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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이자 컬렉터로서

- 내가 발견한 예술과 경제의 교차점 -

(국제통상학과 김재준 교수)

미술 시장은 시각적으로 풍부하고 문화적으로 매력적인 세계이지만, 그 이면은 종종 일반 대중 에게는 낯설고 폐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 역시 처음 미술 시장에 진입했을 당시, 그 구조 와 언어, 거래 관행이 매우 낯설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전시장은 침묵하고 있었고, 작품은 직 접적인 설명을 생략한 채 존재했으며, 가격표는 시장의 실제 거래를 반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낯설음은 나를 단념하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 는 동기를 제공하였다. 경제학자로서 나는 시장 구조를 분석했고, 컬렉터로서 수많은 작품과 작 가를 관찰하였으며, 결국 화가로서 창작의 과정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미술 시장을 단순한 자산 거래의 공간이 아닌, 창의성과 자본, 감성과 판단이 교차하는 복합적 생태계로 인식하게 되었다.

창의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미술 시장에 대한 관심이 깊어질수록, 나는 작가들의 사고와 감정에 더욱 공감하고 싶어졌고, 직접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관람자의 시선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작가로서 의 정체성도 갖게 되었고, 이러한 전환은 창의성에 대한 내 인식을 크게 바꾸었다.

나는 창의성을 소수의 타고난 사람만이 가진 재능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잠재된 보편적 능 력이라고 믿는다. 다만 일상적인 사고방식과 사회 구조가 그 능력을 억제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 한 신념을 바탕으로 나는 일민미술관에서 성인 대상의 예술 강의를 진행하였고, 그 경험을 바탕 으로 『화가처럼 생각하기 1, 2』를 집필하였다. 이 책에서는 누구나 창의성을 체계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창작 활동을 통해 더욱 감각적인 미술 소비자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팬데믹 이후 , 미술시장은 어디로 향하는가?

2020년 팬데믹 이후 한국 미술 시장은 전례 없는 변화를 겪었다. 시장은 급속히 성장했고, 특히 MZ세대의 진입이 두드러졌다. 이들은 디지털 플랫폼과 SNS를 통해 작품을 탐색하고 구매하며, 이전 세대와는 다른 소비 패턴을 보여주었다. 미술품은 더 이상 소수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 라,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소비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아트테크’라는 투자 지향적 컬렉팅 문화도 함께 성장하였다. 고가 작품의 소유권을 분할하여 거래하는 플랫폼이 등장했고, 일부는 미술 시장을 자산 시장의 대안 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의 본질이 자본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성찰이 필 요한 주제이다. 더불어 시장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양극화 현상도 심화되었다. 유명 작가의 작 품은 고가로 안정적으로 거래되는 반면, 신진 작가나 비주류 작품에 대한 수요는 제한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컬렉터의 역할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예술 생태계의 균형을 조율하는 조력 자로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예술, 나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언어

나에게 예술은 단순한 자기표현을 넘어서, 자신과 대화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통로다. 붓 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순간, 나는 ‘경제학자’, ‘교수’라는 사회적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오롯이 개인 김재준으로 돌아간다. 창작은 내면의 감정과 기억을 직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스스 로도 인식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색과 선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나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된다.

예술, 사회적 상상력의 실험실

오늘날 예술은 더 이상 독립된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패션, 디자인, 기술, 경제 등 다양한 분 야와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질적인 요소들 사이의 긴장을 실험하고 창조적으로 재조합하는 장 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교차점에서는 단순한 융합을 넘어, 기존의 의미 체계를 전복하고 새로운 감각과 가치를 제안하는 문화적 생태계가 자라난다. 예술은 이제 고립된 상징체계가 아 니라, 사회적 상상력을 가동시키는 실천적 플랫폼이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변화의 가능성을 탐 색하고, 낯선 질서를 상상하며, 새로운 시대의 감수성을 길러낼 수 있다. 예술의 역할은 지금 이 시대에 더욱 도전적이고, 더욱 유기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민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김재준 교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국민대 박물관장과 도서관장을 역임하고, 화가·컬렉터·오디오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예술·인문학·수학·기술 등의 융합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AI와 미래 레지던시의 연구와 기획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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