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주변의 환경에 서식하는 수많은 미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장내, 피부 표면 등 인체 곳곳에 자리 잡은 미생물들의 총체는 매 순간 수많은 대사 반응을 일으키며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데이터는 너무나 방대해서, 마치 은하계의 모든 별을 하나씩 세고 그들의 상호작용을 추적하는 것처럼 사람의 힘만으로는 제대로 된 분석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등에 업은 계산생물학이 이 복잡한 미생물 세계를 위한 현미경이자 망원경이 되어 방대한 생물학적 빅데이터를 비밀을 풀어내고 있다.
2003년 크레이그 벤터 연구팀이 사르가소 해의 미생물 군집의 유전체 모음, 즉 메타지놈을 통째로 서열 분석한 시도는 메타지노믹스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 이전에는 미생물을 연구하려면 우선 실험실에서 배양해 내야 했지만, 여전히 우리 몸 안에서 살아가는 미생물들의 대다수는 인위적으로 배양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Next generation sequencing 기술과 컴퓨팅 파워의 진보를 바탕으로 배양 불가능한 미생물들을 포함해 수많은 미생물의 유전정보를 한 번에 분석하고 그 속에서 개별 미생물들의 존재를 식별할 수 있게 되었다. 일례로, 대표적인 인체 마이크로바이옴이라고 할 수 있는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구성 미생물들을 분석하기 위해 우리의 장에서 서식하는 미생물들을 담고 있는 대변을 분석하곤 한다. 소량의 대변 샘플에서 추출되는 DNA 데이터는 책 수만 권 이상의 분량이다. 이 데이터는 마치 수백만 조각으로 찢어진 책 페이지와 같은데, 정교한 알고리듬을 통해 이 조각들을 원래 순서대로 맞추어낼 수 있고, 심지어 여러 종류의 미생물 DNA가 섞여 있어도 각각을 구분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생물통계학, 컴퓨터 과학, 수학 및 통계학의 교집합에 자리하며 생명과학 문제를 계산적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학제간 융합이 필요하고, 그러한 학문 분야가 바로 계산생물학이다. 우리는 계산생물학을 기반으로 마이크로바이옴과 같은 대규모의 생물학적 빅데이터를 처리 및 분석하고, 그로부터 특정 패턴을 찾아내고, 나아가 생물학적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하기도 한다.

우리는 계산생물학을 기반으로 인체 미생물들이 형성하는, 마치 SNS처럼 복잡한 상호작용의 관계망을 관찰하기도 한다. 어떤 미생물은 서로 도와주고, 반대로 서로 경쟁하기도 하며, 이런 상호작용에 숙주인 우리 인간이 포함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A라는 미생물이 식이섬유를 분해하면, B라는 미생물이 그 부산물을 먹고 우리 건강에 좋은 물질을 만드는 식이다. 이러한 상호작용들은 실제로는 매우 치밀한 관계망을 형성하며, 이들을 분석하여 어떤 미생물이 장 건강의 ‘인플루언서’ 역할을 하는지 알 수도 있다.
계산생물학은 통계와 더불어 AI를 곁들이며 수천 명의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를 학습하여 패턴을 찾아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장암 환자들의 장에는 특정 미생물 조합이 나타나는데, 계산생물학적 접근을 통해 이 패턴을 매우 높은 정확도로 찾아낼 수 있다. 마치 숙련된 의사가 X-ray를 보고 질병을 진단하듯이, 미생물 데이터를 바탕으로 건강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미래 예측인데, “이 사람이 항생제를 먹으면 장내 미생물이 어떻게 변할까?”, “언제쯤 회복될까?” 같은 질문에 데이터 기반의 신빙성 있는 해답을 제시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의사는 환자마다 다른 맞춤형 처방을 제공할 수 있다. 심지어 현재 과학자들은 컴퓨터 안에 ‘가상의 장’을 만들어 활용하기도 한다. 실제 사람의 장내 환경을 그대로 복사한 일종의 디지털 쌍둥이로, 이 가상공간에서는 위험 부담 없이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다. “김치를 매일 먹으면?”, “이 약을 먹으면?”, “운동을 하면?” 같은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해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볼 수 있게 된다. 계산생물학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주는 특별한 안경이다. 0과 1의 디지털 언어로 생명의 신비를 해독하면서, 우리는 건강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가고 있다. 이 기술은 단순한 과학 발전이 아니며, 여러분이 먹는 음식, 당신의 기분, 당신의 건강이 모두 장내 미생물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줄 뿐 아니라 이 복잡한 연결고리를 이해하고 예측하여, 더 건강한 삶을 위한 지도를 그려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