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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을 지키는 미생물과 천연물의 화학 - 독성 조류와 공생 미생물에서 찾은 생태 화학의 단서

(임산생명공학과 엄수현 교수)
새의 깃털에는 다양한 미생물이 서식하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화학물질은 깃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독성 조류 섭정휘파람새에서 발견된 공생 미생물은 세균과 곰팡이를 억제하는 새로운 천연물을 생산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번 연구는 생물과 미생물의 화학적 상호작용을 밝히고, 자연 속에서 새로운 유용 물질을 발견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새의 깃털을 지키는 것은 깃털 자체만이 아니다. 파푸아뉴기니의 한 독성 조류와 함께 사는 미생물은 항균 천연물을 만들어 깃털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 2024년 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된 연구를 통해 생물, 미생물, 그리고 분자가 얽힌 자연의 화학을 들여다본다.

깃털을 지키는 미생물과 천연물의 화학 - 독성 조류와 공생 미생물에서 찾은 생태 화학의 단서

새를 떠올리면 우리는 보통 날개, 깃털, 부리처럼 눈에 보이는 특징부터 생각한다. 그러나 새의 몸을 지키는 방식 가운데에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층위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몸 표면과 깃털 주변에 함께 살아가는 미생물, 그리고 그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화학물질이다. 최근 생명과학은 생물을 하나의 개체로만 보는 데서 벗어나, 서로 다른 생물이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분자를 주고받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천연물화학 역시 단순히 “새로운 물질을 찾는 학문”을 넘어, 자연 속에서 그 물질이 왜 만들어지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함께 묻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새의 깃털은 체온 유지와 비행에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세균과 곰팡이에 끊임없이 노출된다. 특히 꼬리 부근에 있는 꼬리기름샘(uropygial gland)에서 분비되는 기름은 깃털을 정돈하고 방수 기능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에는 이 분비물이 단순한 기름을 넘어 미생물과 함께 깃털 건강을 유지하는 생태적 공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즉, 새의 깃털은 단순한 신체 구조가 아니라 숙주와 미생물, 그리고 다양한 분자들이 만나는 작은 생태계일 수 있다.

깃털을 지키는 미생물과 천연물의 화학 - 독성 조류와 공생 미생물에서 찾은 생태 화학의 단서

필자는 2024년 Nature Communications에 주저자로 참여한 연구에서 파푸아뉴기니에 서식하는 독성 조류 섭정휘파람새 (Pachycephala schlegelii)를 대상으로 이러한 질문을 추적했다. 이 새는 포식자를 막는 독성 성분으로 알려졌지만, 그 깃털 표면과 꼬리기름샘 주변에 어떤 미생물이 살고 있으며 이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 새의 깃털과 꼬리기름샘 미생물 군집을 분석하고, 그 가운데 실제로 배양 가능한 균주들을 분리했다. 그리고 그중 Amycolatopsis 속에 속하는 한 균주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균주는 깃털을 손상시킬 수 있는 세균과 피부 병원성 곰팡이에 대해 억제 활성을 보였다. 다시 말해, 단순히 새 몸에 우연히 붙어사는 미생물이 아니라 숙주의 표면 환경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보였다. 이어진 화학 분석에서는 이 균주가 이미 알려진 항생성 물질뿐 아니라 기존에 보고되지 않았던 새로운 펩타이드 계열 천연물도 함께 생산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이 새로운 화합물 군에 pachycephalamides와 demiguisin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유전체와 전사체, 유전자 기능 분석을 통해 이 물질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추적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화학물질의 흔적이 실제 새의 깃털 추출물에서도 확인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시험관 속 배양 실험에서만 관찰된 현상이 아니라, 자연 상태에서도 이 미생물이 생산한 분자들이 실제로 존재하며 생태적 역할을 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즉, 새의 깃털은 단순히 보호받는 대상이 아니라 미생물과 화학물질이 함께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보호막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깃털을 지키는 미생물과 천연물의 화학 - 독성 조류와 공생 미생물에서 찾은 생태 화학의 단서

이 연구는 미생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흔히 미생물을 질병의 원인으로만 이해하기 쉽지만, 실제 자연계에서 미생물은 다른 생물과 협력하며 환경을 조절하는 중요한 동반자이기도 하다. 특히 천연물 연구의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유용 물질은 토양이나 식물뿐 아니라 서로 다른 생물이 만나는 경계면, 즉 공생과 경쟁이 동시에 일어나는 생태적 접점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 새의 깃털 역시 그러한 접점 가운데 하나다.

앞으로의 천연물과 생명과학 연구는 “무슨 물질이 있는가”를 넘어 “그 물질이 왜 필요한가”를 함께 묻게 될 것이다. 자연은 수많은 생물과 미생물이 오랜 시간 상호작용을 하며 만들어낸 거대한 화학 실험실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안에서 새로운 분자를 하나 더 찾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분자가 자연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읽어내는 것이다. 독성 조류의 깃털에서 시작된 이 작은 질문은, 결국 생물과 미생물이 함께 만드는 보이지 않는 보호막,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화학의 세계를 보여준다.

관련 논문 링크 (https://doi.org/10.1038/s41467-024-52316-3)

프로필 사진 - 국민대학교 임산생명공학과 엄수현 교수
국민대학교 임산생명공학과 엄수현 교수
엄수현 교수는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박사과정 중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대 (ETH Zürich)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독일 라이프니츠 천연물 및 감염생물학 연구소(HKI) 박사후연구원과 연세대학교 약학대학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국민대학교 임산생명공학과 조교수로 재직하며 천연물 약품 분석 연구실을 이끌고 있다. 미생물과 식물 유래 천연물의 분리와 구조 규명, 질량분석 기반 대사체 분석을 통해 새로운 생리활성 물질을 발굴하고, 생물 간 화학적 상호작용과 미생물에 의한 천연물의 생물전환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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