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기사
보기

ARTS

KMU ARTS

미의 규범

(미술학부 김희영 교수)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이미지들과 마주친다. 오프라인이거나 온라인이거나 여러 이미지들 중 가장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코 사람의 이미지이다. 어느 시대, 어느 문화에서든 보편적으로 발전되어 온 이미지는 인간, 즉 우리 자신을 보여주는 인체의 형상이다. 인류가 가장 처음 만들었다고 여겨지는 빌렌도르프에서 출토된 작은 여인상으로 시작하여 인간의 형상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재현되고 있다. 현대 미술의 추상화 과정 안에서도 다각적으로 다루어졌을 뿐 아니라, 게임과 같은 가상 세계에서도 인간의 형상은 지배적이다. 인간을 재현한 여러 형식 중에서 가장 우리의 눈을 끄는 것은 아마도 사실적인 형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울에 비친 그대로의 우리의 모습을 보고 싶을까? 통상 이상적인 미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고대 그리스의 완벽한 조각상을 돌아볼 때,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주의에 만족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려는 욕망이 구체적으로 구현되기 시작한 시기는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 파라오의 경직된 형상들은 신격화된 지도자들의 영속하는 권위를 상징하였고 폐쇄된 피라미드에 안치되어 세상과 격리되어 있었다. 이에 반하여, 수백개의 도시(polis)로 형성된 고대 그리스에는 정치, 경제, 문화 활동의 장인 도시 공동체 안에 신전이 함께 위치했으며, 그 안에 인간을 닮은 신상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스인들의 현세적인 삶의 방식은 신을 인간처럼 형상화하는 데에 중요한 근간이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살아있는 인간처럼 생동감 있는 신의 형상을 원했다. 그들은 눈으로 관찰한 세부적인 묘사를 선호했고 사실적인 형상을 제작하는 규칙을 만들어갔다. 더 나아가 체계적으로 과장과 왜곡을 활용하여 비현실적인 형상을 포용한 이상화된 사실주의를 구축했다.

고대 그리스 초기 조각에서는 다소 정형화되고 어색한 표정과 두 다리가 동일하게 무게를 지탱하는 부동의 자세가 재현되었다. 그러나 점차 사실적인 묘사가 적극적으로 전개되었고, 동세를 암시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크리티오스 소년(Kritios Boy)>에서 성공적으로 구현되었다 [도 1]. 소년은 오른쪽 무릎을 살짝 굽히고 몸의 무게를 왼쪽 다리에 싣고 서 있는 자세로 편안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한쪽 다리를 굽힌 이 자세는 몸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골반과 둔부, 어깨, 두상의 위치에 세밀한 변화를 주며 척추는 유연한 S 곡선을 보여준다 [도 2].

▲ [도 1]

▲ [도 2]

인체의 좌우 불균형이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는 이러한 자세를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라 부르며, 이 규칙은 이후 사실적이면서도 생동감 있는 조각으로 발전해 가는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절제된 질서와 균형 안에서 동세와 정적인 요소가 사실적으로 묘사된 크리티오스 소년상은 고전 조각의 완벽한 미를 보여준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그리스 조각이 이러한 절제된 이상적인 미에 만족하지 않고 과장된 형태로 발전해 나간 것이다. 1972년 8월에 남부 이탈리아의 리아체 근처 바다에서 발굴된 두 전사의 조각상은 완벽한 인체의 재현에 머물지 않고, 형태를 과장해서 구현하려는 그리스인들의 관심을 잘 보여준다 [도 3].

▲ [도 3]

청동으로 조각된 약 2m의 <리아체 전사들(Riace Warriors)>은 대리석으로 구현하기 힘든 세부 묘사에서 뛰어난 사실주의적 기량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리스 시기에 제작된 많은 청동 조각상들이 후에 녹여져 훼손되어 로마 시대에 대리석으로 복제된 경우가 많았기에, 이 조각상은 그리스 청동 조각 원본의 생생한 묘사를 숨김없이 보여주는 소중한 예시이다. 수염이 있는 두 남성상은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서 있고 핏줄이 보일 듯한 피부나 잘 발달된 근육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젊은 전사의 두상은 흰색 돌을 박은 눈, 구리를 입힌 입술과 눈썹, 그리고 벌린 입술 사이로 보이는 윗니에 은을 입혀 화려하고 정교한 세부 묘사를 보여준다. 완벽한 얼굴을 감싸고 있는 곱슬머리와 굽이치는 수염의 세밀한 묘사는 청년의 생기 있는 모습을 돋보이게 한다 [도 4]. 한편으로는 전사의 단련되고 완벽한 인체를 강조하기 위해 해부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근육을 표현한 왜곡된 세부 묘사가 보인다 [도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제 있을 수 없는 완벽한 전사의 사실적인 형상에 매료된다.

▲ [도 4]

▲ [도 5]

이처럼 체계적으로 과장되고 왜곡된 형상으로 이상화된 사실주의는 지속적으로 발전되었다. 헬레니즘 조각의 정수인 <밀로의 비너스 (Venus de Milo)> [도 6]는 미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 [도 6]

비너스도 왼쪽 다리를 살짝 들고 오른쪽 다리에 무게 중심을 두고 서 있고, 살짝 아래로 쳐진 오른쪽 어깨에 얼굴은 왼쪽을 바라보는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보여주며 전체적으로 생동감을 잘 보여준다. 동세와 더불어 살아있는 듯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비너스는 자연 그대로의 인체이기보다는, 세심한 법칙에 따라 과장하여 이상화시킨 형상을 보여준다. 지금도 미의 기준으로 여겨지는 비너스는 사실상 2m가 넘는 키에 실제 존재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인체 비례로 재현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형상에 만족할 수 없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은 과장과 왜곡을 통해 완벽한 형상을 만들고 이상적인 미의 규범을 확립했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의 미적 기준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와 무관한 것일까? 흥미롭게도, 평범한 것보다는 과장된 형상을 선호하는 인간의 욕구는 지속되고 있음을 경험한다. 고대의 이상적인 형상은 과거의 작품에 머물지 않고, 현대의 이미지뿐 아니라 우리의 미의식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더욱이 서구의 미적 규범을 동양의 신체에 대입하여 이상적인 미의 기준에 맞추려는 경우를 마주하기도 한다. 인위적인 미의 규범이 우리에게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역설적인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도판목록
도1, 2 Kritios Boy [profile], Marble, c. 480 BC, 122 cm, Acropolis Museum, Athens
도 2 back of Kritios Boy.
도3 The Riace Bronzes, 460-450 BC, Warrior A: 197 cm, Warrior B 198 cm, Museo Nazionale della Magna Grecia, Reggio Calabria, Italy
도4 The Riace Bronzes, Head of Warrior A
도5 The Riace Bronzes, Torso of Warrior B
도6 Venus de Milo, Marble, c. 160-110 BC, 204 cm, Louvre, Paris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김희영 교수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및 동대학원 미술이론 석사, 미국 시카고대학교 서양 미술사 석사를 거쳐 아이오아대학교 서양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년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로 부임했으며, 서양미술사학회장 및 한국미술이론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트위터

이 코너의 다른 기사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