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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제가 할 일은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예술대학 예술통합행정실 조현 선생님)

우리 대학에는 행정과 창작, 두 개의 세계를 오가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온 교직원이 있다. 예술대학 예술통합행정실에서 근무 중인 조현 선생님은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이후 소설가로도 활동하며, 문학과 예술에 대한 꾸준한 사유를 이어오고 있다. 전공과 직업, 그리고 창작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 안에서 만날 수 있는지, 그의 이야기를 통해 들어보았다.

Q1.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예술대학 예술통합행정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조현입니다. 교직원으로 일하면서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서 소설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Q2.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하셨는데 신춘문예에 입선하시게 된 이력이 독특합니다.

A.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기를 원했던 부모님의 기대 때문에 행정학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 대학 교직원으로 입교하여 학교 행정에 참여하고 있으니 전공을 살렸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다만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인문학에도 관심이 많아서 학창 시절에는 행정학 외에도 문학이나 철학 수업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 배웠던 루카치의 문예이론이나 그리스 고전철학의 개념들이 꾸준하게 글을 쓰게 만든 자극이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사회과학인 행정학에서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행정학 수업에서 터득한 현실 논리로 인해 인문학적 사유가 우리의 삶에서 기능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도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오전의 철학 수업에서 ‘파이데이아(paideia)’라는 개념을 배우고 다음 수업인 행정학 시간에 이게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를 전공 교수님께 여쭤보는 식이었죠. 그때 저한테 생뚱맞은 질문을 받으셨던 교수님들께 약간 죄송하기도 하네요.

지금 되돌아보면 당돌한 지적 유희들이었지만 이렇게 학창 시절에 전공을 건너뛰며 품었던 지식과 사유들이, 졸업 후에도 마치 겨울밤 눈길을 걸을 때 문득 켜지는 레몬 빛 가로등처럼 저 자신을 보살펴 주었던 셈이지요.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그런 사색의 결과를 습관처럼 기록해두곤 했습니다. 좋게 포장하자면 일종의 습작 시절이었던 셈이죠. 이렇게 사색과 더불어 글쓰기를 하는 습관이 이후 교직원으로 근무하는 동안에도 이어져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으로 연결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 공동소설집 발간 후 동료 작가들과 함께 교류하고 있다.

Q3. 당선 이후 주로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요?

A. 사실 소설을 쓰기 전에 영화 대본을 먼저 썼습니다. 입교한 후에 학교의 배려로 퇴근 후에 야간제인 종합예술대학원에서 시나리오를 전공했거든요. 이때 졸업작품 삼아 쓴 대본이 거의 영화로 만들어질 뻔했는데 아쉽게도 영화계의 속어대로 ‘엎어지게’ 됐습니다. 이후 소설 장르로 마음을 바꿔 습작을 하게 됐고 이게 신춘문예에 당선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 등단작이 기존의 문단 소설과 거리가 있는 SF 형식의 작품이었기에 당시에 꽤 화제가 됐습니다. 이 작품에 대한 문단의 평가가 좋았고 결국 영어로 번역되어 하버드대학교의 앤솔로지에 실리게 됐습니다. 이후에 발표한 작품도 일본어와 중국어로 번역되어 현지 문예지에 실리게 되는 등 문단의 호의적인 평가를 받게 됐습니다.

다만 제가 처음 본격적으로 창작을 시작한 계기가 시나리오였기에 여기에 대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장편소설을 쓰고 그것을 시나리오로 각색하여 작품의 영화화에 참여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긴 합니다.

Q4. 여전히 ‘문학도’를 꿈꾸는 교내 구성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춘문예 당선(또는 문학의 본질)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무엇일까요?

A. 최근 우리 학교 신문사가 주관하는 북악문화상의 소설과 수필 부문 심사를 했습니다. 심사평에도 적었지만, 이런저런 공모전 심사를 맡을 때 정말 곤란할 때가 있습니다. 제출된 작품들이 모두 마음에 들기에 입상작을 선택하기 어려운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때도 응모작 상당수가 맘에 들었기에 심사 마지막 날까지 선택 장애를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에는 선택해야 했죠. 사실 신춘문예든 다른 문학공모전이든 어떤 글은 당선작으로 선정되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합니다. 이럴 때 당선작을 선정하는 어떤 기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문학을 평가하는 많은 잣대가 있겠지만 제 경우에는 글쓰기의 핵심적 요소는 진정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성이란 말 그대로 진실하고 참된 무언가를 말합니다. 학습으로 독서하는 행위를 제외하고, 저는 누군가가 다른 이의 글을 기꺼이 찾아 읽는 행위의 밑바닥에는 인간의 내부 존재하는 결핍과 고독과 슬픔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인생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삶이 막막해지는 순간이 있을 겁니다. 연약하기에 사람인 것이고 이게 바로 문학이 포착해야 하고 또 지켜봐야 할 순간이겠지요. 하여 이런 순간을 묘사한 글을 읽으면 말문이 막히기도 하고, 때로는 눈시울이 붉혀지기도 하고, 때로는 정말 오랫동안 잊었던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글을 통해 읽는 이와 글쓴이가 머뭇머뭇 서로의 뺨에 손바닥을 대보며 마음을 교환하는 행위가 문학의 핵심적 요소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말씀드려 봅니다.

▲ 대학원생과 함께 소통의 시간을 가지며 캠퍼스 라이프를 만끽한다.

Q5. 최근 드라마나 영화 등 K-콘텐츠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추천하시는 작품이 있다면?

A. 최근에 눈물 콧물을 빼면서 본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추천합니다. 아이유가 연기한 주인공 애순이는 학교조차 다니지 못할 상황에서도 시인을 꿈꿨던 당차고 야무진 소녀였습니다. 이 소녀가 굴곡진 현대사를 통과하며 인생을 펼쳐내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 한국인들만이 이해할 법한 이 드라마가 뜻밖으로 전 세계인들도 울고 웃게 만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느 문화권에나 존재하는 전통적 가족애가 경제개발과 같은 산업화 논리와 부딪치며 어떻게 상처받고 망가지며 그러다가도 다시 어떻게 말간 새살이 돋아나는지를 이 드라마는 보여줍니다. 즉 역사와 문화라는 옷은 각자 다르지만 전 세계인들은 그 내면에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을 ‘어떤 공통된 무엇’을 가지고 있기에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함께 울고 웃었던 것이지요.

이런 측면에서 우리네 전통적 심성이 어떻게 고단한 역사의 흐름을 견뎌내고 달궈지는지를 보여주는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 원작의 드라마 <파칭코>를 함께 보시길 추천합니다.

Q6. 문학도로서, 인문학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 AI 시대의 도래로 인해 정형화된 지식의 암기와 응용, 혹은 반복적 패턴의 노동을 기본으로 하는 직업들이 소멸된다고 떠들썩합니다. 모든 산업의 급속한 변화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문명 자체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때야말로 진정한 인문학의 부흥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좋든 싫든 인간이 정형화된 노동에서 풀려난다면 보다 많은 여가시간이 생기게 될 테고 이 중에 상당 부분은 자아실현적 레저와 취미 활동, 교양 습득과 인간에 대한 탐구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즉 AI의 시대가 도래하면 인간은 결국 인문학에 몰입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실 그것밖에는 할 게 없어지기 때문이죠. 사실 꽤 많은 SF의 고전들이 오래전부터 이런 문제를 이미 예측했습니다. 이를테면 아서 C. 클라크의 1953년작 <유년기의 끝>이란 작품에는 지구에 도착한 후 인간을 기아와 질병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오버로드란 외계인이 나옵니다. 이렇게 외계인이 선사한 무한한 기술로 노동에서 해방된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인문학 혹은 예술에 대한 몰입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는 것이지요.

물론 소위 강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하면 인문학에 기인하는 창의성마저 위협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대에도 여전히 시장경제가 여전히 존재한다면, 시장이 창출하고 유통하는 가치는 결국 소비자인 인간의 눈높이나 ‘인간애’에 맞춰질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여전히 인문학의 가치는 유효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AI의 시대가 도래하면 인문학에 대한 다양한 몰입 과정 자체가 새롭게 떠오르는 산업군이 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Q7. 요즘은 주로 학교에서 어떤 업무를 하고 계신가요?

A. 현재 예술대학에서 영화기자재실 관리와 함께 영화전공에서 설립한 학교기업 할엔터테인먼트 운영을 맡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전공에서 수행하는 RISE사업이나 학교기업지원사업 등의 관리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학교 기업이라고 하면 좀 생소하게 생각하실 분들이 많을 텐데 산학협력을 통해 재학생의 현장실습을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르실 거예요. 실제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나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를 통해 배급되는 드라마와 같은 콘텐츠의 제작공정 일부를 수주하여 진행하는 실습이라서 참여 학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습니다. 자신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고 나중에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보는 것은 정말 보람된 일이거든요.

영화전공에서 설립한 학교 기업이긴 하지만 영화전공뿐만 아니라 인문 사회계열은 물론 공학전공에 이르기까지 영상 콘텐츠 제작에 뜻이 있는 교내 재학생 모두가 참여할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학교 기업으로 문의를 부탁드립니다.

Q8. 퇴근 후, 그리고 주말의 여가를 어떻게 활용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A. 평일 퇴근 후에는 주로 책을 읽습니다. 보통 일주일에 서너 권은 읽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정말 순수하게 책 읽기가 좋아서입니다. 물론 모든 책을 많이, 빨리 읽는 건 아닙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전집은 10년 넘게 읽고 있습니다. 문장이 너무 아까워 하루에 한 문단 정도씩만 아껴 읽고 있기 때문입니다. 퇴근 후 작가이기 전에 한 명의 독서인으로 돌아가 책을 읽는 것은 무엇보다도 행복한 시간입니다.

물론 글도 씁니다. 보통 주말에 글을 씁니다. 등단 후 한동안은 금요일에 퇴근하면서 휴대전화를 꺼놓고, 주말에는 온전히 글을 쓰고,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면서 휴대전화를 켜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게, 책상 앞에 앉아 있다고 해서 바로 소설이 씌여지는 것은 아니고 사실은 꽤 오래 공을 들여야 구상한 작품 속 인물에 몰입이 되는데 이렇게 애써 창작에 몰입한 마법의 순간이 전화 한 통이나 밥 먹고 하라는 노크 소리에 깨지기 때문이죠.

그런데 가면 갈수록 이렇게 글 쓰는 생활이 쉽지가 않네요. 주말이면 기꺼이 참석해야 할 경조사나 모임이 생기게 되고 하다못해 일요일 오후에는 아파트 재활용품 분류라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작가들이 꿈꾸는 창작 여건 중의 하나가 (제목만 적으면 소설이 술술 자동으로 써지는 타자기겠지만 이건 너무 양심이 없는 것 같으므로) 가족이나 지인과 동떨어져 혼자만의 세계로 몰입하여 글을 쓸 수 있는 독립적인 작업실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고립된 공간에서 인간이 부대끼는 얘기를 가장 잘 쓸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이긴 합니다.

Q9. 재직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나 활동이 있었다면?

A. 2016년 산학협력단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영화전공 교수님들을 도와 학교기업 할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게 된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학교기업의 이름에 들어간 ‘할’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전설적인 SF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등장하는 최초의 인공지능 컴퓨터 ‘HAL9000’에서 따왔습니다. 이름에서 보듯이 인간의 따뜻한 엔터테인먼트 감성과 미래지향적 기술을 결합하여 진심을 담은 콘텐츠 제작을 목표로 한 사업입니다.

영화전공 많은 재학생이 학교 기업 현장실습을 통해 메이저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렇게 포트폴리오를 쌓은 후 관련분야로 취·창업합니다. 이후 영상산업계에서 주목받은 전문가가 된 졸업생들이 다시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현장실습을 돕는 것을 보며 사업의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성곡 선생님의 어록 중에 ‘일하자 더욱 일하자 한없이 일하자’라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리고 연예계에는 ‘덕업일치’라는 재미난 말이 있기도 하지요. ‘덕업일치’란 자신의 덕질이 곧 직업이 된다는 근사한 말인데요, 저야 말로 학교기업 운영을 도우면서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산학협력을 통한 학교 발전과 재학생의 진로에 기여를 하면서도 제 자신의 꿈인 영상제작과 창작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성곡 선생님의 교훈처럼 기꺼이 일하면서도 정말로 보람되고도 행복한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Q10. 마지막으로, 퇴직 후 혹은 제2의 삶으로서 계획하고 계신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흔히 연애의 이상적인 마침표는 결혼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직장 생활의 행복한 마무리는 정년퇴직이 되겠지요. 저 역시 어느덧 정년이 가시적인 거리에 들어온 나이가 됐기에 퇴직을 앞둔 여러 교직원 선생님들을 보면서 이후의 계획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퇴직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그동안 구상만 하고 미처 시작하지 못한 장편소설부터 쓰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장편을 원작으로 삼아 시나리오 작업도 해보고 싶고요. 예전에 뉴욕이나 와이오밍과 같이 해외에서 진행되는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적게는 1개월에서 많게는 6개월씩 걸리는 기간이었습니다. 하여 체류비 전액을 지원받음에도 불구하고 참여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는데 퇴직 이후에는 그런 기회를 가져볼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 혹은 재학생 여러분도 각자 꿈꾸는 소중한 미래가 있을 겁니다. 전 지금까지 학교 생활을 하면서 사진촬영이나 미술, 그리고 뜻밖으로 연기나 뮤지컬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준 교직원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분들 모두가 자신의 꿈을 위해 부디 혼자만의 시간에 오롯이 몰입하며 각자의 정년 퇴직 혹은 졸업 후의 진로를 미리 준비하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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