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풍으로 물든 거리와 산등성이가 가을의 정취를 풍기면서도 싸늘해지는 공기가 겨울이 다가옴을 알린다. 첫눈이 날리면서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을 맞으면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기도 하지만, 연말이면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거리 장식과 함께 올해 시즌의 선물을 홍보하는 다양한 광고가 우리 눈길을 끈다. 루돌프 사슴이 끄는 마차와 선물 보따리를 메고 있는 산타 할아버지가 이제는 다소 추억의 이미지가 되어가지만, 커다란 별이나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단순화한 이미지들이 도시 건물의 외관을 장식한다. 화려하게 상업적으로 포장된 연말의 축제 분위기는 성탄이 기쁜 날임을 알리는 듯하다. 동방에서 온 현인들(the Magi)의 경배를 받는 예수의 탄생은 서양의 거장들이 가장 많이 그렸던 주제 중 하나이다. 다양한 해석과 양식으로 다루어졌던 예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와 작업을 돌아보자.
성탄의 이야기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천사 가브리엘(Gabriel)이 동정녀 마리아를 찾아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를 잉태하게 되리라고 말해주는 수태고지(Annunciation)로 시작한다.
시모네 마티니(Simone Martini)와 리포 멤미(Lippo Memmi)가 그린 후기 고딕 양식의 이 작품에서는 지금 막 도착한 듯 옷자락을 휘날리고 아직 날개를 접지 못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예수를 잉태하게 될 소식을 전하고 있다. [도 1]
그의 말은 라틴어로 “AVE GRATIA PLENA DOMINUS TECUM”라고 금박의 배경에 도드라지게 적혀 있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마리아의 귀로 향하고 있다. [도 2] 이것은 “기뻐하라, 은혜를 받은 자여,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Hail, full of grace, the Lord is with you)”라는 문구이다(누가복음 1:28).
▲ [도 1]
▲ [도 2]
화면 중앙 상단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그 밑에는 백합화를 담은 화병이 놓여있어 하나님의 아들과 마리아의 정결함을 상징한다. [도 3] 제단화 상단에 4개의 원 안에는 왼편부터 예레미야, 에스겔, 이사야, 다니엘의 구약의 4명의 선지자가 보인다. 이들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예수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날 것(incarnation)을 예언하는 성경구절을 펼치고 있다.
▲ [도 3]
북구 르네상스의 대가인 얀 반 아이크(Jan van Eyck, c.1390-1441)의 수태고지는 이 신비로운 주제를 보다 극적으로 표현하였다. 마리아는 대성당의 내부에서 성경을 읽다가 무지갯빛의 날개를 달고 있는 가브리엘을 만난다. [도4]
▲ [도 4]
가브리엘의 입술로 전해지는 소식(“Ave gratia plena”: hail, full of grace)이 금빛 글씨로 적혀져 있다. [도 5]
이 소식에 놀라 손을 들고 있는 마리아는 곧 순응하여 겸허하게 답변한다. 마리아의 대답(“Ecce ancilla domini”: behold the handmaiden of the Lord, 누가복음 1:38)도 금빛 글씨로 적혀있어 천사와 마리아 간의 대화를 보여준다.
[도 6] 이 작업에서 매우 흥미로운 점은 마리아의 답변을 적은 문구의 상하가 뒤집혀서 적혀있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믿음으로 ‘주의 여종’임을 고백한 마리아의 답변은 세속의 관람자가 아닌 하늘에서 내려다볼 하나님의 시선에서 읽히도록 적혀 있는 것이다.
▲ [도 5]
▲ [도 6]
▲ [도 7]
또한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과 함께 마리아에게 날아오는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이 마리아와 함께함을 상징한다. [도 7] 이것은 동정녀 마리아가 말씀에 순종하여 잉태하는 것, 즉 (“말씀이 육신이 되어 The word became flesh 요한복음 1:14)”라는 성육신의 신비를 암시한다. 대성당 안에서 일어난 수태고지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한 반 아이크의 이 작업은 예수 탄생에 관련된 상징으로 가득하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주제의 작업들에도 여러 상징이 보여지며 예수에 대한 다양한 작가들의 해석이 보인다. 로렌조 모나코(Lorenzo Monaco)의 15세기 초 작업에서는 아기 예수가 마구간의 바닥에 뉘어있어 비천한 곳에서 탄생했음을 보여주지만, 어두운 밤에도 초자연적인 빛을 발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도 8]
▲ [도 8]
말구유 너머에는 황소와 나귀가 보여 이사야(1:3)서에서 황소와 나귀로 비유되는 유대인과 이방인들도 메시야를 알아본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빛으로 오신 예수의 탄생은 명암대비를 효율적으로 사용한 바로크 양식의 작업에서 극적으로 표현된다. [도 9]
▲ [도 9]
한편, 동방에서 별빛을 따라 온 세 명의 현인 혹은 왕들이 세상을 구원할 왕이 되실 예수를 경배하는 장면은 후기 고딕 양식의 대가인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Gentile da Fabriano)의 작업에서 가장 화려하게 묘사되었다. [도 10]
이국적이고 화려한 복장을 한 동방의 현인들이 여러 인종의 동행인들과 원숭이나 호랑이 같은 이국적인 동물들을 대동한 긴 행렬을 이끌고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온 장면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왕이 자신의 왕관을 벗고 무릎을 꿇어 경배하고, 아기 예수는 벗어진 그의 머리 위에 축복하고 있어 그의 영적인 권위를 보여준다. [도 11]
▲ [도 10]
▲ [도 11]
현재는 우피치 갤러리에 소장되어있는 이 작업은 원래 교회 제단화로 제작되었고, 당시 촛불에 흔들리며 빛을 발하는 제단화의 금박과 화려한 색채는 보는 사람들을 황홀하게 했을 것으로 상상된다. 제단화의 전 화면에 펼쳐지는 예수의 탄생에 연관된 서사와 세밀하게 묘사된 상징적인 표현은 왕 중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세상의 가장 진기한 것으로 경배하는 기쁨과 경외심으로 가득하다.
서양화의 주요 주제로 다루어진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뻐하는 이유는 그가 인간의 죄를 속죄할 구세주로 왔기 때문이다. 진리를 찾기 힘든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를 찬미하는 성탄의 의미가 서양의 대가들에 의해 여러 양식으로 다루어졌다. 선물을 가져다주는 산타 할아버지의 상업적인 이미지에 가려진 성탄 본연의 의미를 되돌아보며 연말을 맞이하는 것은 어떨까 한다.
captions
도1.2.3. Simone Martini and Lippo Memmi, Annunciation with St. Maxima and St. Ansanus, 1333, Tempera on wood, gold background, 184 x 168 cm
도4. Jan van Eyck, The Annunciation, c. 1434/1436, oil on canvas transferred from panel, 90.2 x 34.1 cm
도5. Gabriel’s greeting “Ave gratia plena” written in gold: (detail), Jan van Eyck, The Annunciation, c. 1434/1436, oil on canvas transferred from panel, 90.2 x 34.1 cm
도6. Mary’s words “Ecce ancilla domini” written upside down (detail), Jan van Eyck, The Annunciation, c. 1434/1436, oil on canvas transferred from panel, 90.2 x 34.1 cm
도7. A white dove flying toward Mary along the beams (detail), Jan van Eyck, The Annunciation, c. 1434/1436, oil on canvas transferred from panel, 90.2 x 34.1 cm
도8. Lorenzo Monaco (Piero di Giovanni), The Nativity, ca. 1406?10, Tempera on wood, gold ground, 22.2 x 31.1 cm
도9. Gerard van Honthorst, Adoration of the Child, 1619-1621, oil on canvas, 95.5 x 131 cm
도10. Gentile da Fabriano, Adoration of the Magi, 1423. tempera on panel, 283 x 300 cm
도11. The three magi presenting gifts to the Christ child (detail), Gentile da Fabriano, Adoration of the Magi, 1423, tempera on panel, 283 x 300 c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