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6일 폐막한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은 짐 자무쉬 감독의 <파더 마더 브라더 시스터(2025)>에게 돌아갔다. 박찬욱 감독의 최신작 〈어쩔수가없다(2025)〉 공개 후 외신들의 호평이 잇따랐지만 아쉽게도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장기간 침체되어온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개봉을 앞둔 이 시점에서, 그의 전작 〈헤어질 결심(2022)>을 되돌아보는 일은 그의 영화적 세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사랑과 욕망, 윤리적 갈등을 공간과 색, 카메라의 시선과 움직임 같은 시각적 요소로 풀어, 관객들이 그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출처 : 네이버영화 CJ ENM
산과 바다라는 공간의 대비는 영화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전달한다. 수직적 공간인 산은 긴장감을 유발하는 반면, 수평적 공간인 바다는 해방감을 준다. 산은 서래(탕웨이 분)의 남편, 기도수가 사망한 장소로 처음 등장하는데 고립과 단절, 형사인 해준(박해일 분)의 직업적 사명감, 법의 냉혹함을 동시에 담고 있다. 반면 바다는 산과 대비되는 해방과 연대를 상징한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파도는 불안정한 두 사람의 심리를 대변하고 산에서 시작해 바다로 끝나는 서사의 구조는 함께하면서도 결코 함께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운명을 은유한다.
출처 : 네이버영화 CJ ENM
영화에서 색채는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효과적인 장치다. 형사 해준과 용의자 서래의 관계는 빈번하게 등장하는 푸른색으로 상징되며 두 사람 앞에 놓인 법과 윤리, 다가설 수 없는 심리적 거리를 상징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색채는 변하기 시작한다. 차가운 푸른빛 속에, 따스함이 스며들며 서로를 향한 욕망과 긴장감이 드러나는 것이다. 초반의 푸르른 바다는 형사와 용의자라는 긴장된 관계의 표현 수단으로 사용되지만,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단절이 아닌, 서로를 감싸안는 따스함으로 재해석 되는 것이다. 결국 푸른색은 금지와 욕망, 의무와 열망 사이의 복잡한 감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카메라의 시선과 움직임 역시 영화의 중요한 요소다.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카메라는 해준의 시선과 망원경, 스마트폰 화면 등 다양한 매개체를 따라간다. 문자, 음성녹음, 위치 기록 같은 단서는 수사적 증거를 넘어 진실을 밝히려는 해준의 사명감과 “밝혀진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윤리적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수사의 시선이 연모의 시선으로 전환되면서, 관객은 사건의 진실보다 두 사람의 감정 변화에 더 집중하게 된다. 이러한 변주를 통해 영화는 스릴러 장르의 긴장감과 멜로 장르의 설레임을 동시에 담아내며 장르영화의 경계를 넘어 인간 내면의 모순을 탐구하는 것이다.
결국 〈헤어질 결심〉은 관객들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차가운 시선과 뜨거운 감정, 산과 바다, 범죄 수사와 증거인멸이 교차하는 과정에서, 관객은 해준과 서래의 선택 그 자체보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성찰하게 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곧 개봉을 앞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로 이어지며, 우리에게 현대 사회와 인간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제공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