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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의 길, 평정심

<승부>(김형주, 2025)

(영화전공 이용주 교수)

승부의 세계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평정심은 감정의 기복 없이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 상태이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한 노력, 공자의 말대로 마음 그릇을 키워야 평정심이 유지된다. 이것을 엿볼 수 있는 영화가 근간에 개봉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그것은 바로 김형주 감독의 <승부>(2025)이다.

이 영화는 바둑계의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최초 순수 바둑 영화이다. 물론 다큐멘터리처럼 실제 그대로는 아니나 실화에 허구를 섞어서 극적 재미를 부여하고 있다. 실존 인물의 실화 소재의 경우 사실과 허구가 융합되어 있으나 영화적 상상력이나 허구를 최소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 영화는 스승과 제자 간의 대국 실화의 사건, 실존 인물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대국 승부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출처: ㈜바이포엠스튜디오

실화 영화는 실화 기반, 실존 인물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를 가리킨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재조명한다는 점에서 관객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이야기가 현실과 유사한 상황이라는 정보를 제공하여 관객에게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 실화 소재 영화는 실화에 영화적 상상력과 허구의 설정이 덧붙여져 각색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영화의 극적 효과를 위한 작업이다.

실제 1990년 최고위전에서 제자 이창호에게 패배하고 1991년 국수전에서 조훈현이 이창호에 승리한 바 있고, 1990년 중후반 패왕전, 바둑왕전 등에서 제자를 이기고 타이틀을 탈환한 이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는 실제와 달리 스승 조훈현이 제자 이창호에게 패한 뒤 10년을 극적 시간으로 설정하여 대국에서 승리하는 것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실존 인물의 실화를 소재로 만든다고 하더라도 영화기법에 적절하게 생략 혹은 순기능의 각색이 필요하다.

출처: ㈜바이포엠스튜디오

이 영화는 액션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정적인 바둑을 소재로 삼은 것과 실존 인물의 실화가 소재라는 것이 어려운 각색 일 수 있으나 그것을 감독의 연출력으로 잘 극복하고 있다. 이 영화는 정적이고 내면적인 측면이 중요한 바둑이 소재라서 인물의 표정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는 클로즈업을 자주 사용할 수밖에 없다. 또한 바둑을 모르는 관객까지 생각하여 바둑의 기본용어를 자막으로 덧붙여 낯설지 않게 집중하게 만든 것은 감독의 친절한 연출이다.

이 영화는 조훈현(이병헌 분)이 아홉 살의 이창호(아역 김강훈 분/성인 유아인 분)를 내제자로 삼고 같은 집에 살면서 가르치고, 내제자가 성장하여 열여섯 살의 나이에 스승을 대국에서 이긴 믿기 어려운 실제 사건을 그리고 있다. 스승이 어린 내제자에게 대국에서 패하고 난 뒤 내적 갈등을 겪는 인간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관객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영화는 스승 조훈현이 내제자 이창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과정과 자신이 평정심을 찾아가는 과정을 극적으로 잘 담아내고 있다.

내제자(內弟子) 문화는 일본의 초절정 고수가 집안에 도장을 두고 제자를 키우던 제도에서 전해오는 것으로 바둑에서 내제자는 스승의 집에 기거하며 바둑을 배우는 제자를 의미한다. 조훈현 자신이 열세 살에 일본의 고수 세고에 겐사쿠의 내제자로 바둑을 배웠던 것처럼 아홉 살의 이창호를 내제자로 삼았다. 조훈현은 바둑을 두는 스타일(기풍)이 완전히 다른 이창호에게 기본에 충실할 것을 종용하며 신경전과 갈등을 겪다가 제자의 바둑 스타일을 인정하게 된다. 이 장면은 실화와 다르고 영화의 극적 효과를 위한 각색이다. 실제로 조훈현은 일본 스승에게 배웠던 것처럼 “스승은 가르치는 게 아니고, 그냥 이끌어주는 거다. 그 길로 가도록. 이창호가 알아서 저렇게 컸고 알아서 잘한 거지. 제가 저렇게 잘 가르친 건 아니다.”라고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영화는 실화 소재 영화라고 하더라도 극적 효과를 위해 가벼운 선의의 왜곡이 있을 수 있다.

출처: ㈜바이포엠스튜디오

이 영화의 절정은 스승 조훈현이 바둑은 체력이 필수라는 것을 깨달으며 담배를 끊고, 제자가 대국에서 난관에 봉착했을 때 조언했던 평정심을 자신이 되찾고 제자 이창호와의 대국에서 자신만의 바둑 스타일로 진정한 승부사로 변신하여 승리하는 장면이다. 그는 진정한 승부가 단순히 대국에서 국수 타이틀을 다시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제자 이창호를 진정한 대국 상대로 인정하는 평정심을 찾은 것이다. 또한 대국이란 승부 세계에서 제자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든 패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바둑은 자신과의 싸움이다.”라는 것을 깨닫는 평정심이다. 조훈현은 이창호에게 “네 덕에 많이 배운다. 나도 언제든 질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대국을 시작하면서 “창호, 또 너냐.” “네 선생님” “도리 없지, 이것이 승부니까”라며 스승 조훈현은 무심(無心), 제자 이창호는 성의(誠意)라고 각자의 마음가짐을 표현한다. 스승 조훈현은 승부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고 평정심으로 대국에 임한다는 것이고, 제자 이창호는 스승을 상대로 모시고 성의있게 대국에 임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대다수 사람은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 살며 다양한 적수와 마주하게 되기에 일상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때 아름다운 승부를 맞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답은 없으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적 삶에서도 다를 바 없다. 그런 점에서 바둑은 우리의 삶과 닮아있을 수 있다.

이 영화는 촬영을 2021년에 끝내고도 팬데믹으로 극장개봉이 어려운 상황이라서 넷플릭스에 공개를 계획했으나 한 주연배우의 마약 혐의로 법적 문제가 생겨 OTT로 공개하는 것도 무산되고 4년이 지난 시점에서 뒤늦은 극장개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늦었으나 결과적으로 극장개봉을 하고 관객의 사랑을 받아 손익분기점을 넘긴 것은 감독이 평정심을 유지하며 무심(無心)으로 기다린 좋은 결과가 아닌가 싶다. 더불어 넷플릭스에도 일정이 잡혀 곧 공개를 앞두고 있다.

국민대학교 영화전공 이용주 교수
프랑스 Nouvelle Sorbonne대학교에서 D.E.A., 성균관대학교에서 불문학&비교문화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15년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영화전공 교수로 부임 했다. 주요 활동으로 한국문화예술교육학회 등 여러 학회에서 영화교육 연구를 활발히 진행했으며, 저서와 역서로 『영화, 길을 묻다』(저서), 『장 뤽 고다르의 영화 세계』(공저), 『로베르 브레송』(공저), 『영화미학』(역서)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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