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해의 햇빛과 비바람을 맞아가면서 꽃피고 열매 맺어 익은 열매를 추수하는 계절 가을이다. 나뭇잎들이 여러 색으로 물들고 먹음직한 색으로 익은 과일들은 가을의 정취를 더해주면서 한 해를 조용히 버티면서 결실을 이룬 힘을 보여준다. 보도에는 노란색, 붉은색 등의 낙엽이 떨어지고, 따뜻한 색깔의 둥근 과일과 야채가 풍성하게 놓여있는 상점을 자주 마주친다. 여러 형태와 색채로 화려하게 변한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 가을의 얼굴은 어떤 것일까? 눈은 동그란 과일, 코는 길쭉한 채소, 입은 붉은 단풍으로 대체한 얼굴을 상상하게 되는 계절이다. 이러한 상상을 실제로 그렸던 16세기 화가의 작품을 되돌아보게 된다.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혹은 Arcimboldi, 1527-1593)는 열매, 꽃, 나뭇잎, 동물, 새, 물고기, 책, 사물 등의 이미지를 조합하여 그리는 독특한 기법의 화풍인 ‘복합 초상화(composite heads)’로 유명하다. 그의 작업은 자연의 기이함이나 수수께끼에 매료되었던 후기 르네상스 혹은 매너리즘(mannerism)의 경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식물학과 동물학에 기초하여 다양한 생물의 형태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창의적으로 조합하여 수수께끼가 가득한 환상적인 구성을 보여준 그의 초상화는 지금 보아도 눈을 떼기가 힘들다. 숨은그림찾기와 같이 절묘하게 사물들을 배열한 그의 작품 중에는 위아래를 뒤집어서 볼 때 다른 형상이 나타나는 것들도 있어 보는 사람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도 1]
            
 
            ▲ [도 1]
				아르침볼도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활약했던 밀란(Milan)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 비아조 아르침볼도(Biagio Arcimboldo)도 화가였다. 주세페 아르침볼도는 1549년부터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디자인하기 시작했고 1556년에는 프레스코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는 36세가 되던 1562년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페르디난트 1세(Ferdinand I, 1503-1564)의 초청으로 비엔나로 이주하여 예술과 문화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초상화가로 일하기 시작하였다. 페르디난트 1세의 아들 막시밀리안 2세(Maximilian II, 1527-1576)와 1583년에 프라하(Prague)로 이주한 손자 루돌프 2세(Rudolf II, 1552-1612)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1588년까지 약 26년간 합스부르크 왕정 화가로서 활동하였다. 그는 천문학자, 식물학자, 물리학자, 연금술사 등의 엘리트들이 활발하게 교류했던 당시 비엔나와 프라하의 지적인 환경 안에서 창의적인 영감을 받아 자유롭게 작업하였다. 그는 초상화 제작의 주요 업무 외에도 태피스트리와 스테인드 글라스를 포함한 왕궁 장식과 야외극 행렬을 위한 기발한 분장 디자인도 담당했다. 
                16세기 중엽 유럽에서는 ‘호기심의 방’으로 불리는 ‘분더캄머’(Wunderkammer, cabinets of curiosities)에 대한 관심이 부상했으며 이것은 아르침볼도가 기이한 작업을 전개하게 된 시대적인 배경이기도 하다. 분더캄머는 희귀한 물건들과 예술품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개인 박물관 형식을 갖춘 공간으로 16세기 귀족과 상류층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도 2]
            
 
            ▲ [도 2]
				전통적인 종교적 주제를 다룬 아르침볼도의 많은 작업이 사라지고 망각된 반면, 그의 복합 초상화는 그의 동시대인들뿐 아니라 수백 년 이후 현대인들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아르침볼도의 <사계절(Four Seasons)>(1563)과 <사원소(Four Elements)>(1566)의 두 연작은 1569년 새해 아침에 열리는 성대한 의식에서 막시밀리안 2세에게 헌정되었다. 그리고 두 연작의 철학적이고 우화적인 의미를 설명하는 지오바니 바티스타 폰테오(Giovanni Battista Fonteo)의 시가 함께 헌정되었다. 옆모습 초상화로 구현된 <사계절>과 <사원소>는 논리적으로 연동되어 있다. 즉, 공기는 봄, 불은 여름, 땅은 가을, 물은 겨울에 상응하며, 예를 들면 왼편을 보는 <봄>은 오른편을 보는 <공기>와, 오른편을 보는 <여름>은 왼편을 보는 <불>을 서로 마주 보게 하였다. 
                이렇게 짝을 지어 제작된 두 연작은 얼핏 혼란스러워 보이는 퍼즐과 같은 요소들을 독특하게 배치하여 조화로운 초상화를 그려냄으로써 합스부르크 왕조 통치의 조화로움을 상징적으로 암시한다. 또한 이국적인 동물과 농산물로 풍성하게 조합된 연작은 발전된 과학과 풍요로운 문화의 중심지로의 위상, 그리고 영토 확장에 대한 합스부르크 왕조의 야망을 투영하고 있다. 그러면, 놀랍도록 세밀하게 묘사된 각 초상화 안에 숨겨진 그림들을 하나씩 찾아가 보자.
                계절에 연관되는 자연물로 구성된 <사계절>은 삶이 성숙해 가는 단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봄>은 80종의 꽃과 풀로 구성된 여인의 초상화로 얼굴은 장미꽃, 머리는 다양한 꽃으로 만든 부케로 구성되고, 들국화 목걸이를 두른 몸은 여러 종류의 나뭇잎으로 덮여 있다. [도 3]
                <여름>은 과일과 채소로 만들어진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복숭아로 뺨, 체리로 윗입술, 오이로 코, 가지로 귀를 그렸고, 가슴에는 아티초크로 장식하였다. [도 4]
            
 
            ▲ [도 3]
 
            ▲ [도 4]
				<가을>(1573)은 다소 괴팍한 남성의 모습이나 풍성한 가을 열매로 가득하다. 사과로 뺨을, 배로 코를, 석류로 턱을, 밤송이로 입술을 구성하였고 버섯으로 된 귀에 무화과 모양의 귀걸이가 달려있다. 머리는 포도송이로 탐스럽게 덮여 있고 호박 모자를 쓰고 있다. [도 5] 
                <겨울>은 마른나무 둥지의 얼굴에 버섯 입술, 가늘면서 지저분해 보이는 나뭇가지 수염을 가진 노인의 초상화이다. 머리 뒤쪽에는 작은 나뭇잎들이 붙어있고 엉킨 나뭇가지로 정수리 부분이 만들어졌고, 이탈리아 겨울의 유일한 과일인 레몬과 오렌지 가지를 가슴에 달고 있다. [도 6]
            
 
            ▲ [도 5]
 
            ▲ [도 6]
				<4계절>의 각 계절에 상응하는 <4원소> 연작을 순서대로 살펴보자. 
                <공기>는 수많은 새로 구성되고 어깨는 깃털을 활짝 펼치고 있는 공작새로 화려하게 그려져 봄의 화사함과 잘 어울린다. [도 7]
                <불>은 유일하게 무기물로 구성된 초상화이다. 코와 귀는 합스부르크 제왕의 상징 중의 하나인 불꽃 점화기(fire striker)로 구성되어 있고, 목은 불이 붙은 양초, 머리털은 타고 있는 나무, 몸은 대포로 구성되었다. [도 8]
            
 
            ▲ [도 7]
 
            ▲ [도 8]
				<땅>은 땅 위에 사는 여러 동물을 조합하였고 어깨를 덮고 있는 사자 가죽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징이기도 하다. [도 9] 
                <물>은 문어와 거북이를 포함한 62종의 바다 생물들로 구성되어 있고, 다소 차가운 모습에 진주 목걸이와 귀걸이로 장식으로 우아함을 보여준다. [도 10] 추상적일 수 있는 우주의 4원소인 공기, 불, 땅, 물을 인간이 경험하여 아는 구체적인 요소들로 형상화한 것이 흥미롭다.
            
 
            ▲ [도 9]
 
            ▲ [도 10]
				자연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기술로 진귀한 동물과 사물들로 환상적인 이미지를 조합하여 수수께끼와 같은 초상화를 제작했던 아르침볼도의 작업은 당대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인간의 무의식을 경이로운 표현의 근원으로 생각했던 20세기 초반의 초현실주의를 이끌었던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은 그의 초현실적인 작업에 매료되었으며, 중첩된 이미지를 실험했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동·식물과 사물들을 극사실적으로 재현하여 조합한 아르침볼도의 환상적인 초상화가 시대의 변화에 구애받지 않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실제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감각적인 기억을 소중하게 다루면서도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했던 그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정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captions
					도1. Giuseppe Arcimboldo, The Fruit Basket or Reversible Head with a Fruit Basket, c.1590, oil on wood, 56 x 42 cm, French & Company collection, New York
                    도2. Ferrante Imperato, Cabinet of Curiosities in Dell' Historia Naturale, 1559, fold out woodcut print, c. 33.7 × 23.5 cm closed, Biodiversity Heritage Library, Naples, Italy.
                    도3. Giuseppe Arcimboldo, The Spring, 1563. oil on wood, 66 x 50cm, Real Academia de San Fernando, Madrid
                    도4. Giuseppe Arcimboldo, The Summer, 1563. oil on wood, c. 67 x 51cm, Kunsthistorisches Museum in Vienna, Austria
                    도5. Giuseppe Arcimboldo, The Fall, 1573. oil on wood, 75.5 x 56.9 cm, Collection of the Louvre, Paris
                    도6. Giuseppe Arcimboldo, The Winter, 1563. oil on wood/canvas, c. 67 x 51cm,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도7. Giuseppe Arcimboldo, The Air, 1566. oil on canvas, 74.4 cm x 56 cm, A private collection
                    도8. Giuseppe Arcimboldo, The Fire, 1566. oil on wood, 66.5 x 51 cm,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도9. Giuseppe Arcimboldo, The Earth, 1566. oil on wood, 70.2 x 48.7 cm, private collection
                    도10. Giuseppe Arcimboldo, The Water, 1566. oil on wood, 67 x 51 cm,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