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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이미지

(미술학부 김희영 교수)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전하고 또 듣고 싶은가? 우리는 글로 기록된 이야기를 읽고 사실을 알게 되기도 하고 상상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보기도 한다. 그러나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야기가 말이나 이미지로 표현되어 전달되기도 했다. 이야기를 이미지로 전하는 데는 시대마다 구별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전략이 마련되었다. 특히 지도자의 통치력을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서 공공의 장소에 기억할 만한 역사적인 사건들을 형상화하는 것은 공동체의 체제와 질서를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했다.

고대 로마의 트리야누스(Marcus Ulpius Traianus, 53-117) 황제의 치적을 기념하는 원주 형태의 전승 기념비는 전승의 역사를 이미지로 기록한 대표적인 예이다. 이 원주는 두 차례에 걸친 다키아(Dacia, 현대 루마니아)와의 전쟁에서 트리야누스 황제가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13년에 제작되었다. 30m 높이의 원주가 5m 높이의 기단 위에 세워져 총 35m에 달하는 높이의 이 원주는 로마 포럼에 설치되었고 현재 주변의 건물들은 폐허가 되고 이 원주만 우뚝서 있다[도 1].

▲ [도 1]

원주 내부의 수직 통로에는 185개의 나선형 계단이 있고 원주 꼭대기에는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데크가 있다. 고대 로마 제국의 황제를 기리는 이 원주는 이후 고대에 걸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승 기념비의 모델이 되었고, 수 세기 동안 감탄과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트리야누스 황제는 수만 명의 로마 군사를 이끌고 다뉴브강을 건너 101-102년, 105-106년 두 차례에 걸쳐 용맹한 다키아 군사들을 패배시켰고 결국은 다키아를 로마 영토로 편입시켰다. 이것은 트리야누스 황제가 98년-117년에 걸쳐 19년간 통치하는 기간 동안의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전투의 승리로 비옥한 영토를 얻은 것은 물론이고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을 전리품으로 확보하였다. 황제는 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승리의 기록물을 보존하는 도서관과 기념비를 세웠고 자신의 동상을 기념비 꼭대기에 놓았다. 그러나 황제의 동상은 중세시기에 상실되었고, 이후 16세기 말에 교황 식스토 5세의 결정에 따라 성 베드로 동상이 설치되어 현재까지 이어진다. 이 원주는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현재까지 약 2천년간 로마 제국의 영광을 전하고 있다.

트리야누스 원주(Trajan’s Column)로 불리는 이 원주의 하단은 101-102년, 상단은 105-106년의 승리를 기록하고 있다[도 2].

▲ [도 2]

트리야누스 황제의 성공적인 전투의 이야기는 나선형의 띠처럼 원주를 23번 감싸며 약 190m 길이로 이어지는 155개의 화면으로 나누어진 대리석 부조에 상세하게 기록이 되어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트리야누스 황제는 59번 등장한다. 진지한 표정으로 회의를 하거나 [도 3], 말을 타고 진군하거나 [도 4]

▲ [도 3]

▲ [도 4]

충성스런 군인에게 포상을 하는 [도 5] 등 전쟁 중의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여러 상황 안에서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에서 전수한 사실적인 묘사로 인물의 표정 및 인체와 동물의 동세 등을 섬세하게 포착하면서 로마 군인들의 용맹한 전투를 현장감 있게 담고 있다[도 6].

▲ [도 5]

▲ [도 6]

지면에서 상단까지 나선형으로 올라가면서 이어지는 드라마를 2,600여 명의 인물 조각으로 박진감 넘치게 묘사하고 있으며, 꽉 찬 화면은 전장에서의 함성과 격정의 긴장을 연상시킨다[도 7].

더욱이 로마와 다키아 군사들이 입었던 군복, 무기, 군함, 장비, 건축물뿐 아니라 로마 군대가 활용했던 전략까지도 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를 제공하기도 한다[도 8].

▲ [도 7]

▲ [도 8]

그리고 전쟁의 참상 및 승전 기록만을 담기 보다는 [도 9], 성벽 건설 [도 10], 추수 [도 11] 등을 보여주어 승리를 통해 얻는 이익과 국력의 확장 등의 전쟁의 긍정적인 부분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장면들은 질서를 지키며 부강한 나라의 건설적인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강한 지도자로서의 황제의 권위를 강조한다.

▲ [도 9]

▲ [도 10]

▲ [도 11]

이처럼 두 차례의 격전과 연계된 서사를 기록한 이 원주는 마치 돌로 새겨놓은 장편의 기록 영화와 같은 작업이기도 하다. 마치 영화처럼 중요한 장면을 선택적으로 강조하고 편집하여 기록할 가치가 있는 사건을 연속적으로 제시하는 전략이 특징적이다. 나무를 이용해서 장면을 분리하거나, 다시점으로 장면을 포착하여 보다 많은 사건을 하나의 장면에 담으면서 중요한 장면을 강조하거나, 드라마틱한 장면을 요약해서 보여주고 사건을 축약하는 기법 등의 뛰어난 스토리텔링의 기술을 보여준다. 그리고 원근법을 선택적으로 사용하여 제한된 공간 안에서 가능한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적인 왜곡이 보인다. 예를 들어 담 뒤에 있는 인물을 보여주기 위해 시점을 변경하여 위에서 바라본 인물을 포함시켜 화면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일들을 함께 보여준다[도 12].

▲ [도 12]

영화와 같이 편집된 승전의 서사를 뛰어난 묘사력으로 기록한 이 원주는 다키아와의 전쟁의 정당성과 트리야누스 황제의 지도력을 공적으로 공표한다. 사실적인 묘사와 더불어 처음 전투에서 다리를 건너갈 때 의인화된 다뉴브강의 신이 등장하거나 [도 13], 두 번째 전투의 승리를 상징하는 여신이 날개를 펴고 나타나 [도 14] 신격화된 황제의 승리를 정당화하는 신의 보호를 형상화하였다.

▲ [도 13]

▲ [도 14]

185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 꼭대기에 이르면 로마시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보게 되는 이 원주는 트리야누스 황제를 신격화하는 상징성을 가지며 그의 권력을 가시화하는 프로파간다의 역할을 하였다. 이 원주의 위엄에 매료되었던 나폴레옹은 이 원주를 파리로 가져가길 원했으나 운반이 불가하여 포기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독재자 무솔리니는 이 원주를 매우 소중하게 여겨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폭격에 원주가 파괴되지 않도록 특별한 보호 장치를 마련하기도 했다. 권력의 야망이 과도했던 전체주의 지도자들이 이 원주에 끌렸던 것은 위압적인 권력의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역설적인 것은 돌에 새겨 영속시키고자 했던 권력의 서사를 평상적인 시각에서는 대부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놀라운 기술로 묘사된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는 35m의 원주의 외곽을 둘러싸고 하늘을 향하고 있어 사실적인 기록이 흥미롭게도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듯하다. 117년에 사망한 황제의 유골은 원주 밑의 기단에 보관이 되었다. 이에 원주에 기록된 수많은 이미지는 만인에게 보여지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닌 황제의 묘비로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여운을 남긴다.

captions
도1. Trajan Column, AD 107-113, Trajan’s Forum, Rome, Italy
도2. Detail of Trajan's Column, Rome, depicting the Roman emperor's victories beyond the Danube River.
도3. Detail, Trajan
도4. Detail, Trajan on horse
도5. Detail, Trajan rewards a loyal soldier
도6. Detail, The First Dacian War
도7. Detail, Trumpeters
도8. Detail, Trajan addresses his soldiers (adlocutio). first adlocutio
도9. Detail, Amidst the last major battle of the first Dacian War, Trajan is presented with severed heads of the enemy
도10. Detail, Fort construction in the presence of Trajan
도11. Detail, Harvest
도12. Detail, Cavalry march in front of a Roman fort.
도13. Detail, A town on the banks of the Danube, and a personification of the river itself
도14. Detail, A prominent winged Victoria figure who inscribes a shield in commemoration of the Roman victory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김희영 교수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및 동대학원 미술이론 석사, 미국 시카고대학교 서양 미술사 석사를 거쳐 아이오아대학교 서양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년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로 부임했으며, 서양미술사학회장 및 한국미술이론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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