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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에서 사실적 재현으로:
인본주의 시각

(미술학부 김희영 교수)

오랫동안 전해오는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은 그 시대에 사용되는 매체와 이에 따른 테크닉의 변화, 그리고 문화적인 문맥에 영향을 받는다. 고전 문학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 혹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의 형식으로 변형되어 대중이 접근하기 쉬운 형태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원전이 차용되는 과정에는 당대 문화 안에서 원전을 이해하는 방식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매체나 기술의 발전이 이야기를 시각화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기도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관의 변화이다. 원전을 재구성하여 표현하는 방식은 그 시대가 지향하는 관점에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변화는 단시간에 극적으로 보여지기 보다는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중세 말기에 인간적인 표현을 담아 르네상스의 도래를 예고한 지오토(Giotto di Bondone, c.1267-1337)의 작품이 좋은 예이다.

▲ [도 1]

313년에 선포된 밀라노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그동안 로마 제국에서 억압되었던 기독교가 공인되었다. 이후 서로마제국이 476년에 패망한 후 15세기까지 이어졌던 시기를 중세(the Middle Ages)라 부른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기의 인본주의적 세계관을 부활시킨 르네상스(Renaissance)의 시각에서 두 시기의 ‘중간’이라는 의미로 불리는 용어이기도 하다. 거의 천 년 동안 이어진 중세 시기의 예술은 우주를 창조한 전지전능한 신의 통치와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성서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음악에서는 인간이 만든 악기의 연주보다는 신의 창조물인 인간의 목소리로 성서의 내용을 전하는 성악이 중요시되었다. 미술에서는 전지적인 신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재현되었고, 성인들이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는 대성당의 부수적인 장식으로 제단화와 조각이 제작되었고, 대예배 예식에 지역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공동의 체험이 중요했다. 중세에는 개별적인 예술가의 존재가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중세 말기에 이르러서는 사회의 여러 측면에 혁신이 초래되면서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에도 주요한 변화가 있었다. 이어지는 르네상스는 인간의 지성과 과학에 기초한 합리성을 추구하는 근대(modern)의 시작으로 여겨진다.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전환된 시기를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힘들며 인본주의가 전개된 점진적인 과정은 나라, 지역, 문화에 따라 다르다.

중세의 관습을 이어가면서도 인간적인 측면을 표현하고자 시도했던 화가로는 이탈리아의 지오토가 대표적이다. 현재 피렌체에 위치한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는 <즉위한 동정녀와 아기 예수(Virgin and Child Enthroned)>(c.1310)는 지오토의 혁신적인 양식을 잘 보여준다. 그의 스승인 치마부에(Cimabue)의 <즉위한 마리아와 아기 예수 Maestà or Santa Trinita Madonna and Child Enthroned>(1280-90)도 같은 공간에 함께 전시가 되어 동일한 주제의 두 작업을 비교해서 볼 수 있다.[도2]

▲ [도 2]

원래 각기 다른 성당의 제단화로 제작되었으나 지금은 미술관에 함께 전시되어 제단화로서의 아우라를 상실했으나 두 작품의 양식을 비교하여 감상하기에는 효율적이다.

중세 말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치마부에의 성모자상은 비잔틴 양식의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세밀한 세부 장식의 묘사가 돋보인다. 인물의 중요성은 상징적으로 재현되고 영성적인 측면이 중시되어 인체의 묘사는 평면적이다.[도3]

이에 비하여, 지오토는 인체나 사물을 보다 사실적으로 재현하여 보다 입체적이고 환영적인 공간을 제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마리아와 예수를 상징적인 존재가 아니라 살아있는 인체로 재현하였다.[도4]

▲ [도 3]

▲ [도 4]

치마부에의 성모자상은 보석으로 장식된 금색 의자와 함께 라피스 라줄리의 푸른색, 보라색, 홍색의 옷과 반복되는 금박의 옷 주름을 통해 성모자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음영 처리로 양감의 환영을 제시하기 보다는 실제 금박을 사용하여 신성한 빛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어 평면적이다. 그리고 주변 인물들이 옥좌를 둘러싸고 있으나 각자 다른 방향을 바라보거나 서로 관심을 두지 않고 있어 시점이 다소 산만하다. 그리고 옥좌 아래에는 선지자 예레미야와 이사야, 아브라함과 다윗이 각자와 연관된 성경 문구를 들고 등장한다.[도5]

▲ [도 5]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했던 선지자인 예레미야와 이사야, 그리고 예수의 계보를 암시하는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해 성모자의 영적 권위를 명시한다. 성스러움을 가시화한 상징과 세부적인 묘사로 가득한 치마부에의 작업과 달리, 지오토의 작업은 보다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표현을 보여준다. 치마부에 작업에서는 여러 시점이 공존하는 데 비해 지오토의 작업은 단일 시점으로 보다 통합된 시각을 제공한다. 여러 천사들과 성인들로 둘러싸인 지오토의 작업은 <오그니상티 마도나(Ognissanti Madonna)>로도 불린다. 오그니상티(Ognissanti)는 모든 성인(all saints)을 의미한다. 무릎을 꿇고 앉은 천사의 얼굴은 옆모습, 옥좌 뒤에 서 있는 선지자들의 얼굴은 3/4 각도로 그려져 천사들과 성인들의 시선이 모두 마리아와 예수를 바라보고 있어 주제로의 몰입과 통일감을 준다. 그리고 겹쳐 서있는 성인들의 표현도 자연스러운 공간을 보여준다.[도6]

▲ [도 6]

화면에 통일감을 주는 또 다른 요소로 그림자의 묘사가 눈에 띈다. 오른쪽 상단에서 비춰지는 빛으로 모든 인물 묘사에서 보이는 그림자의 방향이 동일하여 전체적으로 통일감이 느껴진다. 섬세하면서 자연스러운 그림자로 둥근 얼굴과 목이 드러나고, 옷의 주름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마리아의 푸른색 가운의 굵은 주름은 옷 아래의 둥근 무릎을 암시하면서도 두터운 모직 옷감의 무게도 담고 있다. 보다 사실적이고 풍부한 양감으로 재현된 동정녀와 아기 예수는 옥좌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듯한 공간적인 환영을 보여준다. 더욱이 젊은 마리아의 풍성한 가슴을 덮은 흰 천, 아기 예수의 둥근 몸 등의 묘사는 이전에는 표현이 자제되었던 부분들이다. [도7]

한편 옥좌 아래에는 무릎을 꿇은 두 천사가 백합을 담은 꽃병을 들고 있다. 백합은 동정녀 마리아의 정결함을 상징한다.[도8]

▲ [도 7]

▲ [도 8]

치마부에가 메시아로서의 예수의 정통성을 암시하기 위해 구약의 선지자들을 제시한 것과 달리, 지오토는 동정녀의 정결한 몸을 통해 아기 예수가 탄생한 점을 상징적으로 강조한다. 그리고 꽃병을 들고 있는 두 천사의 옷 주름은 천사들의 몸 위에 자연스럽게 흐르며, 그리스 조각의 옷 주름을 연상시킬 정도로,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이처럼 지오토는 전통적인 주제인 성모자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물리적인 공간의 환영을 설득력 있게 구현함으로써 중세의 관습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인본주의를 반영하여 르네상스로의 전환을 선도하였다. 그의 작업에는 오랜 기간 누적된 중세의 미적, 종교적 규범의 틀과 새롭게 불어오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섬세하게 공존하고 있다. 입체적인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놓여 있는 지오토의 인물들은 단지 외형만 사실적으로 재현된 것이 아니라 보다 솔직한 인간의 감정도 담고 있음이 중요하다. 지오토는 인간의 시점을 시각화하기 위해 사실적인 재현 방식을 추구했으며, 이러한 인간적 표현은 궁극적으로 성서의 서사가 관념에 머물지 않고 인간적인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전해지는데 기여했다.

captions
도1. Giotto di Bondone, Virgin and Child Enthroned, also called the “Ognissanti Madonna” (detail) c.1306-1310, tempera and gold on wood, 10’8“ x 6’8”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도2. Gallery view with Giotto’s Ognissanti Madonna (left) and Cimabue’s Maestà (right),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도3. Cimabue, Maestà or Santa Trinita Madonna and Child Enthroned, 1280-90, tempera on panel, 385 x 223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도4. Giotto di Bondone, Virgin and Child Enthroned, also called the “Ognissanti Madonna,” c.1306-1310, tempera and gold on wood, 10’8“ x 6’8”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도5. Cimabue, Jeremiah, Abraham, David, Isaiah (detail), Maestà or Santa Trinita Madonna and Child Enthroned, 1280-90, tempera on panel
도6. Giotto di Bondone, Saints (detail), Virgin and Child Enthroned , c.1306-1310, tempera and gold on wood
도7. Giotto di Bondone, Virgin and Child Enthroned (detail), c.1306-1310, tempera and gold on wood
도8. Giotto di Bondone, Angels (detail), Virgin and Child Enthroned, c.1306-1310, tempera and gold on wood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김희영 교수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및 동대학원 미술이론 석사, 미국 시카고대학교 서양 미술사 석사를 거쳐 아이오아대학교 서양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년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로 부임했으며, 서양미술사학회장 및 한국미술이론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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