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태권도 경기는 파리의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건축물인 그랑팔레(Grand Palais)에서 화려하게 개최되었고, 한국의 박태준 선수와 김유진 선수가 각각 금메달을, 이다빈 선수가 동메달을 획득했다. 이전 대회였던 2020도쿄올림픽에서는 한국이 금메달을 단 1개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의 선전은 더욱 빛이 났다.
그런데 이번 파리올림픽의태권도에서는 한국 선수들의 선전뿐만 아니라 한국의 전자판정 시스템이 올림픽 최초로 사용되었다는 또 하나의 큰 의미가 있다.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전자판정 시스템은 유럽에 본사를 둔 D사의 제품이 계속해서 사용되어 왔는데, 이번 파리올림픽에 최초로 국내 기업인 KPNP(대표: 이인수)의 제품이 사용된 것이다. 더욱 주목할 것은, 이 제품은 국민대학교(연구책임자: 이원재)가 주관기관으로 KPNP와 함께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개발의 성과가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2020도쿄올림픽까지 사용되었던 전자판정 시스템과 이번 파리올림픽에 사용된 시스템의 주요한 차이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충격감지센서에서 변화가 있었다. 충격감지센서는 머리 및 몸통 보호대의 안쪽에 설치되어, 공격하는 선수들의 발차기나 주먹 타격의 물리량을 전기적 신호로 읽어내는 센서이다. 도쿄올림픽까지 사용되었던 충격감지센서는 보호대의 안쪽에 마치 전선 케이블처럼 배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파리올림픽에 적용된 충격감지센서는 성형단계에서부터 2차원 평면의 필름 구조로 제작되어 충격감지 면적을 확장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근접감지센서에서 변화가 있었다. 태권도에서의 득점은 경기규칙에서 정하는 복사뼈 이하의 발, 그리고 주먹에 의한 타격만 인정이 되어야 하므로, 발과 주먹에 타격 지점과의 근접 정도를 감지하는 센서가 필요하다. 즉, 팔꿈치나 무릎 등의 부위로는 아무리 타격을 해도 득점이 되지 않아야 한다. 도쿄올림픽까지 사용된 제품에서는 발과 주먹에 자성(magnetic) 기반 센서 장치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번 파리올림픽 제품에서는 무선주파수를 통해 데이터를 읽어내는 인식시스템, 즉 RFID 기술이 적용됐다. 이는 향후, 발등 또는 발바닥 공격 등을 구분해 내는 정교함으로 발전될 수 있다.
파리 그랑팔레에서 태권도에 앞서 펜싱(올림픽에서 태권도보다 선배 종목) 경기가 진행되었는데, 펜싱은 선수들이 주로 전진 및 후퇴, 즉 직선 이동을 하므로 선수들의 등 뒤에 유선 케이블을 결착해서 통신을 할 수 있다. 반면, 태권도는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움직이므로, 게다가 2명 선수의 동선이 서로 연속적으로 중첩되므로 유선 케이블을 도저히 사용할 수 없어 무선으로 통신을 해야 한다. 펜싱이 유선전화 기술을 사용한다면, 태권도는 무선전화 기술을 사용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펜싱에서는 선수당 1개의 칼을 사용하지만, 태권도는 한 명의 선수가 오른발, 왼발, 오른손, 왼손 총 4개의 칼을 사용한다고 할 수 있으므로 복잡도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태권도의 기술은 펜싱의 기술보다 고도화가 필요하다.
올림픽에서 또 다른 태권도의 선배 종목인 복싱의 경우, 아직도 전자적인 방식으로 득점을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복싱 종목은 지속적인 판정시비로 몸살을 앓았던 국제복싱연맹(IBA: International Boxing Association)이 배제된 채 IOC가 직접 관리하는 조직(World Boxing)이 올림픽 복싱을 담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올림픽 종목 중 유일한 한국 기원 종목인 태권도에 전자판정이 도입되었던 초창기에는 상당한 비판과 비난이 있었다. 과거의 태권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기계가 판정하는 태권도는 전혀 다른 종목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2024년 한국 프로야구에 자동볼판정시스템(ABS)을 전면 도입하면서도 초창기 비판의 시기를 거쳤으나 이제는 안착되어 가며 혁신을 달성하고 있듯, 이번 파리올림픽을 계기로 태권도 전자판정에 대한 우려와 비판도 많은 부분 불식되고 안착되면서 또 다른 도약의 발판을 맞이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