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
2024년 5월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는 소식과 함께 포스터의 원색적인 이미지와 데뷔 후 처음으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드미 모어’의 엄청난 연기가 화제가 되었던 영화 ‘서브스턴스’는 단번에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영화는 정말 오랜만에 퓨어 시네마(Pure Cinema)를 느끼게 해주는 걸작이었다. 우연히 이번 영화도 내가 본 영화 중에 최고의 영화로 손색없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수입한 배우 소지섭의 회사가 국내 개봉을 가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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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본인이 50대를 지나가면서 젊음을 잃어간다는 어떤 절망감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인터뷰를 했다. 파르자 감독과 같은 연령대의 시대를 보내면서 더 큰 공감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의 미장센은 원색적인 색(Color)들을 대비시키며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에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관객들에게 충격적인 비쥬얼 펀치를 날린다. 게걸스러운 먹방, 섹슈얼한 나체, 분장에 가까운 메이크업과 선정적인 의상,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열광하는 사람들 등 가짜 이미지를 통한 인간의 욕망과 허영심을 완벽하게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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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플롯은 1992년도 ‘로버트 저멕키스’ 감독의 블랙코미디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Death Becomes Her)의 오마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똑같다. 늙어가는 자기 모습이 괴로운 스타 메들린이 영원한 젊음을 보장해 주는 신비한 약을 먹음으로써 벌어지는 일들이 두 영화의 공통점이다. 그럼, 영화 ‘서브스턴스’는 뭐가 다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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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브스턴스’는 첫 장면부터 영화의 본질에 대해서 날카롭게 묘사하는 예술작품이다. 1969년 아방가르드 영화감독 홀리스 프렘프턴이 연출한 ‘레몬’(Lemon)이란 제목의 구조영화(Structural Film)가 있다. 현재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7분 동안 첫 암전 화면에서 조명에 의해 서서히 밝아지는 매끈한 표면의 유혹적인 레몬의 화려한 모습이, 조명이 다시 어두워지면서 실루엣만 남은 볼품없는 모습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연출자 홀리스 프렘프턴은 이런 인터뷰를 했다. “육감적인 레몬은 자신을 집어삼킨 ‘같은’ 조명에 의해서 세상에 다시 노출된다. 그 이미지는 환상의 공간적 설득에서 그래픽 아트의 공간적 문법으로 변화한다.” 즉, 영화 ‘레몬’에서 증명하는 영화의 본질은 ‘외모를 현혹하는 이미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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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으로 ‘레몬’ 자체는 변한 게 없지만, 필름에 찍힌 영화 속 아름다운 ‘레몬’의 겉모습은 ‘거짓’이고 조명과 필름이라는 화학적 물질이 만들어 낸 ‘환상’이라는 것이다. 영화 ‘서브스턴스’의 첫 오프닝 장면에서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새겨진 분홍색 별 모양의 플레이트는 바로 ‘레몬’의 대체 이미지이며 시간이 지나면서 ‘환상’이 퇴색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