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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드립니다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 톹아보기 국민대학교 글로벌인문 지역대학 한국역사학과 장석흥 교수

우리 문화가 세계 무대의 중심에서 이토록 뜨거운 적이 있었나. 우리의 대중음악과 영화가 기념비적인 소식을 쏟아내는 요즘, 한국역사학과 장석흥 교수는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백범 김구가 그토록 원하던 ‘높은 수준의 문화국가’에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요즘, ‘나의 소원’은 우리에게 또 다른 울림을 준다.

<백범일지> 중 ‘나의 소원’

‘나의 소원’은 현재에도 진행되는 우리의 소원

교과서에 실려 있는 <백범일지>의 ‘나의 소원’에는 ‘하느님이 소원을 물으면, 대한 독립이고, 다시 물어도 대한의 자주독립’이라는 백범 김구의 소망이 담겨 있다.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으로 잘 알려진 ‘나의 소원’은 전체 중 앞부분에 해당하는 내용만이 교과서에 실려 있어, <백범일지>를 완독하지 않은 이상 백범 김구의 소원 너머의 꿈인 ‘아름다운 문화국가 건설’이라는 메시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백범 김구 ©백범김구기념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백범일지> ‘나의 소원’ 중-

▲백범일지가 백범 김구의 자전적 전기라면, 백범일지의 부록인 ‘나의 소원’은 미래 우리나라에 대한 전망이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 ‘나의 소원’이 발표되던 무렵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했지만, 나라를 세우지 못한 채 남북이 분단되어 있었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힘겨루기하는 가운데 우리 민족은 내분과 갈등이 격화되었죠. 이때 백범 김구는 ‘나의 소원’이라는 글을 통해 나라의 운영 방안을 내놓습니다. 남을 모방하는 나라가 아닌, 전통과 외래문화를 잘 조화시켜 문화를 창조하면 우리가 세계에서 유일한 문화국가가 된다는 것이지요. 구한말부터 해방에 이르는 기간 동안 동북아 지역의 세계사적 격변기, 그 한가운데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투쟁한 한 70대 노인은 미래를 열어나갈 우리의 청년들에게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문화를 일궈나갈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백범 김구는 ‘높은 수준의 문화국가’ 건설을 젊은이들에게 맡겨야 하고, 새 세대가 그 일에 매진하면 30년 안에 실현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백범 김구가 바라는 우리나라는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인류 평화에 이바지하는 나라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부강한 나라보다는 높은 문화를 지닌 나라이며, 높은 문화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더 나아가 남에게도 행복을 준다고 굳게 믿었다.
“백범 김구는 ‘높은 수준의 문화국가’ 건설을 젊은이들에게 맡겨야 하고, 새 세대가 그 일에 매진하면 30년 안에 실현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백범 김구의 말대로 우리나라는 30년이라는 시간을 걸쳐 세계인과 함께 즐기는 우리의 문화를 꽃피운다. 백범 김구 서거 후 6·25전쟁과 기나긴 독재로 암울한 시대를 거쳐야 했지만, 민주화의 진전, 경제·문화 성장을 일구며 1990년대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류라는 열풍을 일으켰고, 90년대 한류는 지금의 K컬쳐로 이어지고 있다. 백범 김구가 꿈꾼 문화국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백범 김구의 꿈은 곧 우리가 명심해야 할 미래의 꿈이다.
“사십 대 중반의 백범 김구가 임시정부에 가서 문지기라도 시켜달라고 했던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독립운동 시절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속에서 모든 이들이 절망할 때, 불사조처럼 나타나 독립운동의 기운을 불어넣은 이가 백범 김구이고, 독립을 위한 고난의 행군에서 전진하고 또 전진한 이가 김구입니다. 그리고 평생을 바친 독립운동과 조국의 독립, 이후 민족의 미래를 위해 아름다운 문화국가를 제시하죠 ‘나의 소원’에는 문화국가로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습니다.”
문화국가를 향한 백범 김구의 꿈은 오늘날 우리가 가슴 깊이 새기고, 이뤄내야 할 미래의 꿈이다. K컬쳐가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문화로 주목받는 지금, 백범 김구가 나라를 위해 미래 세대에게 당부하는 ‘나의 소원’에는 한평생 독립을 위해 헌신한 70대 노인이 꿈꾸는 이상적인 대한민국의 미래가 담겨 있다.

백범김구기념관

백범 김구의 어린 시절부터 서거까지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관 1층의 중앙홀에는 김구의 좌상이 놓여있다.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백범 김구의 삶과 사상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와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다.

▲©백범김구기념관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임정로 26 문의 02-799-3400 관람시간 하절기(3월~10월) 10시-18시(입장마감 17시) 동절기(11월~2월) 10시-17시(입장마감 16시)

<백범일지>에 나오는 백범 김구와 4인의 독립운동가
그들은 백범 김구와 함께 어떻게 나라의 독립을 완성했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끈 또 다른 수장 석오 이동녕

석오 이동녕은 1930년 백범 김구와 한국독립당을 조직, 이사장에 추대되었다. 두 번째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1930∼1932)이었으며, 1932년 백범 김구와 함께 윤봉길·이봉창 의거를 지도해 윤봉길 의사가 일본 군인을 숙청하는 데 힘을 보탠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과 같이 저장성 자싱 수륜사창으로 피신한다. 1935년에는 세 번째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1935∼1939)을 맡는다.

석오이동녕기념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이자, 해외독립운동을 이끈 석오 이동녕의 삶과 사상을 살펴볼 수 있다. 연보를 통해 석오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으며, 교육자, 언론인로서의 활동을 엿볼 수 있다. 석오이동녕기념관은 석오 이동녕의 생가 옆에 자리하고 있다.

▲©오이동녕기념관 주소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동리4길 35 문의 041-521-3355 관람시간 하절기(3월~10월) 9시-18시/ 동절기 9시- 17시

독립운동의 길을 함께한 동지이자 가족 안중근 의사

안중근 의사는 동학농민운동 당시 농민군의 접주였던 백범 김구를 처음 만난다. 안중근의 부친인 안태훈은 농민군을 토벌하려는 갑오의려의 대장이지만, 백범 김구가 대단한 인품을 지닌 것을 알고, 농민군에 의해 백범 김구가 습격을 받고 있을 당시 숨겨주었다. 이것이 안중근 의사와 백범 김구의 첫 만남이다. 1919년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면서 두 가문은 독립운동의 길을 함께 걸어간다. 안중근 의사의 친동생 안정근과 안공근이 독립투사가 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활동하고, 안정근의 차녀와 백범 김구의 장남은 독립운동을 하다 혼인해 두 가문은 사돈 관계로 발전한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중근 의사에 대한 업적과 유품, 어록 및 명언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 외에 안중근 의사의 종교인 천주교와 국내 활동, 해외 활동과 의병투장 하얼빈 의거, 옥중에서의 생활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기념관 내부에는 안중근 의사 동상과 동지들이 단지동맹을 통해 혈서로 직접 쓴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 쓰여진 대형 태극기가 걸려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소월로91 문의 02-3789-1016/1026 관람시간 하절기(3월~10월) 10시-18시/ 동절기(11월~2월) 10시- 17시

한국 독립당 결성에 힘을 보탠 도산 안창호

도산 안창호는 1930년 1월 상해에서 백범 김구, 석오 이동녕 등과 함께 한국독립당을 결성한다. 1932년 일본의 중국본토침략정책에 대응하여 독립운동 근거지 건설 계획을 재검토하던 중, 같은 해 4월 윤봉길 의사의 상해 훙커우공원 폭탄사건의 여파로 일본경찰에 붙잡혀 서울로 송환되었다. 안창호는 교육을 통해 민족 혁신을 이룩한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로 “나 하나를 건전한 인격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을 건전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라며 인격의 혁신을 강조했다.

도산안창호기념관

도산 안창호와 관련된 문서·사진·서적·잡지·유물 등 17,000여 점의 자료가 보관되어있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모습을 담은 사진 80여 점과 독립운동과 관련된 서한 19점, 대한민국임시정부 사료집, 도산일기, 도산 안창호의 가족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는 도산 안창호의 성장과 생애를 구국운동기, 미주활동기, 임시정부와 대독립당 활동기, 국내활동, 서거로 살펴볼 수 있다.

▲©도산안창호기념관 주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 45길 20 문의 02-541-1800 관람시간 평일 10시-18시 / 토·일요일  11시-18시

일본군 수뇌부를 숙청하다 윤봉길 의사

윤봉길 의사는 백범 김구의 요청에 의해 1931년 7월 이래 사해다관이란 찻집에서 한 달에 두세 번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며 ‘일본왕 처단’이라는 의거를 추진했다. 1932년 4월 29일, 상해 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천장절 겸 전승축하기념식에서 윤봉길 의사는 폭탄을 투척해 일본군 수뇌부를 숙청한다. 30만 명의 중국 국민당군이 당해내지 못한 일본군을 상대로 최전선에서 홀로 독립전쟁을 벌인 인물이다.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입구에는 윤봉길 의사의 흉상이, 기념관 옆에는 윤봉길 의사 동상과 숭모비가 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윤봉길 의사의 업적과 그가 생전에 사용했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독립운동 당시 활약했던 사진, 일제에 의해 체포되기까지의 사진 등 20대 청년의 놀라운 애국정신을 느낄 수 있다.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 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매헌로99 문의 02-578-3388 관람시간 하절기(3월~10월) 10시-18시 동절기(11월~2월)  10시-17시(종료 30분 전 입장 마감)

Tips. 서영해를 아시나요?

▲©부산박물관

대한민국임시정부 프랑스 특파위원인 서영해는 1929년, 3·1운동과 <독립선언서>를 주제로 <어느 한국인의 삶Autour d'une vie coréenne> 이라는 역사 소설을 발표한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가 세계 각국에 널리 전파되었으나, 일반 대중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에 <독립선언서>의 정신이 널리 알려진 것은 10년 뒤 이 책을 통해서였다. 불어를 익힌 지 8년밖에 되지 않은 한국 청년이 쓴 소설은 간결하고 유려한 문장, 심오하면서도 뛰어난 시적 운율을 지니고 있어, 유럽인들은 <어느 한국인의 삶>에 매료됐다. 이 책은 프랑스를 넘어 벨기에, 스페인, 이집트 등지에 알려지면서 국제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서영해는 유럽의 저명한 평화주의자들과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로맹 롤랑, 20세기 대표적 큐비즘 작가인 피카소 등 유럽의 지성과 폭넓게 교류하며, 세계 평화와 함께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널리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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