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기사
보기

ARTS

KMU ARTS

20세기 추상미술의 전개

- 큐비즘(Cubism) -

(미술학부 김희영 교수)

“실제(reality)의 재현”이라는 과제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미술사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어왔다. 20세기 서양미술이 전개된 과정 중에 다양한 실험들이 시도되면서 사물을 재현하는 전통에서 벗어난 추상적인 형식이 대두되었다. 풍경, 인물, 정물과 같이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대상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고 색, 선 등의 조형적인 요소로 구성이 되는 추상은 전례 없는 형식으로 현대 미술의 중요한 특성이기도 하다.

20세기 현대 미술이 가져온 획기적인 전환의 하나로 평가되는 ‘추상미술’ 실험의 기초를 마련한 실험이었던 큐비즘(Cubism) 혹은 입체주의를 살펴보자. 실제의 사물은 놓여진 공간과의 관계 안에 존재한다. 한 시점에서 바라본 정지된 시간에 관찰된 사물이 그 사물의 진정한 실제일까? 우리가 사물을 지각하고 인지하는 것은 정지된 시간이기 보다는 지속되는 시간 안에서 그 사물의 전체를 보고 경험하고 기억한다. 입체주의자들은 실제를 재현하려는 합리적인 방법을 치열하게 모색하였다. 그리고 사물의 형태를 실제 공간에 있는 그대로 진실되게 재현하고자 노력하였다.

대상을 고정된 한 시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대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여러 시점에서 관찰한 것을 재조합하려고 시도했던 폴 세잔느(Paul Cézanne)의 태도에서 영감을 받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는 실제 대상을 평면에 재현하는 과정에서 좀 더 실험적인 시도를 전개하였다.

피카소가 1907년에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 Les Demoiselles d’Avignon>은 입체주의 발전의 단초를 제공한 중요한 작업이다. 이 그림을 그리면서 피카소는 이것이 20세기 미술사에 큰 전환을 가져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보아도 매우 낯설고 현대적인 작업이다.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79766]

이 작업은 양식상 매우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회화의 관습이 분명하게 남아있다. 즉, 작품의 주제는 르네상스나 바로크 거장들의 작업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신화적인 소재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누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피카소의 이 작품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는 단지 전통적인 주제를 새로운 양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기술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서양 회화의 전통뿐 아니라 당대 작가들의 다양한 실험, 그의 고향인 스페인의 종교적인 인물 표현에 대한 성찰, 당시 다른 문화권에서 들어온 아프리카 조각과 같은 미술품이 가지는 색다른 형태와 의미, 작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감정의 표현 등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요인이 이 작업의 배경으로 얘기될 수 있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처음 보면, 인물의 표현이 생경하고 파괴적이며 표현적이다. 전통 누드화에서 보이는 부드러운 곡선과는 대조적으로 팔꿈치, 코, 가슴과 같은 많은 부분들이 날카롭게 각이 진 형태로 제시되었다. 여유를 가지고 편하게 바라볼 수 있는 인물은 하나도 없다. 모든 인물은 잔뜩 긴장해 있으며 특히 오른쪽에 심하게 왜곡된 좌상은 보기가 불편할 정도의 과장된 자세로 앉아있다. 잘 익은 복숭아 같은 부드럽고 따뜻한 색채의 여체는 찾아볼 수 없고 눈에 거슬리는 부자연스러운 푸른 색조의 인체가 도전적으로 우리의 시선에 대항하는 듯하다. 전반적으로 불편하게 우리를 맞는 이 작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인물의 얼굴은 우리를 더욱 의아하게 한다. 모두 매우 단순화되어 있고, 어떤 얼굴은 정면과 옆면이 복합적으로 공존하는 형태를 보여주며, 오른쪽 상단에는 목각으로 깊고 굵게 단순화하여 조각한 가면과 같은 강한 얼굴의 인물이 등장한다. 더욱이 오른쪽 하단 좌상의 얼굴은 여러 시점에서 본 모습을 한곳에 모아 심하게 왜곡된 형태를 보여준다. 자연스럽지 않은 인체 묘사와 더불어 공간의 묘사에 있어서도 거리감이 약하다. 이 작업에서는 3차원의 공간 안에 인물이 배치되었다기보다는, 단순화되어 지속되는 화면 안에 인물들이 제시되고 화면 위에 나열된 것 같이 보인다. 따라서 근경와 원경의 차이가 약하고, 두 그룹으로 나누어진 공간은 왼편의 커튼과 동일한 연속된 평면 위에 놓여있다.

당시 작가들은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이 생소하고 새롭다고 생각했다. 피카소와 함께 입체주의를 같이 전개했던 조르쥬 브라크(Georges Braque)는 이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마치 밧줄을 먹거나 석유를 삼키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불편한 감정을 회고하기도 했다. 이 작업에서 제시된 피카소의 새로운 시도는 브라크에게 영감을 주어 두 사람은 수년간 함께 형식 실험을 전개하면서 입체주의를 발전시켰다. 이 시기 두 사람의 교류는 마치 ‘서로의 몸에 밧줄을 묶고 산을 함께 오르는 등산가들’과 같았다고 회고했을 정도로 긴밀했다. 두 사람은 수년간 형식 실험을 진행하면서 3차원의 공간에 존재하는 대상을 다시점에서 관찰하고 이것을 분절된 형태로 재조합하여 2차원의 화면에 전체 형태를 제시하는 번역 과정을 분석적으로 전개하였다. 우리가 현실에서 총체적으로 경험하는 것 같은 실제를 화면에서 재현하고자 했던 이러한 입체주의 실험은 결과적으로 대상을 알아볼 수 없는 분절적인 형태의 조합을 만들어 내었고 이것은 추상회화라는 새로운 형식이 전개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김희영 교수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및 동대학원 미술이론 석사, 미국 시카고대학교 서양 미술사 석사를 거쳐 아이오아대학교 서양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년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로 부임했으며, 서양미술사학회장 및 한국미술이론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페이스북
  • 트위터

이 코너의 다른 기사

이미지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