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건축학부 건축학전공 07학번 동문인 그가 포스코 A&C에서 근무를 하기까지 거친 과정은 보통의 경우와는 꽤 많이 달랐다. 2003년 계원조형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그가 처음 택한 직업은 다름 아닌 건축잡지 기자였다. 당시 그가 하고 싶은 일이었고, 나름대로 성취감도 있었다. 그러나 유명 건축가들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차 자신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꿈이 되살아 났다. 결국 그는 잡지사를 그만두고 작은 건축설계사무소에서 다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몇 날 며칠 야근이 이어지는 업무의 연속이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즐거움 덕분에 피곤한 줄도 몰랐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고민은 다시 찾아왔다. 일을 하면 할수록 건축가로서 좀 더 깊이 있는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그는 다시 대학진학을 택했다. 국민대학교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하고 싶은 공부를 원 없이 했고 두각을 나타냈으며, 졸업 후 마침내 자신의 꿈을 본격적으로 이뤄나가고 있다.
포스코A&C는 지난 1995년부터 포스코센터, 포스틸타워, 포스코A&C 사옥을 짓는 등 포스코그룹 내 종합 건축 설계로 업무 영역을 확대했다. 2008년 이후 포스코A&C의 주력분야는 모듈러 건축(공장에서 건축물 골조와 마감재를 제작ㆍ조립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영국 일본 핀란드 등 선진국에서 활성화 돼 있음) 부문이다. 지난해 2월 천안에 모듈러 공장까지 확보한 포스코A&C는 현재 설계에서 시공까지 모든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종합건축설계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일성 씨 역시 포스코A&C의 2년차 사원으로서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한편, 꾸준한 노력으로 역량을 키워가고 있다. 또래의 동료들과 조금은 다른 과정을 거쳐왔기에 삶을 대하는 생각의 깊이가 남다른 그와의 만남은 유쾌함과 진지함을 넘나들었다.
사실 제가 하는 업무를 규정할 만한 직업적인 명칭은 아직 정해진 게 없어요. 건축사 면허를 취득을 하게 되면 건축사라고 불릴 수 있지만, 그 이전까지는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하는 사원이죠. 건축설계사무소는 아직 도제식 과정이기 때문에 굳이 말하자면 수련 중인 셈이에요. 대한건축사협회에서 칭하는 말로 건축사보라는 명칭이 있죠. 건축사를 보조하는 역할이라는 의미인데, 그렇게 마음에 드는 명칭은 아니에요(웃음). 일단 제 목표는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거예요.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우선 건축관련 대학을 나와서 실무 경력이 3년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해요. 저는 아직 그 요건에 못 미쳐 채워가고 있는 중이죠. 직함을 이야기하자면 저희 회사는 모기업인 포스코의 직급제를 따르기 때문에 대졸 사원의 경우는 기사라고 불러요.
포스코A&C 내에는 많은 사업본부가 있는데 저는 그 중에서 건축설계사업본부 설계2실에 속해 있어요. 설계2실은 턴키(turn key, 건설업체가 공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책임지고 다 마친 후 발주자에게 열쇠를 넘겨 주는 방식)나 현상설계(다수의 업체를 대상으로 설계를 공모하는 것) 같은 국내의 경쟁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죠. 대학교 시절의 공모전에 계속 나가는 일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울 거예요(웃음). 어떤 건축 프로젝트의 공모가 있으면 경쟁 설계사무소들과 함께 설계안을 제출하고 당선이 되면 일을 진행하는 거죠. 제가 입사하자마자 했던 프로젝트는 경기도 화성 동탄의 102블럭 공동주택 아파트 현상설계에요. 그 뒤에는 포항에 외국인학교 현상설계에 참여하기도 했죠. 장기 프로젝트로는 턴키방식으로 진행했던2015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위한 수영장 프로젝트도 있어요. 1년 전부터 최근까지 실시설계(시설물의 규모, 배치, 형태, 공사방법과 기간, 공사비, 유지관리 등에 관해 세부조사 및 분석, 비교?검토 후 최적안으로 도출하는 것. 설계도면과 시방서, 내역서 및 구조, 수리계산서 등을 작성하는 과정) 시공 및 업무에 참여하고 얼마 전에 본사로 복귀했어요.
쉽게 이야기 하자면, 설계는 크게 계획설계, 기본설계, 실시설계 등 3단계로 나눠져요. 계획설계는 말 그대로 어렴풋이 감을 잡고 그림을 그려가는 정도라고 생각을 하시면 되요. 기본 설계가 되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죠. 벽이나 문 정도가 구분이 되지만 실질적으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도면은 아니에요. 반면 실시설계는 시공이 가능한 수준의 도면을 그리는 작업이라 할 수 있죠. 보통 저희 회사 같은 대형설계사무소는 업무가 분업화 돼 있어 한 분야에만 치우치는 것이 일반적인데, 저는 운 좋게 처음 시작부터 실시설계까지 모두 참여해봤어요. 설계업무에 있어서는 계획설계부터 기본설계, 실시설계까지 다 한번 해본 거죠.
평소에는 보통 8시까지 출근을 해요. 출근한 뒤에는 사내메일을 확인하고 그날 해야 할 업무를 정리하죠. 그러다 9시쯤 되면 회의를 해요. 각자 그날 어떤 업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거죠. 그때그때 주어진 업무에 따라 다르지만, 초기단계의 디자인이 필요한 경우라면 9시 30분에 회의가 끝난 후 2시간 정도 여러 디자인 안에 대해 생각을 한 뒤에 모여서 다시 디자인 회의를 해요. 그렇게 결정 된 안 몇 가지를 가지고 다시 각자 추가적인 디자인을 더하고, 필요에 따라 다시 회의를 하기도 하면서 하나의 안으로 좁혀가죠. 그게 아니면 퇴근시간까지 쭉 디자인만 할 때도 있어요.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늘 생활하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업무다 보니까 많은 부분들을 고려를 할 수 밖에 없어요. 최근 작업했던 수영장의 경우는 다수의 이용자들이 있잖아요? 남녀노소를 불문한 다수 사용자의 취향을 최대한 아우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면 그들이 되야 해요. 늘 상대방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잊지 않아요. 일반 다수의 입장이 되어서 이 공간을 바라봤을 때 ‘과연 좋은 공간인가, 나의 이기심이나 내 조형적인 목적, 욕심 때문에 너무 과도하게 디자인 된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매번 하죠. 게다가 요즘은 ‘특별성능기준’이라 해서 장애인관련 인증, 친환경관련인증 등 건축물 하나를 다 짓고 사용하기 위해 받아야 하는 인증이 정말 많아요. 그런 것을 다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알아야 하는 것도 많고, 공부도 해야 되죠.
대학시절 이공희 교수님이나 이제는 스승님이라 부르는, 작은 설계사무소 시절 대표님이신 허서구 교수님 모두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것이, ‘설계는 하면 할수록 힘들다’셨어요. 요즘에는 그 말이 그렇게 와 닿더군요.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그냥 예쁘게 하면 되지’ 하면서 선을 막 그려댔어요(웃음). 그런데 요즘에는 선 하나 긋는 것도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까, 쉽지 않아요. 그런데 교수님과 선배들이 얘기한 것이 또 있어요. ‘이 시기를 잘 넘어가면 선을 그냥 그어도 아무런 저촉됨이 없다’란 말이죠. 지금 제가 그렇게 되려면 정말 오랜 수양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건축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죠. 그리고 리드(LEED)라는 자격증도 있어요. 친환경 건축자격증의 일종인데, 미국의 인증기관에서 발급하고 있죠. 회사 선배들 중에서도 업무를 하는 와중에 별도로 그런 자격증에 대한 공부하는 분들이 많아요. 저 역시 옆에서 보며 자극을 많이 받고 계획을 세우게 되더군요. 자연스럽게 목표가 생기는 것 같아요.
업무 평가는 모기업인 포스코의 인사평가관리제도를 따르고 있어요. 하지만 좀 어긋나는 면도 있죠. 아무래도 포스코는 제조업 기반의 회사고 저희는 건축디자인설계회사니까요. 최종적으로 사원들의 인사평가를 해주시는 분들은 설계본부장님과 각 실의 실장님들이신데, 프로젝트를 할 때면 실장님들께서 한명한명 눈 여겨 보신다는 것이 느껴져요(웃음). 프로젝트에 임하는 태도, 얼마나 열정적인가 등을 눈 여겨 보셨다가 평가에 반영하시는 듯해요. 또 다면평가라고 해서 동료들끼리도 평가를 하는 항목이 있어요(웃음). 일뿐 아니라 회사 내의 인간관계도 좋아야 한다는 말이죠.
정확하게 짚으셨어요. 후배들에게 제일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해요. 건축학과를 5년 동안 다니다 보면 아집에 도취되는 경우가 많아요. 더구나 공모전에서 수상까지 했을 경우에는 자신이 전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 드리면, 그런 사람은 건축가로서 자질이 없다고 봐요. 건축가는 스스로 디자인에 대한 입지도 바로서 있어야 되지만 또 중요한 건, 다른 사람의 말을 정말 귀담아서 많이 들어주고 그 의견을 녹여내면서 자신의 디자인을 표출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건축주가 요구하고 발주처가 요구하는데, ‘내가 디자인 이렇게 할건데, 뭘 안다고 그래’하며 무시하는 순간에 소통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거든요. 물론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일은 저보다 훨씬 직급이 높은 선배님들께서 담당하시지만, 그분들이 클라이언트를 상대하시는 걸 보면 정말 소통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그래서 저는 항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려 하고 좀 더 많은 분야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제가 건축 설계를 한다고 해서 늘 건축 설계만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일부러라도 시사적인 부분에 관심을 갖고, 사회현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고 하죠
이번이 처음이에요. 이제까지는 쭉 국내 답사만 했죠. 저희는 기본적으로 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사례조사를 해요. 예를 들어 그 프로젝트가 교육시설 용도라면 그와 비슷한 건축물을 사전 조사하기 위해 답사를 하는 거죠. 해외는 이번이 처음이고, 이제까지 부산이나 광주, 전주 같은 국내를 많이 돌아다녔어요.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건축사 취득을 위한 준비는 두말할 나위 없고요. 개인적으로는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설계 업무는 기본적으로 체력이 바탕이거든요.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운동을 하고, 주말에는 틈틈이 등산을 다니고 자전거도 타요. 저는 체력이 제 경쟁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이 분야의 선배님들을 보면 과로로 쓰러지셨다는 이야기가 많이 있거든요. 그런 상황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미리 알아서 몸 관리를 할 필요가 있는 거죠.
호기심과 집요함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한 번은 후배가 ‘설계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었던 게 기억나네요. 저는 거꾸로 후배에게 ‘너는 네 신체 치수에 대해서 알고 있냐’고 되물었어요. 생각보다 건축과를 다니면서 그걸 모르는 친구가 많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제 손 한 뼘 길이라든지, 제 팔 길이, 무릎부터 엉덩이까지 뼈의 길이 같은 치수를 모두 꿰고 있어요. 제 인체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지만, 그런 습관을 가지면 건축물을 봤을 때 스케일감이 생기거든요. 예를 들어서 어떤 건축물을 봤을 때 창문의 크기나 건물 전체의 크기에 대한 감이 온다는 거죠. 그러면 설계가 더 재미있어지고, 호기심이 더 왕성해져요. 더욱 작은 부분 하나까지 알고 싶어지죠.
제일 어려운 질문인 듯 해요(웃음). 당당하게 스펙이 전혀 필요 없다고 하기도 힘들고, 필요하다고 하기도 애매하거든요. 예전 선배님들은 ‘건축과가 무슨 영어야 설계만 열심히 하면 되지’라고 하셨고, 제 경우에도 실질적으로 설계사무소 들어갈 때 제일 중요한 건 설계 점수였거든요. 지금도 물론 설계 성적이 제일 중요하죠. 하지만 요즘 같은 경우에는 영어는 기본적으로 준비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전 그런 부분보다 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제가 입사를 하고 나서 들었던 이야기 인데, 제 합격 이유가 설계를 하고자 하는 의지와 열정이 면접에서 드러났다는 거였거든요. 왜 설계를 하고 싶었고, 왜 여기까지 달려왔고, 그런 의지들이 잘 표현됐다고 하시더군요. 즉, 자기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취업을 하기 위해서 공부 열심히 하고 영어 성적 쌓고, 자격증 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봉사 활동도 많이 하고, 자기만의 여행도 가보고, 하다못해 외국설계사무소 인턴이라도 지원해서 경험해보라는 거죠. 그런 경험을 해 보면 면접을 보거나 자기소개서 쓸 때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게 제가 후배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이야기에요.
국민대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장사도 해보고, 군대도 다녀오고, 기자 일도 해 봤어요. 그러면서 건축에 대한 제 열정을 깨닫게 됐죠. 그 전까지는 ‘설계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다시 설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걷잡을 수 없더군요. 그러다 우연찮게 주거전문 건축설계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됐어요. 거기서 일하면서 정말 많은 걸 배웠죠. 같이 일하는 선배들도 많은 도움을 주셨고, 특히 허서구 대표님이 그렇고요. 아마 제가 설계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준 두 분을 꼽으라면 국민대학교 이공희 교수님과 전 회사의 허서구 대표님일 거예요.
허 대표님과 나눴던 대화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요. 제가 일을 한 지 한 달쯤 됐을 때인데, 그전까지는 본 척도 안 하시던 대표님이 밤 늦게까지 일하는 저를 보시고는 ‘소주나 한잔하자’며 말을 걸어오셨죠. 술 잔을 놓고 이야기를 하시다가 ‘왜 건축을 하고 싶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저는 소외 받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최소한의 금액으로 살 수 있는 집을 지어주고 싶어서 한다고 말씀 드렸어요. 대표님은 묵묵히 들으시더니 ‘고래사냥을 하고있다’고 하시더군요. 너무 허황되다는 의미로 말씀하셨다고 생각되는데, 잠시 뒤에 ‘그 마음 변치 않고 설계를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도와주마’하시더라고요. 그때 울컥 눈물이 나오더군요.
설계사무실들이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성격이지만, 저희 회사 같은 경우 특히나 팀워크를 중시해요. 팀끼리 프로젝트를 많이 하니까요. 물론 개인적인 역량도 중요시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도 배려할 줄 알고 의견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을 선호하죠. 물론 자기 것이 정말 옳다고 생각하면 대차게 주장할 줄도 알아야겠지만, 겸손함을 잃지 않는 사람을 원하는 것 같아요.
건축과 나온 학생들은 대개 유럽답사를 다녀오는데, 전 그러지 못했어요. 기억나는 해외 답사 경험이라면 일본 도쿄 정도죠. 대신 전 국내 답사를 많이 다녔어요. 예를 들면, 서울에서 출발해 시내버스만 타고 전국을 한 바퀴 도는 식이었죠. 각 지역 시내버스 타고 다니면 국도로만 다니니까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신기한 건물들을 정말 많이 봤거든요. 그 중에도 부석사와 경산서원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제일 어려웠던 것은 1차 서류전형이었어요. 남들은 좀 의외라는데, 제가 늦은 나이에 학교를 졸업해서 그런지 약간 자신감이 떨어지더군요. 오히려 이제까지 거쳐온 경험 덕분인지 면접은 하나도 떨지 않고 편하게 본 것 같아요. 저희 회사의 입사 전형은 보통의 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서류 전형 후 실무자 면접, 실기시험, 다시 임원 면접, 건강검진 순이죠.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안에 건축공모전을 주로 하는 ‘엑시스(AXIS)’라는 학회 활동을 꼽을 수 있을 듯해요. 처음에는 공모전을 위주로 하는 학회였지만 나중에는 사회 현상이나, 재미있는 이슈를 가지고 건축적으로 풀어 내는 방법에 대해 회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예를 들어 어떤 주제에 대해 1학년들이 하는 이야기가 보통 학생들은 허무맹랑하게 들리지만 그래도 건축과를 다니는 3, 4학년들이 들었을 때는 살짝 다듬으면 좋은 아이디어가 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그런 것들을 후배들에게 이야기해주기도 하고 자신들도 그에 착안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 놓는 식이었죠.
사실 요즘 취업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후배들이 종종 찾아와요. 그때마다 제가 해주는 이야기는 부담 가지지 말고 기본만 갖추라는 거예요.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준비만 해놓으라는 거죠. 다시 말하지만 취업은 타이밍이라 생각해요. 내가 회사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필요할 때 나를 찾아줄 거라고 생각하고 준비를 하면 되요. 너무 조급해하지 말았으면 해요. 직업에는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고 즐기면서 공부하고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리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스스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고 있어요. 저는 살면서 전환점이 됐던 순간이,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무작정 써 내려가며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했을 때였어요. 금방 다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려 6개월이나 걸렸죠. 그마저도 A3 용지 하나를 다 못 채웠어요. 하지만 그 덕분에 저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잘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알았고 그 다음부터는 망설임이 없었죠. 자기가 하려는 일이 자기가 잘 하고 싶은 일이자 잘 할 수 있는 일이면 정말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잘 하고 싶은 일과 잘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선택을 해야 되요.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 역시 자신이 책임져야죠. 선택 하고 나서는 뒤 돌아보지 말고 앞을 향해서 달리라고 말해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