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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반복의 미학:
<퍼펙트 데이즈>

빔 밴더스, 2023

(영화전공 이용주 교수)

ⓒ(주)티캐스트

영화에서 반복되는 요소들을 찾아내는 것은 영화를 이해하는 기본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인물의 행동, 음악, 대사, 소품, 영화적 공간, 카메라의 위치 등에 이르기까지 반복을 관찰할 수 있다. 한 편의 영화에서 의미 있는 반복적 요소를 모티브라고 부른다. 영화에서 유사성과 반복이라는 안정적 형식이 필요로 하나 차이를 만든다. 그것이 영화 전개의 추진동력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반복 요소를 발견하고 유사성과 차이를 발견하는 안목을 기를 필요가 있다. 독일의 거장 감독 빔 밴더스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3)에서 반복 요소의 유사성과 차이를 찾아보기로 한다.

ⓒ(주)티캐스트

<퍼펙트 데이즈>는 2022년 도쿄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맞아 공중화장실을 모두를 위한 공공화장실이 될 수 있도록 도쿄 시부야구가 진행한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The Tokyo Toilet)’를 계기로 빔 밴더스에게 의뢰하여 만든 영화이다. 이 프로젝트는 일본재단(Nippon Foundation)이 기획과 실행을 맡고 2018년 시부야구와 계약을 맺어 안도 다다오를 포함해 16명의 건축가가 참여해서 17개의 시부야구에 노후화되었거나 낙후된 공중화장실을 공공디자인 차원에서 예술적 심미성을 구현한 리모델링 사업이었다. 주인공 히라야마가 공공화장실을 청소할 때 입고 있는 작업복의 등판에 마치 청소회사 명칭 같은 ‘The Tokyo Toilet’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빔밴더스가 “리모델링 한 공중화장실을 보고 영감이 떠오른다면 영화를 한 편 제작해 달라”는 제안을 받고 도쿄에 와서 예술적 심미성을 살린 공중화장실의 공공디자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도쿄 화장실 프로젝트(The Tokyo Toilet)의 일환으로 독일과 일본의 합작영화로 제작된 것이다.

ⓒ(주)티캐스트

영화의 앞부분에서 주인공 히라야마의 반복되는 일상이 길게 소개된다. 여명의 시간에 일어나서 창을 통해 매일 다르게 보이는 빛을 보고 때로는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소지품과 동전 몇 개를 챙겨서 문을 나와 하늘을 한번 올려보며 미소를 지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하나 빼서 차 안에서 마시고, 올드 팝 테이프를 하나 골라 차량 카세트 플레이어에 넣고 음악을 틀고,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일터로 가서 몇 개의 화장실을 동료 한 명과 청소하고 점심시간에 신사공원의 벤치에 앉아 편의점에서 산 샌드위치와 우유를 마시고, 키 큰 나무 꼭대기의 나뭇잎들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고개를 들어 바라보며 밝은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에서 소형 필름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다. 그는 눈을 마주치는 주변인에게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오후에 화장실 청소를 끝내면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자전거를 타고 대중목욕탕에서 목욕하고, 지하철역 지하에 있는 이자카야에 들러 얼음 소주 한 잔과 간단한 음식을 저녁으로 먹고, 때론 맞은 편의 헌책방에 들러 100엔짜리 문고판 한 권을 사서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다가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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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공중화장실은 히라야마의 일터로 영화의 공간적 배경에 불과하나 그것이 갖는 메타포를 배제할 수 없다. 히라야마의 일상에서 모든 인간의 일상 반복 행위인 먹고 자고 배설 중 마지막의 배설 행위는 생략되어 있어서 그가 화장실을 청소하는 노동행위로 자신의 배설 행위를 대체하는 메타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나무와 바람과 햇빛이 만들어내는 반복되는 흑백 이미지의 인서트 컷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감독이 친절하게 쿠키 영상으로 덧붙인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의미하는 코모레비이다. 코모레비는 흑백 이미지가 대다수이지만 컬러 이미지도 삽입되고, 히라야마가 카메라로 찍은 흑백사진으로 표현되기도 하며, 사진을 담아내기 전에 히라야마의 시점(POV)으로 보이는 실제 장면으로 삽입되기도 한다. 마치 우리가 고개를 들어 공원의 큰 나무 꼭대기에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빛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코모레비는 히라야마가 매번 보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반복의 산물이다.

ⓒ(주)티캐스트

영화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소도구 중 중요한 기능을 갖는 카메라가 있다. 그것은 히라야마가 일상에서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이미지를 담아내기 위해 늘 소지하고 있는 도구적 기능의 소도구이다. 그러나 조카 니코의 카메라는 같은 것이나 어린 시절 외삼촌이 선물한 추억이 담긴 은유적 기능의 소도구일 뿐이다. 니코는 화장실 청소하는 외삼촌의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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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는 책도 중요한 소도구이다. 히라야마는 나무를 친구로 삼고, 공원에서 어린나무 묘목을 집에 옮겨다 심고 매일 아침 물을 주고, 나무에 관한 책을 잠자리에 들기 전 습관적으로 읽는다. 그것은 종려나무가 바람을 만나 바로 그 순간의 잎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창조하고 있는 장면의 묘사가 반복되는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1939)와 작가가 13년 6개월에 걸쳐 발품을 팔아 일본 열도 전역에 산재해 있는 나무들을 찾아다니며 교감한 체험을 담아낸 산문집 고다 아야의 『나무(木)』(1990)이다. 히라야마는 나무와 교감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또한 책이 히라야마가 지적인 사람임을 암시하는 기능도 있다. 또 한 권의 책은 파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1』(1955)이라는 범죄소설이다. 그것은 조카 니코가 데리러 온 엄마를 따라가며 “책의 주인공 빅터처럼 될지도 몰라”라는 말을 듣고 헌책방에서 다시 사서 읽은 책이다.

영화에서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는 클로즈업된 히라야마의 얼굴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가 아침에 문을 나서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 차에 타고 일터로 행할 때, 잠들어 있을 때 그의 얼굴은 클로즈업되어 있다. 특히 롱테이크로 촬영된 엔딩 장면(02:22)을 놓칠 수 없다. 그것은 히라야마의 웃픈 표정을 통해 삶의 여정을 축약해서 담아내고 있다. 여기서 히라야마를 연기한 야쿠쇼 코지의 농익은 표정의 노련한 연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장면은 차량 카세트 플레이어를 통해 흘러나오는 니나 시몬의 노래 <Feeling Good>과 함께 히라야마의 감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우리가 그것을 사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퍼펙트 데이즈>는 이 한 장면으로 감독이 추구하는 세계를 시각적 요소와 청각적 요소를 결합하여 완벽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 장면은 영화사에 명장면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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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히라야마의 삶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시점에서 애정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때 곧 반복되는 일상에서 오늘이 완벽하게 진정 내 것일 수 있다. 그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빛(코모레비)”처럼 천상의 빛이 될 수 있다. 히라야마는 아직 날이 환하게 밝지 않은 시간에 집을 나서면서 고개를 들어 허공을 바라보며 완벽한 하루를 꿈꾸듯 엷은 미소를 짓는다.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하루도 같은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이 유사하다고 하더라도 날마다 다르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히라야마가 가슴에 새기는 주문이고 의식일 수 있다. 그런 히라야마는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가슴 속에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가능하다. 오늘도 집을 나서며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볼 일이다.

국민대학교 영화전공 이용주 교수
프랑스 Nouvelle Sorbonne대학교에서 D.E.A., 성균관대학교에서 불문학&비교문화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2015년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영화전공 교수로 부임 했다. 주요 활동으로 한국문화예술교육학회 등 여러 학회에서 영화교육 연구를 활발히 진행했으며, 저서와 역서로 『영화, 길을 묻다』(저서), 『장 뤽 고다르의 영화 세계』(공저), 『로베르 브레송』(공저), 『영화미학』(역서)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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