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조너선 글레이저 감독의 2023년 작품으로서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사령관이었던 실재인물 루돌프 회스와 그의 아내 헤드윅 회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그들의 가족은 수용소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어진 맨션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으며 이러한 특혜는 바로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제목과 같이 특혜를 받는 특별한 장소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영화는 시작 후 3분 55초 동안 암전으로 진행되는데 이 순간 동안 마치 SF영화의 블랙홀 장면에 어울릴 듯한, 지루하지만 어딘가 공포스러운 모노톤의 전자음악을 들려준다. 이 장면은 마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인트로 장면과 같이 마치 관객들에게 이제 자리에 앉아서 영화를 감상할 준비를 하라는 감독의 배려 아닌 배려와 함께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장엄한 준비과정을 느끼게 할 수 있는데,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인트로도 과연 그런 감독의 의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할 무렵 영화는 숲속의 새 지저귀는 소리와 함께 평화롭게 피크닉을 즐기는 한 독일 가정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시작된다. 조금 전 공포스런 음악에 대비되는 푸른 하늘에 짙은 녹음이 185:1 화면비율로 펼쳐지면서 첫 장면부터 롱 테이크에 카메라 앵글은 매우 일반적이다. 역사의 한 비극이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주제로 한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 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등 그동안 아름다운 미장센의 영화들은 많이 있었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과거의 헐리우드 스타일의 영화가 아닌, 뭔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영화의 촬영을 맡은 촬영감독은 두 번이나 미국 아카데미 영화 촬영상 후보에 오른 폴란드 출신의 우카시 잘 감독이다. 우카시 잘 감독은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영화 ‘이다(Ida)’를 촬영한 미장센의 마스터이다. 솔직히 조너선 글래이저 감독보단 우카시 잘이 촬영한 영화라서 더 보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가 촬영한 종전의 영화들과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촬영이었다. 우카시 잘은 인터뷰에서 그동안 자기가 배운 촬영에 대한 모든 지식을 버리고 백지에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최대한 ‘멋있지 않게’ 촬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말을 제대로 해석해보면 누구보다 촬영을 잘할 수 있는 실력과 지식이 있기 때문에 ‘잘 못 찍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우카시 잘 촬영감독은 총 10여 대의 카메라와 한 대에 각 두 명씩, 20명의 카메라 스태프가 마치 스위스 치즈처럼 세트의 벽에 여러 군데 구멍을 뚫어서 블루투스가 아닌 전선과 케이블로 모두 연결하고 마치 독일 나치의 ‘빅 브러더’ 콘셉트로 이 가정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으로 얻어냈다고 한다. 물론 배우들은 빈방에서 카메라만 자신들을 비추고 있는 상황에서 연기를 해야만 했다. 수 십 대의 멀티 카메라로 찍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유명한 작품 ‘어둠 속의 댄서’가 이미 존재했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선 라스 폰 트리에의 화려한 앵글은 단 한 장면도 보이질 않는다.
조너선 글래이저 감독은 감정씬에서 조차 배우들의 클로즈업을 일부러 피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관객의 감정을 내 맘대로 조정하고 싶지 않다’였다. 어느 영화이든지 처음 상영되면 영화의 캔버스인 프레임, 즉 화면비율을 제일 먼저 분석해야 하는데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사용한 185:1의 비율은 인물의 클로즈업에 강한 화면비율로서 감독이 인물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추측을 했지만, 오히려 롱 숏이나 마스터 숏으로 클로즈업을 배제하고 감정을 숨겼다.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의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장면은 괴물의 울음소리가 나올 때 등장하는 사과를 몰래 흙 속에 숨겨서 수용소 포로들에게 나누어주던 어느 소녀의 모습이다. 이 소녀의 모습은 암흑 속에서 적외선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되어 마치 유령같이 얼굴 표정의 묘사가 완전히 삭제된 채 등장한다.
그녀의 신체 온도를 보여줌으로써 최소한 살아있는 인간애를 말하고 싶어 했던 감독은 왜 이렇게까지 인물들의 감정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을까? 맨션에 살면서 온갖 특혜를 누리던 루돌프의 아내는 방문한 친어머니에게 집을 보여주면서 자랑한다. 친어머니는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고 딸의 신분 상승을 축하해주지만, 배경에는 총소리,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비명, 화형 장의 시체 타는 소리, 군인들의 고함 등 사람을 미쳐버리게 할 소리가 계속 담을 너머 들려온다. 그쯤에서 왜 감독이 영화의 인트로에 3분 55초씩이나 암전으로 오직 사운드와 음악에만 일부러 귀를 기울이게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보는 영화이기 전에 듣는 영화인 것이고 감독은 먼저 관객이 귀를 열고 소리에 집중할 준비를 하게 만든 것이다. 프랑스의 명장 로베르 브래송 감독이 ‘눈은 보기만 하지만 귀는 상상을 하게 한다’ 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소름이 끼치기 시작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담 반대편에 피어난 아름다운 꽃들에 둘러싸여 사는 루돌프 가족의 삶을 통해 인간의 극한 대비(Contrast)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소리를 이용하여 영화의 차원(Dimension)을 넘어선다. 영화 ‘이다(Ida)’에서 2차원의 거리를 통해 신과 인간의 관계를 완벽하게 묘사한 우카시 잘 촬영감독은 인물의 이중성을 사진의 삼등 법칙(Rule of Third)에 사용되는 포인트 오브 인터레스트(Point of Interest) 구도를 통해 묘사한다. 평면적인 장면들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양방향의 중심점에 서 있는 인물을 통해 선과 악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조너선 글래이저의 억누른 연출과 우카시 잘의 ‘안 멋있는’ 구도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정말 완벽하게 감정의 눈물마저 말려버린 혹독하고 슬픈 미장센의 영화로 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