석여부를 확인하고 상대방의 일정에 회의시간이 표시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 토종기업들의 현황은 아직까지는 탐색단계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삼성이나 엘지와 같은 대기업에서도 스마크워크센터가 설립되어 있지만 사용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그러나 재택근무 혹은 원격근무가 스마트워크의 전부는 아니다. 사실 재택근무를 통해 출퇴근에 낭비되는 시간을 보다 스마트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재택근무를 스마트워크의 대표 사례로 꼽히게 하기에 손색이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면 스마트워크는 재택근무가 가능한 일부 직종의 예외적인 사례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스마트워크는 ‘재택’이라는 장소의 한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자세 보다 넓게는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것이다.
스마트워크의 기본은 최신 스마트폰이 아니라 신뢰와 책임이다. 상급자의 감시가 없는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이나, 회사 정보가 유출될 지도 모르는 개인들의 기기를 업무에 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직원에 대한 신뢰와 회사에 대한 책임감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외근 중인 직원이 정말 업무 중인지, 도중에서 차나 한 잔 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타블렛 화면을 보는 직원이 주식화면을 보는지 업무 자료를 읽는지도 알기 어렵다. 하지만 신뢰가 형성되어 있다면 차 한잔 하면서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새로운 기획을 위해 충전 중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을 때 소모되는 관리비용은 상당할 수 밖에 없다. 특히 화이트컬러 지식 노동자의 경우 조직이 개개인의 몰입과 관심을 완전히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근무시간이라고 해서 평소의 관심이 전기스위치 내리듯 내려지는 것이던가? 반면 휴일에 나들이를 떠났다고 해도 우연히 마주친 평소 업무와 관련 있는 부분은 보다 유심히 관찰하고 눈여겨 보는 것은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과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놀고 있지 않음’ 을 기존의 방식으로 보여주기 위해 소모되는 에너지, 예를 들면 굳이 대면접촉이 필요하지 않은 업무를 하는 사람들의 출퇴근, 상사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인터넷 서핑이나 하는 야근, 핵심보다 첨부자료로 두툼해지는 보고서 들에 낭비되는 에너지를 더욱 생산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스마트워크이다.
스마트워크에서도 ‘놀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은 필요하다. 책임을 다하는 자세로 상사와 조직과 적극적인 소통을 해야 신뢰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마트워크의 업무 방식은 그 자체로 투입보다는 성과 중심적이 된다. 얼굴도장 찍기, 자리 지키고 있기 대신 성과를 통해 놀고 있지 않음을, ‘내가 일을 잘하는 방법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음’을 똑똑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스마트워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