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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끝나지 않을 전투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

(영화전공 이현재 교수)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펄프픽션>의 전 세계적인 히트 이후 독립영화의 상업적 가능성을 확인한 미국의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빠르게 대응을 시작했다. 바야흐로 인디우드 시대가 막을 열게 된 것이다.

이 시기를 거치며 미국 영화산업은 양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거두었지만, 질적으로도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20여 년 전부터 현재까지 할리우드와 독립영화의 교차점에서 비평가와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많은 감독이 이 시기에 처음 등장했다.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는<이터널 선샤인(2004)>의 미셸 공드리 감독데뷔작인 <리노의 도박사(1996)> 이후 <부기 나이트(1997)>, <매그놀리아(1999)>, <펀치 드렁크 러브(2002)>, <데어 윌 비 블러드(2007)> 까지 그의 작품들은 비평가의 찬사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여전히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개봉하여 평단 및 시네필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역시 예외는 아니다.

출처 : 네이버영화 워너브라더스

PTA의 작품들을 하나의 장르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다. 범죄 스릴러, 멜로 드라마, 시대극 등 장르적 외피는 매번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는 일관되게 미국 사회가 가진 불안정성과 모순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탐색한다. 그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미국 사회와 가치의 열렬한 수호자거나 혹은 배신당하고 상처받는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역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차이가 있다면 PTA의 영화 중 가장 높은 제작비를 활용, 블록버스터 영화의 외피를 가져감과 동시에 트럼프 이후의 미국 사회를 매우 노골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끝없는 전투’, ‘계속되는 투쟁’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사라진 딸을 찾아가는 아버지의 여정이라는 단순한 내러티브 구조를 띠고 있다. 하지만 미국 사회의 인종 문제, 반이민 정서, 극단적인 좌우의 정치적 대립, 혁명 집단과 권력층의 대립 등이 뒤엉키면서 이야기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출처 : 네이버영화 워너브라더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역할을 맡은 주인공 밥은 백인 남성이자 폭발물 전문가로서 ‘프렌치 75’라는 극단적인 좌파 혁명 조직의 일원이다. 어두운 과거를 가진 한 남자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움에 나선다는 설정은 그를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전형적인 주인공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혁명의 실패 후, 오랜 도피의 시간은 그를 영웅이 아닌 마약 중독과 편집증, 죄책감에 시달리는 실패한 중년 남성으로 변모시켰다.

밥의 아내이자 흑인 여성인 퍼피디아 베벌리힐스는 마성적인 매력을 바탕으로 혁명을 이끌었지만, 동지들을 배신하고 가족마저 버린 채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캐릭터 이름이 가진 이중성을 주목해야 한다. 과격분자이자 나르시스트, 쾌락주의자인 그녀의 행태는 아이러니하게도 기득권 세력의 공고화와 국가 시스템의 과도한 개입의 명분이 되고 말았다.

출처 : 네이버영화 워너브라더스

이들의 반대편에는 국가 시스템의 수호자로서 스티븐 록조가 등장한다. 극렬 극우파이자, 인종차별주의자, 매조키스트인 록조는 극우 백인들의 모임인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에 가입하기 위해 자신의 유일한 피붙이를 제거하려는 시도조차 서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이민자와 마약 단속, 테러 대응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 그의 행동에는 출세와 인종주의, 성적 집착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와 뒤틀린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현대 미국 사회가 내세우고 있는 핵심 가치가 사적인 욕망과 증오로 얼마나 손쉽게 치환될 수 있는지를 상징하고 있다. 이러한 입체적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 숀 펜의 괴물 같은 연기력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된다.

영화에서 PTA는 좌우 진영 어느 한쪽도 미화하거나 일방적으로 편들지 않는다. 이들은 온갖 명분을 내세워 자신의 전투를 정당화하지만, 끝까지 그 정당성에 면죄부를 부여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극단적인 좌파 혁명가들, 극우 백인 우월 인종주의들이 가진 모자람을 마음껏 비웃는다.

또 하나의 전투를 수행해 가면서 어쩌면 이 전투가 양 진영의 존재와 정체성을 유지하는 유일한 수단일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미국 사회는 좌우 양극단으로 나뉘어 갈등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의 무분별한 혐오 발언과 물리적 폭력까지 미국 사회는 인종, 성별, 출신성분, 사회적 계급으로 나뉘어 전투 그 자체에 매달리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에 우리는 왜 싸웠고, 누구를 위해
언제까지 이 싸움을 계속하는가?”

관객의 기대와 달리 영화는 승리한 혁명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의 고민은 시작되어야 한다.

국민대학교 영화전공 이현재 교수
미국 American Film Institute(AFI)에서 영화연출 전공으로 MFA를 졸업한 후, 2017년부터 국민대학교 예술대학 영화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산학협력과 현장중심의 실습 교육을 선도하며, 학교기업 할(HAL) 엔터테인먼트와 서울 RISE 사업 ‘창조산업인재양성’ 과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과 산업을 잇는 융합형 인재 양성에 앞장서고 있다. 저서로는 『미국독립영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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