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여러 디자인 공모전에서 빼어난 실력으로 연이어 수상을 한 청년이 있었다. 어느 날 그에게 한국을 찾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 앞에서 발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그러나 최선을 다해 자신의 디자인을 설명했고, 그런 그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한 외국인 디자이너로부터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명함을 건네받았다. 그 디자이너는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 아이디오(IDEO)의 공동 창업자 빌 모그리지(Bill Moggridge)였다. 청년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어 디자인 그 자체만으로 자신이 어떤 생각으로 디자인을 하는지, 어떤 디자인을 추구하는지를 알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었고 아이디오에 보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50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개인 영어교습과 숙소 제공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아이디오 디자이너로 입사 제의를 받은 것이다. 이후 이 청년은 사람과 환경, 지구를 생각하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일류 디자이너로서 이름을 날렸다. 바로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 97학번 성정기 디자이너의 스토리다. 현재 그는 글로벌 디자인 회사인 아이디오와 루나를 거쳐 데이라이트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시작한 디자인 공부, 어려운 조건들을 극복하고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 그가 거쳐 온 과정, 도전의 스토리에 대해 들어봤다.
Q 데이라이트라는 회사에 대한 소개와 함께 최근 집중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데이라이트는 아이디오 출신들이 만든 회사에요. 샌프란시스코에 거점을 둔 산업 디자인 컨설팅 회사죠. 현재는 서울과 독일 뮌헨에도 오피스를 운영하고 있고 기업과 비영리재단 클라이언트의 비율은 50대 50으로 두고 있어요. 산업디자인부터 시작해 엔지니어링, 브랜딩, UI/UX 전략 등의 컨설팅까지 하고 있는 회사입니다. 제가 이곳에서 맡은 역할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산업 디자인 팀을 담당하고 있죠. 2014년부터 서울 오피스가 시작되면서 최근에는 서울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산업 디자인팀은 모두 샌프란시스코에 있기 때문에 한국 클라이언트의 일은 미국의 팀이 서울로 출장을 와서 작업을 하고, 미국 클라이언트 일은 제가 미국에 가서 일을 하고 있죠. 현재는 한국의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컨설팅 업무와 미국 중견기업과 스타트업의 산업 디자인 컨설팅 업무를 서울과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며 진행하고 있어요. 프로젝트에 따라서 장기 출장을 가기도 하죠.
Q 디자이너로서 어떤 활동을 통해 영감을 얻는지 궁금합니다. 또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디자이너로서 장점이라고 할 만한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주로 아내와 같이 여행을 가거나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을 좋아해요. 그런 것에서 어느 정도 영감을 받는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특별히 한국인 디자이너라는 자각을 한 적이 없어요. 국적보다는 디자이너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담은 프레젠테이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굳이 저만의 장점을 이야기를 하자면 ‘나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까요?
Q 디자인을 처음 공부할 때 나이가 27세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늦은 나이에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에 입학한 이유가 궁금한데요.
당시에는 경제적인 이유를 비롯해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디자인학과를 가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학비를 벌면서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고, 국민대학교는 군대를 제대하고 수능을 다시 보고나서야 입학 할 수 있었죠. 그 이전에는 다른 분야의 전공을 공부했지만, 모두 저와 맞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많이 늦은 셈이었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그런 실패들이 더욱 더 제가 디자인에 몰입할 수 있는 이유가 된 것 같아요.
Q 97학번으로 입학해 2003년에 졸업하셨습니다. 졸업도 꽤 오래 걸렸는데요.
말씀 드린 것처럼 경제 형편이 좋지 못해서 1년 공부하고 1년은 휴학하고 학비를 벌면서 자연스레 졸업이 늦어졌죠. 3학년 까지는 그럭저럭 마쳤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어요. 다행히 공모전을 통해 받은 상금으로 학비를 마련해 가까스로 졸업 할 수 있었죠. 적지 않은 나이였고, 절박함이 컸기 때문에 학교를 다닐 때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어요. 그저 디자인을 배운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죠. 특히 조형대학 내 다양한 전공수업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었던 것이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Q 학창시절부터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인 아이디오에 입사한 2004년까지 20회 이상 국내외 디자인 어워드와 공모전에서 수상을 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비결이 있었나요?
특별한 비결은 없어요. 그저 실패해도 계속 도전했던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죠. 보통 학생들은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게 되면 이후 더 이상 공모전에 도전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하지만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모전 뿐이었어요. 그래서 다양한 공모전에 참가했고, 수많은 실패 중에 수상에 성공한 것이 그런 결과를 낳은 거라 생각해요.
Q 아이디오에 입사 지원을 할 당시에 망설임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2001년 당시 LG전자 국제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뒤 입사 특전이 주어졌고 다른 고민 없이 선택했죠. 당시 함께했던 많은 친구들은 아직도 재직 중이고요. 아이디오 입사 결심을 할 때 특별한 망설임은 없었어요. 돌이켜 봤을 때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로 돌아간 다면 다른 방식을 고민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국회사와 글로벌 회사를 모두 경험하고 난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일한다는 것이 디자인 분야에서 특별한 장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Q 아이디오 창업자 빌 모그리지를 처음 만났을 당시의 이야기를 자세히 말씀해 주신다면?
2001년 10월 무렵 세계 산업디자이너들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산업디자인총회가 처음 우리나라에서 개최됐어요. 저는 늦깎이 대학생으로서 운 좋게 같은 해에 치러진 LG전자 국제디자인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수상자 자격으로 총회 부대행사로 치러진 시상식에서 수상작을 발표하는 영광을 누렸죠.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관계자들 앞에서 하는 발표였거든요. 하지만 영어가 서툴렀던 탓에 영어 원고를 읽기에 바빴어요. 그마저도 어렵게 준비했죠. 서둘러 발표를 마치려는데 마지막 순간 어느 외국 노신사가 질문을 던지더군요. 순간적으로 영어 질문이 나오니 진땀이 났죠. 다행히 통역을 해 줄 분을 찾았고 간단하게 답하고 나서 발표를 마칠 수 있었죠. 그런데 그 분은 발표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제 작업을 관찰하더니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명함을 쥐어주시더군요. 유학은 물론 어학연수조차 가기 어려웠던 형편의 저로서는 외국인이 명함을 줬다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그가 빌 모그리지라는 사실은 2년이 지나 잡지 특집기사를 통해서 알게 됐어요. 그 후 저는 2004년 무렵 오랫동안 준비했던 포트폴리오를 그때 받은 명함, 짧은 글과 함께 그분에게 보냈죠. “당신께서 하신 사소한 행동이 어느 젊은이에겐 희망이 돼 이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게 했다”는 글이었죠. 다행히 그분은 저를 기억하고 있었고, “지금까지 받아본 포트폴리오 중 최고였다”는 과분한 찬사와 함께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아이디오 보스턴 본사에 인턴과정도 거치지 않고 바로 정직원으로 입사할 수 있었어요.
Q 빌 모그리지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당시 상당히 오랜 기간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면서 아주 세심하게 아이디오라는 회사를 관찰했어요. 그 결과를 세심하게 정리했고 여러 상황을 고려했던 프레젠테이션 역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죠.
Q 언어와 문화, 환경 등 모든 것이 낯선 공간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적응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요?
모든 면에서 어려웠다고 생각되네요. 당시만 해도 어학연수조차 가보질 못했고 해외라곤 시상식장에 간 것을 제외하고 전무했거든요. 특히 미국은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회사에 입사해 바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것이 힘들었어요. 게다가 혹독한 보스턴의 추위까지 겪어야 했죠. 그러나 그런 것들을 빼면 좋았어요. 아이디오는 완전히 개방된 문화를 가지고 있는 회사였거든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고, 그 중 일부가 공모전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조금씩 적응해 나갈 수 있었죠.
Q 아이디오에서의 생활은 2년 남짓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추구하는 바와 본인이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다음 회사인 루나 디자인(Lunar Design)을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아이디오는 2006년 전후로 회사에 전반적인 변화가 있었어요. 전통적인 산업디자인회사에서 디자인 컨설팅 회사로의 전환이 이뤄진 거죠. 당시 아이디오 공동설립자 중 한분이신 산업디자이너 마이크 너 톨이 퇴사를 하시면서 많은 산업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회사를 떠나게 됐어요. 저 역시 산업 디자인을 잘 할 수 있는 루나로 회사를 옮기게 됐어요. 루나 디자인은 최근 맥킨지라는 컨설팅회사와 합병되면서 새로운 길을 가고 있지만 제가 합류 할 2006년 당시에는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반반 정도 일하는 산업 디자인회사였거든요. 샌프란시스코와 시카고, 독일 뮌헨, 홍콩에 지사를 두고 70 여명의 직원이 일하는 아주 전통적인 산업 디자인회사였죠.
Q 멘토이신 제프 살라자르(Jeff Salazor) 부사장을 루나에서 만났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 통했는지요?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사물을 다루는 시선,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서로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가끔 그분께서 힘들어하시면 저는 “당신은 힘들면 안 된다. 늘 웃어야하고 늘 일찍 퇴근해야 하며 늘 건강해야 한다. 왜냐면 당신은 나의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인데 당신이 지금 힘들다면 나의 미래도 그렇다는 거 아니냐”라며 농담처럼 말씀 드리곤 했죠. 실제로 그분의 많은 모습과 행동은 제게 영향을 주었고 그로 인해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루나에서 있었던 7년의 생활 동안 한 번은 제프 살라자르를 비롯해 루나의 친구들을 한국에 초대해 제 경험을 공유한 적이 있는데, 그때 기억은 지금도 생생해요.
Q 2014년 무렵, 현재 회사인 데이라이트로 옮기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데이라이트는 예전 아이디오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들이 만든 작은 회사에요. 한국에서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친구의 부탁이 있었고, 마침 고향을 그리워했던 제 입장에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고맙게도 제프 살라자르는 저 모르게 데이라이트에 저를 추천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지금도 제프 살라자르와는 개인적으로 계속 연락하고 있죠.
Q 데이라이트 디자인 디렉터로서 현재 자신과 2004년 아이디오에 처음 입사했을 때 자신을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디자이너로서, 한 인간으로서 엄청난 성장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양해졌죠.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얻게 된 판단력 역시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생각하고요. 무엇보다도 그 10여년의 시간이 없었다면 만날 수 없었을 사람들, 친구들은 제게 있어서 가장 큰 변화이자 행운입니다.
Q 국민대학교 재학 시절 자신의 꿈을 막는 장애물이라 생각한 것이 있나요?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합니다.
나이가 많다는 거였죠.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같은 학번 동기들과는 달리 늦은 시작을 했다는 것이 어려웠어요. 하지만 나이 많은 것이 큰 핸디캡이 되지 않는 미국에서 일하게 되면서 극복할 수 있었죠.
Q 해외취업 이후의 삶을 돌이켜 봤을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그리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말씀해 주신다면?
디자이너로서 어디에서 일하는지는 정말 중요한 문제이지만 근본적인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제 생각이에요. 해외 든 국내 든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이라면 누구나에게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만드는 디자인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가족과 떨어져서 지내야 한다는 것이 참 어렵더군요. 가족은 제가 서울로 돌아온 가장 큰 이유기도 하죠.
Q 지금 청년들 역시 그 시절 성정기 디자이너처럼 자신만의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실현가능한 목표를 갖는 것과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죠. 현실과 꿈의 차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자신에게 맞는 정확한 목표를 정하고 그에 따른 노력을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요. 인생을 길게 보고 게으름을 이겨 낸다면 더 많은 기회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긴 시간을 가지고 자신의 삶 전체를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고 일상의 삶과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균형있게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로서 역량을 쌓기 위한 TIP
- 박물관을 가라
박물관은 인류의 지혜와 역사, 문화가 모아진 곳이다. 여러 박물관을 돌아보고 그 중 자신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것으로 가치 순서 정해라. 또 그 이유를 타인에게 설명해 보도록 해라.
- 지도를 만들어라
일반적인 지도에는 그저 위치와 길, 건물들만 있을 뿐이다. 일반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맛, 소리, 냄새 등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을 추가해 새로운 자신만의 지도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 여행을 떠나라
자신만의 루트로 여행을 떠나라. 그곳의 박물관을 가고 자신만의 여행 지도를 만들어라. 그리고 그 여행을 하나의 영화처럼 기승전결로 요약해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나누어라.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 준비하면 좋은 것들
- 디자인 능력
디자인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자 한다면 그 직책에 맞는 충분한 디자인 능력을 증명하는 것은 기본이다.
- 언어 구사력
많은 언어를 사용하는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게 된다면 공통으로 사용하는 언어 습득 역시 기본이다.
- 커뮤니케이션 능력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게 되면 매일 프레젠테이션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통해 동료와 소통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해야 더 좋은 디자인,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Information
아이디오의 경우는 다양한 범위에 흥미와 관심을 가진 인재상을 제시하고 있다. 전문 분야 종사 경험자나 학위가 있는 사람 뿐 아니라 꼭 학위가 없어도 다양한 경험을 쌓은 인재를 고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아이디오는 협업을 중시하는데, 클라이언트와 파트너사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회사를 위해 무엇을 제안할 것인지, 무엇에 전념할 수 있는지, 목표는 무엇인지? 어떻게 자신의 이야기를 증명할 수 있는지가 면접에서 나오는 주요 질문이다. 채용 프로세스는 포트폴리오와 지원서를 아이디오 채용부서에 보내고 서류에 통과되면 면접이 진행된다. 면접에서는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설명해야하며 아이디오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어필해야한다. 면접의 질문은 직무와 관련된 전문적인 질문과 일상적인 질문으로 이뤄진다. 면접을 통과하게 되면 채용을 하는 팀에서 지원자들에게 간단한 과제를 수행하게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최종 합격이 결정된다.
아이디오 홈페이지https://www.ideo.com
루나 홈페이지 www.lunar.com
데이라이트 홈페이지 www.daylightdesign.com
성정기 디자이너는?
▲ 2001년 LG전자 국제디자인 공모전 금상
▲ 2002년 LG생활건강 디자인 공모전 대상
▲ 2002년 소니코리아 디자인 공모전 대상 공동 수상
▲ 2003년 독일 브라운 국제 공모전 전시작품 선정
▲ 2003년 독일 iF 국제 어워드 콘셉트상 국내 학생 최초 수상
▲ 2003년 21세기를 이끌 우수인재상 디자인부분 대통령상 수상
▲ 2003년 국민대 공업디자인학과 졸업(제품디자인 전공)
▲ 2004년 일본 오프스 국제 공모전 금상 수상
▲ 2004년 세계 최대 디자인전문회사 미국 IDEO 한국인 최초 입사
▲ 2005년 네덜란드 코람 국제 공모전 TOP 5상 수상
▲ 2006년 덴마크 인덱스 공모전 탑노미니
▲ 2006년 미국 루나디자인 입사
▲ 2007년 미국 시카고 국제 굿디자인상 수상
▲ 2007년 독일 레드닷 국제 콘셉트 어워드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상 수상
▲ 2008년 일본 오사카 국제 공모전 동상 수상
▲ 2008년 미국 IDEA 국제 어워드 은상 수상
▲ 2008, 2009년 지식경제부 산하 한국디자인진흥원 차세대 디자인 리더 선정
▲ 2011년 미국 ICFF국제 공모전 위너 선정
▲ 2011년, 2012년지식경제부 산하 한국디자인진흥원 포스트 차세대 디자인 리더 선정
▲ 2012년 독일 IF 국제 어워드 금상 수상
▲ 2012년 미국 포르쉐 국제 공모전 대상 수상
▲ 2014년 미국 IDEA 국제 공모전 은상 수상
▲ 2014년 ~ 현재 데이라이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근무
▲ 2015년 독일 IF 국제 어워드 금상 수상
▲ 2015년 독일 레드닷 국제 컨셉트 어워드 베스트 어브 더 베스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