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과 비전은 선택의 순간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그런데 그 이정표가 때로는 독이 될 때가 있다. 그곳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에서 험난한 여정을 만났을 때, 지레 겁을 먹고 망설이게 될 경우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이미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고민하지 않고 먼저 몸으로 부딪쳐 보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인생의 나침반도 없이 걷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걸어갈 때도 있지만, 그들에게는 원래 정해진 길이 없었기 때문에 ‘틀린 길’이 있을 수 없다. 그들의 강점은 번거롭거나 어려운 상황과 맞닥뜨려도 멈추거나 후퇴하지 않고, 또 다른 방향을 찾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대학교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공인회계사로 활동하고 있는 권기욱 동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권 동문은 “아직까지 인생에서 실패라고 생각해본 순간은 없다”고 말했다. 국민대 입학, 극단 활동,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 세무회계개인사무소 개업까지 그에게 극적이지 않은 순간은 없었다. 그것은 그가 결과를 기준으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가치 판단을 우선하기보다, 새로운 목표를 찾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공인회계사가 된 지금도 다양한 사회 경험을 자신의 최대 강점으로 꼽는다.
우연은 늘 예측하기 어렵다. 우연을 가장한 것이 아니라면, 우연은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가능성이 낮은 일들로 정의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우연에서 기회를 찾곤 한다. 물론, 매 순간 열정적이고 충실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그런데 권기욱 동문의 삶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연결고리가 숨겨져 있었다. 그가 인생의 전환점을 찾을 수 있었던 우연의 힘이 바로 인연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e-business’라는 특화된 전공을 선택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요. 제 고향이 안동인데, 그 당시 여자 친구와 헤어진 이후 무작정 서울에서 대학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때까지 제대로 된 공부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권 대학에 갈 수 있는 수능 점수가 나왔죠. 당시 전자상거래 붐이 막 일었던 시기였는데 ‘e-business’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서 이 전공을 선택하게 됐죠.
학과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면?
2002년에 신설된 학과인 데다 인원이 적어서 그런지 학과 중심으로 학생들이 똘똘 뭉치려는 분위기가 강했어요. 저는 예전에 학과 친구 4명과 함께 아카펠라 팀을 짜서 북악가요제 본선에서 2등을 한 적이 있죠. 그 당시 팀원 모두 아카펠라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대회를 준비했는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죠. 그 이듬해부터 제가 가요제 진행을 맡기도 했고요.
‘학과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였나요?
규모가 큰 학과가 아니라서 체육대회, MT 등 과 행사에 빠지는 인원이 적을 만큼 단합이 잘 되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학과 선후배들과 가깝게 지내고 있죠. 학과 동문들은 스튜어디스, 방송국 PD, 자영업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요. 학과 역사는 짧은 편이지만, 동문들이 여러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 보니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도움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하셨는데,
아르바이트를 선택할 때 특별한 기준이 있었는지요?
선택 기준은 딱히 없었어요. 그냥 일이 재밌어 보이면 무엇이든 다 했던 거 같아요. 그 당시에는 저와 주변 친구들이 대부분 ‘멀쩡한 몸 놔둬서 뭐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나는 족족 아르바이트를 했었죠. 험하고 힘든 일이라도 제가 할 수 있으면 도전했던 시기였으니까요.
아르바이트를 통해 특별히 깨달은 점이 있었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겼던 경험을 해본 적이 있나요?
어떤 아르바이트라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평소 집에서는 한 적도 없는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선입견만 버리면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어요. 제가 극단에서 일을 하면서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바 사장님이 학교 앞에 통닭가게를 하게 되면 저한테 가게 운영을 맡긴다고 하셨어요. 실제로 제가 부동산 매물을 보러 다니기도 했고요. 그게 실제로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저는 그때 어떤 일이든 열정적으로 하면 기회가 온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죠. 그 이후에도 방과후 교실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축구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 그 때도 축구코치 자격증을 따오면 축구교실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달콤한 제의를 받은 경험도 있었고요. 특히 그 때 했던 경험들이 지금 하는 일에도 연결이 되어 있어요. 그 당시 알게 된 인연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소개 받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었죠. 경험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장래희망은 무엇이었고, 그 꿈이 대학교 때 어떻게 변화했나요?
특정한 직업으로 장래희망을 한정 짓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단지 학창시절에 음악, 미술, 체육과 같은 예체능 과목을 남달리 좋아하고 잘해서 아마 예체능 분야에서 일을 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는 있었죠. 그래서 만약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면, 디자이너, 건축가, 무대 연출가를 꿈꿨었어요. 고등학교 때 록밴드 활동을 하고 대학교 때 극단에 소속돼 무대에 오른 것도 예능적인 끼를 해소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공인회계사 시험뿐만 아니라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권기욱 동문은 공부법과 시험 문제 유형 등을 익히기에 앞서 책이나 영상을 보며 앉아 있는 시간을 늘렸다. 바로 ‘공부하는 습관을 갖기 위해서’였다. 그는 “처음에는 1시간도 앉아 있기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느새 반나절 이상 앉아 있는 것이 힘들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부하는 습관으로 기초를 탄탄히 닦은 후, 비교적 짧은 기간에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사회 진출을 앞두고 2년간의 휴학은 어떻게 결정하게 됐습니까?
부모님이나 지인들의 반대는 없었는지.
부모님 교육 방침이 어렸을 때부터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였어요.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서 제 선택에 대한 부모님의 간섭이나 반대는 없었죠. 군 제대를 하면 일반적으로 자격증 공부나 커리어를 쌓기 위해 노력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 당시에 하고 싶은 일이 생겼던 상황이라 학업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단, 부모님께 ‘대학 졸업은 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기로 했죠.
휴학 기간 동안 개그맨 지망생으로 무대에 선 경험이 있는데,
이전부터 꿈꿔왔던 자신의 모습이었는지 궁금합니다.
2년 조금 안 되게 극단 소속 배우로 무대에 섰던 적이 있어요. 주말 공연은 아무나 못 올라가요. 그래서 평일 공연은 시험 무대인 경우가 많죠. 평일 공연에서 반응이 좋았던 순간들 중 최고만 모아서 주말 공연을 준비해요. 이러한 순간들을 모으면 하나의 코너가 완성이 되죠. 주말 공연에 나가기 위해 4~5명 관객을 두고 평일 낮 시간에도 연습을 해야 했어요. 그래서 주말 공연에 처음 올라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죠. 객석이 꽉 찬 상태에서 공연을 해보니 가슴 벅찬 느낌이 들더군요. 게다가 제가 짠 콩트에 많은 관객들이 박장대소하며 웃는 모습을 보니까 기분도 남달랐죠. 그 느낌은 쉽게 잊을 수가 없어요.
극단생활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그 당시 어떻게 개그맨의 꿈을 키웠나요?
극단생활은 제가 좋고 재밌어서 선택한 것이어서 수입이나 근무 환경 등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것 같아요. 팀원들과 커피숍이나 공원에서 회의를 하면서 개그 코너를 준비했었죠. 그 당시에는 콩트 대본을 직접 만들어가면서 서로 연기 지도도 해줘야 했어요.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그 당시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웃길까’라는 생각밖에 없었죠.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영화 등을 보면서 개그 소재를 찾고, 때로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캐릭터를 따라해 보기도 했어요. 물론, 그 당시 수입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돈이 필요하면 주말 혹은 야간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죠. 지금 생각하면, 진짜 그 순간을 즐겼던 것 같아요.
극단 생활을 포기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그 당시 제가 소속된 극단이 한 유명 리조트 회사와 계약을 맺었어요. 그 리조트 회사가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리조트에 온 가족들에게 공연 안내와 가이드 등을 지원하게 됐는데, 당시 극단 단원들이 리조트에 파견을 나가게 된 거죠. 어쩌다 보니 제가 그러한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 오거나이저(PO)를 맡게 됐어요. 6개월 정도 강원도 속초에 있는 리조트에서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일을 했어요. 낮에는 드라마 촬영장으로 쓰였던 곳에서 난타와 사물놀이, 북청사자 공연 등을 해야 했는데, 그것을 관광객들 앞에서 공연하기 위해 2개월 속성으로 배운 적도 있어요. 오후에는 물놀이장에서 동물이나 만화 캐릭터 탈을 쓰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고, 저녁에도 탭 댄스 같은 공연을 해야 했죠. 그런데 어느 순간 허탈감이 밀려오는 거예요. 개그를 배우러 극단에 들어갔는데, 제가 그린 것과는 너무 다른 일을 하게 됐으니까요. 개그맨에 대한 꿈이 희석되어 갈 때쯤 제가 회사 측에 먼저 ‘서울로 보내 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렇게 극단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동기가 아무도 없던 상황이어서 팀을 꾸릴 수도 없었죠. 극단에 나가지 않는 날이 자연스럽게 늘어났고, 결국에는 개그맨에 대한 꿈을 접게 되었어요. 물론,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때의 경험들이 저에겐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고등학교 친구의 권유로 회계사 시험을 준비했는데,
그 당시 고등학교 동창은 어떤 말로 회계사 시험 응시를 권했나요?
고등학교 때 밴드 활동을 함께 했던 친구가 재수를 해서 국민대에 입학을 했어요. 저는 그 소식을 모르고 있다가 학교에서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나게 됐죠.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회계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그 친구는 이미 1차 합격 후 2차를 준비하던 상황이었는데, 저한테 ‘나도 했는데 너는 쉽게 합격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심어주는 거예요. 회계사가 되면 좋다는 말과 함께요. 마침 극단을 그만두고 삶이 무료하던 차에 몰입할 거리를 찾고 있었는데 ‘잘 됐다’ 싶었죠. 친구의 도움과 권유로 학교 고시반에 들어가게 됐고, 정말 아무 것도 모르던 상황에서 공인회계사 시험 준비를 시작하게 됐어요.
시험 준비 기간은 어느 정도였고, 준비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총 3년 6개월 정도 걸렸어요. 첫해는 먼저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야 했어요. 평소 공부가 몸에 배지 않는 사람들은 공부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가장 힘들거든요. 처음에는 고시반에서 영화를 보거나 도서관에서 잡다한 책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죠.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본격적으로 공인회계사 시험공부를 시작했던 것 같아요. 고시반에서 정기적으로 시험을 보는데 그 당시 제 성적은 거의 꼴찌 수준이었죠. 자존심이 상해서 그런지 고시 공부에 더 몰두했던 것 같아요. 1년 정도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 고시반에서 성적이 좋은 친구들의 공부 습관을 유심히 관찰하고, 합격수기도 많이 찾아 읽었죠. 그런데 예상과 달리 그해 공인회계사 시험 1차에서 아깝게 떨어진 거예요. 그 때 저에게 회계사 시험을 권유한 친구는 최종 합격해서 고시반을 나가게 됐는데, 평소 저를 옆에서 잘 챙겨주던 친구와 헤어지게 돼서 그런지 좌절감이 더 크게 느껴졌죠. 그러고 나서 절치부심해서 1년을 다시 열심히 공부했던 게 합격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어요. 그 때 실력이 많이 늘었죠. 고시반에서 시험을 보면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권기욱 동문은 회계법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회사를 다니며, 이론과 실무의 차이를 절실히 느꼈다. 그에게 위기는 안정된 순간에 불현 듯 찾아왔다. 실무가 익숙해지자 어느 순간 ‘일을 주도적으로 하지 못 한다’는 생각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선택은 ‘내 일을 하는 것’이었다. 개인 세무회계사무소를 개업하는 데 따르는 위험 부담도 적지 않았지만, 그는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짧게 고민하고 재빠르게 행동으로 옮겼다.
세무회계법인 회사에서 근무하시다가 개인 사무소를 여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법인에 소속돼 있으면 ‘내 일’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서 그런지 제가 맡은 업무에 애정이 안 가더라고요. 제가 회사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법인회사 2곳을 거치면서도 회사 일은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내 일’이 필요했던 거예요. 또 회사에 소속돼 있으면 아무래도 실무를 단계별로 배우게 되는데, 개인 사무소를 운영하면 더 많은 경험을 폭 넓게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10월 1일이 개업한 지 1년째 되는 날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개인세무회계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어떤 점을 깨닫게 되셨나요?
일단 현재 ‘참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들 만큼 목표한 대로 순항 중이에요. 제가 직접 몸으로 부딪혀 보니 배울 게 너무 많더라고요. 신경 써야 될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고요. 바쁠 때는 휴일도 없지만, 제가 자유롭게 시간 조율을 하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죠. 더구나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알아서 일을 찾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뿌듯한 마음도 생기고요. 거래처가 늘어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인데요. 세무 일을 하면서 고객사와 상대하다 보면, 다양한 인생 선배님들로부터 경험, 지혜 등을 배울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회계법인 근무와 개인 사무소 개업,
이 두 가지를 두고 고민하는 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세요?
만약 두 가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면,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해 봐야 할 거 같아요. 책임져야 하는 대상이 자신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개인 사무소를 운영해보는 것도 좋다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더욱이 나이가 많지 않다면, 새로운 도전은 분명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기대 이상으로 얻는 것도 많으니까요.
1년 간 개인 사무소를 운영하면서 나만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신규 거래처를 만들고 고객을 상대하는 부분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고객과 만나는 자리만 주어지면, 저는 어떻게든 그 분을 제 고객으로 만들어 내거든요. 다양한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배운 ‘잡지식’들이 고객과 상담할 때 저만의 특화된 무기가 되죠. 세무뿐만 아니라 부동산, 주식 운용, 보험 등 다양한 금융 상식에 대해서도 조언을 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처음 만나도 제 호감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죠.
공인회계사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제가 지금도 학교를 자주 찾는 편인데요. 고시반에서 공부하는 후배들을 상대로 멘토링을 해주고 있죠. 그런데 시험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보면, ‘열심히 했는데 잘 안 된다’는 말을 쉽게 하더라고요. 더 이야기를 나눠 보면, 그런 말을 한 대부분의 후배들이 공부를 안 한 것이었어요. 남들 다 하는 연애도 하고, 시간 날 때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 어떻게 남들보다 뛰어난 성적을 낼 수 있겠어요? 자신의 지능이나 집안 환경을 탓하기 전에 ‘시험공부에만 전념했는지’ 스스로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플래툰 시스템’이라고 말하는데, 고시반에 침대를 놓고 학교 화장실을 써가면서 시험공부에만 매달렸거든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고, 또 어떤 큰 꿈을 그리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현재 거래처가 50곳 정도 돼요. 연말에는 거래처를 70개, 2017년에는 150개, 2018년에는 200개까지 늘리는 게 제 목표예요. 또 제가 요즘에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시험을 봤었는데 합격은 못했어요. 하지만 더 준비해서 내년에 또 도전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사업 다각화를 이뤄내고 싶습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준비를 하면서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쌓고 있는 시기라고 말씀 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