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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 효창공원

(한국역사학과 황선익 교수)

효창공원(서울 용산구 효창동 255 일원)은 자연과 어우러진 도시공원이자, 독립운동가의 묘역이 공존하는 이색적인 곳이다. 김구 묘소, 임시정부 요인 묘역, 삼의사 묘역과 다양한 기념물 등이 어우러진 효창공원은 근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공간이다.

효창공원의 역사는 조선 왕실의 묘원인 효창원에서 시작된다. 효창원은 조선 22대 왕 정조의 장자였으나 5세의 어린 나이로 죽은 문효세자의 묘원이었다. 묘역이 넓고 소나무숲이 울창했던 이 곳에는 정조의 후궁이자 문효세자의 생모인 의빈 성씨의 묘, 순조의 후궁인 숙의 박씨의 묘와 그의 딸인 영온옹주의 묘가 함께 있었다. 그러나 일본 군대가 요지에 주둔하며 병참 시설물을 만들어 묘원은 훼손되기 시작했고, 공원까지 조성되면서 묘원의 기능은 사라졌다. 급기야 효창원의 원과 묘들은 1945년 3월 강제로 서울 밖으로 이장되었다. 그렇게 효창원은 사라지고, 서삼릉(경기도 고양시)이 생겨났다.

▲ 1925년 당시 효창공원 골프장/ 출처 서울역사 아카이브(H-TRNS-75580-877)

왕실의 공간이었던 효창원은 일제강점기에 골프장과 공원으로 변모하였다. 1921년 효창원 한복판에 9홀 규모의 골프장이 만들어졌고, 1924년에는 효창원 일부가 공원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순환도로와 벚나무, 플라타너스 등 외래 수종이 들어선 효창원은 일종의 유원지로 기능했다. 공원이 된 효창원은 일반인들의 이용에 제약은 없었으나, 사실상 용산 일대에 몰려 사는 일본인들의 전유 공간이 되었다. 1940년 효창원은 경성부의 ‘정식 공원’이 되었다.

효창공원은 광복 이후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1946년 백범 김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일본에 있던 삼의사(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묘역을 조성한 것이다. 1948년 9월에는 중국에 있던 이동녕, 차리석의 유해가 봉환되어 묘역이 조성되었다. 이동녕과 차리석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역사를 함께 한 대표적인 인물로 한국독립당의 주역들이었다. 김구는 후견인과 다름없었던 이동녕과 임시정부 수호를 함께 한 차리석의 묘역 조성에 힘을 쏟았다. 1948년 10월에 서거한 임시정부 군무부장 조성환이 안장되면서 3인의 묘역은 ‘임시정부 묘역’으로 인식되고 불려지게 되었다. 김구가 직접 꾸린 효창공원의 묘역에는 역설적으로 김구가 마지막으로 안장되었다. 1949년 7월 김구의 묘소가 효창공원 서편에 조성되었다. 이후 효창공원에는 순국선열 7위의 영정을 모신 의열사가 세워지고, 안중근 의사의 가묘도 조성되었다. 식민도시 경성의 도시공원이었던 효창공원은 이제 민족적 성역으로 변모하였다.

▲ 1968년 효창공원 모습

김구와 임시정부의 상징 공간으로 자리잡은 효창공원은 1950년대 효창운동장 건립이 추진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1956년 국회(당시 민의원)는 의도적 성역 훼손이라고 반발하며 결의서를 채택하기도 했지만, 결국 막아내지 못했다. 묘역과 그 앞을 가로막은 운동장, 어울리지 않는 둘의 조합은 이렇게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효창운동장의 철거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건립 당시부터 아직도 이어지고 있으나, 동대문운동장 철거 이후 도심 속 공공 운동장이 희소해진 탓에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때 ‘밀림’이라고도 불린 효창공원은 마치 불모지처럼 방치되었으나, 1972년 서울시가 10개년 계획으로 조경 사업을 추진하면서 경관을 회복해갔다. 1977년에는 다시 ‘효창공원’으로 정식 지정되었다. 1988년 정부 주도로 효창공원 정비공사가 시작되어 공원의 조경과 의열사 및 창열문 건립, 묘역 정비 등이 이뤄졌다. 효창공원의 역사적 가치는 사회적으로 재평가되어 1989년 6월 국가 사적이 되었다. 2002년 김구의 묘소와 마주하는 공간에 백범김구기념관이 건립되면서 효창공원 일대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금의 효창공원 / 출처 효창공원

조선시대 왕실 묘원, 일제강점기 골프장과 공원이었던 효창공원은 광복 후 독립운동의 상징적 공간으로 재편되었다. 그러면서도 공원으로서의 경관과 기능을 겸비하고 있다. 효창공원 곳곳에는 각종 기념비와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 중에는 원효대사의 동상이 있다. 동상이 세워진데는 그에 앞서 명명된 ‘원효로’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다. 1946년 효창공원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일본식 길이름 ‘원정통’이 원효로로 명명되었고, 그로부터 20년 이상 지나 비로소 동상이 세워진 것이다. 효창공원 안에는 이봉창 외 역사적 인물의 동상이나 다양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백범 김구의 묘소와 마주한 백범김구기념관의 ‘추모의 공간’

효창공원을 찾는 이는 다양하다. 유소년축구대회에 참가하는 학생과 가족, 일상적 휴식을 만끽하는 주민, 효창공원의 묘역을 둘러보며 역사탐방을 하는 시민, 백범김구기념관을 찾는 관람객 등 사람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효창공원을 찾는다. 동기는 다르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효창공원은 나름의 방식으로 안식을 준다. 자연과 숨쉬며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서울 속 명소, 바로 효창공원이다.

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황선익 교수
국민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졸업하고 2017년 국민대학교 글로벌인문지역대학 한국역사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주요 활동으로는 서울시 문화재위원, 국립대한민국임시 정부기념관 운영자문위원 등이 있으며, 한국근대사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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