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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향한 열정 이야기 나만의 해시태그

‘내 안의 기적’은 다양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국민*인들의 도전을 모은 이야기입니다. 이 코너에 소개된 내용들은 모두 국민대 웹진 공식 메일(kmu_unik@naver.com)로 사연을 보낸 국민*인들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목표를 이뤄가는 청춘들의 특별한 사연을 해시태그(#)로 엮어 소개합니다.

#도전은 용기 #고마운 동료 #가평 유원지 사업 #등록금 회수

안녕하세요! 저는 국민대학교에서 교육학을 공부하고 있는 26살 대학생 안앗빛이라고 합니다. 학점이 좋은 것도 아니고 대단한 성과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제 다양한 경험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저는 ‘아침햇살’을 뜻하는 제 이름처럼 호기심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많습니다. 친구들과 노는 게 가장 좋았던 제게 대학은 뛰어놀기 좋은 무대였습니다. 그러나 어리다면 어린 21살 때 저는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용기가 없어서 도전하는 법을 모르던 학생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새로운 것들을 보면서 해보고 싶은 게 생기면 항상 친구들에게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들 하고 싶은 것도 다르고 그만큼 시간을 내기 힘들다 보니 대부분 생각만하고 말았습니다.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친구들을 원망하기도 했고요. 고등학교와 별 다를 게 없는 대학생활 1년을 보낸 후 입대했습니다. 군대에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고, 전역 후에는 하고 싶은 일에 모두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첫 도전은 학교 축제 상설거리였습니다. 함께 할 동료를 모았지만 다들 하기 싫다는 반응을 보여 혼자 도전했습니다. 솜사탕을 팔기로 했죠. 준비과정은 험난했습니다. 차가 없는 저는 빌린 솜사탕 기계를 대중교통으로 옮겨왔고, 혼자 천막을 설치하곤 열심히 솜사탕을 만들었습니다. 왜 사서 고생하냐고 말리던 친구들이 혼자 고생하는 저를 보고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솜사탕 장사는 아침10시부터 저녁6시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을 만큼 대박을 쳤습니다. 가격 책정을 잘못해서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모두 안 될 거라 예상하던 걸 성공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때의 성공 경험이 이후의 도전에 용기가 됐습니다.

저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나는 이제 성인이니 더 이상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않을 거야!’라고 결심했습니다. 그 인생 최대의 실수 때문에 저는 대학 입학한 후 계속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과외, 학원 강사, 방송국 스태프, PC방, 축구교실 등 다양한 알바를 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다 2015년 여름, 가평과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그해 여름방학 내내 가평의 펜션에서 청소 알바를 했는데요. 일은 고되었지만 학기 중에는 알바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돈을 벌었습니다. 덕분에 개강 후에는 막노동, 방송국 등 단기 알바를 했습니다. 힘들 때마다 지금의 경험이 나중에 언젠가는 도움이 되리라 믿고 버텼습니다.

일 년 후 여름방학, 다시 펜션 일을 하려고 삼촌에게 연락드렸더니, 유원지에 빈 땅이 있는데 운영할 사람이 없다며 저에게 운영을 권하셨습니다. 유원지 물가에 방갈로를 설치해 관리하며 대여해주는 일이었죠. 저는 가평 생활도 해봤고, 잘 되는 걸 본 적이 있어서 아무 준비 없이 친구 한 명을 설득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모한 짓이었습니다. 친구와 저는 있는 돈 없는 돈을 모아서 땅을 임대했습니다. 망하면 학교에 못 다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쫄깃해졌습니다. (둘다 등록금을 여기 투자함) 종강 후 가평에 내려가 처음 그 땅을 봤을 때, ‘아,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년간 방치된 땅은 지금 생각해도 막막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도 시작을 했으니 하나하나 해보자며 청소와 정리를 시작했는데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친구와 후배들을 물놀이 시켜준다고 꾀어 데려와 일했습니다. 청소부터 방갈로 설치, 페인트칠, 물 펌프 설치, 화장실 설치, 풀 깎기, 전기 끌어와서 전구 달기, 홍보하기, 다른 유원지 노하우 알기 등 한 달간 정말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마무리 단계, 이제 대박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꽝이었습니다. 저희를 찾아오는 손님은 없었습니다. 하루에 1~2팀이 전부였고, 아무도 오지 않는 날도 있었습니다. 손님을 유치하러 길에 나가서 홍보도 해봤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습니다. 아침 일찍 나가서 홍보를 해도 지나가는 차가 없었습니다. 사업이 뜻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시기였습니다. 못해도 등록금은 건져갈 줄 알았는데, 이대로라면 원금 회수도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친구와 저 모두 경험삼아 시작한 일이었지만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통하지 않아 좌절했습니다. 날씨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비가 오면 방갈로를 철수했다 다시 설치해야 했거든요.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갔습니다. 한 달을 이렇게 보내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되었습니다. 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7월31일 연휴 시작 하루 만에 한 달간의 매출을 넘어설 만큼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손님들이 하나 둘 오기 시작하니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총 26개의 방갈로와 파라솔이 모두 팔려나갔습니다. 아침 8시에 매진될 때도 있고, 하루에 몇 번씩 손님이 바뀐 자리도 있었죠.
그 넓은 주차장에 차 댈 곳이 없어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손님이 많아지니 일도 많아져 몸은 힘들었지만 고생한 보람이 생기는 것 같아 기쁘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힘든 일도 있었습니다. 새벽에 자리 문의하는 사람들, 대여한 물품을 그냥 가져가는 사람들, 어리다고 무시하는 사람들. 울컥할 때도 있었지만 내가 선택한 일이니 책임지겠다는 마음으로 버텼습니다. 그렇게 바빴던 휴가철이 지나 저희는 목표 금액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정말 무모했던 도전이 아름다운 결말로 이어진 것입니다.

저는 이런 도전을 통해 몇 가지를 배웠습니다. 도전은 용기와 주위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죠. 도전할 때 실패를 두려워하면 아예 도전을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저도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안하고 후회하는 것 보다는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도전을 하면 ‘성공’ 또는 ‘실패’라는 결과가 나오지만 포기를 하면 ‘후회’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힘들 때 응원해주고, 잘될 때 축하해주는 친구와 가족의 소중함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업을 준비하며 힘들 때, 사람이 없어서 힘들 때 친구들에게 투정을 부리곤 했습니다. 그러면 친구들이 유원지에 놀러와 주었고, 갈 때는 “낼 건 내고 가는게 맞아. 밥이라도 사먹어”라며 저에게 유원지 이용료를 주고 갔습니다. 친구들은 유원지가 바빠지자 도와주러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친구들이 없었다면 저는 지쳐서 진작 포기했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다짜고짜 유원지 사업을 하자고 했을 때 동참해준 친구에게 많이 고맙습니다. “너랑 하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며 함께해준 고마운 친구와 서로 의지하며 버틴 것 같습니다.

요즘 저는 ‘선생님’이라는 꿈을 향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힘들겠지만 지난 도전처럼 잘 버텨서 꿈을 이루겠습니다. 여러분도 원하는 것이 있고,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열정을 가지고 도전해 꼭 이루길 바랍니다. - 안앗빛(교육학과 12)

#아이돌이 바꾼 삶 #스펙터클 내 인생 #기적은 #마음먹기 나름

10대 후반부터 제 안에서 일어났던 기적은 그 뜻만큼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결정장애’라 불릴 정도로 우유부단하고 나태하던 제가 ‘결단’을 내리며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된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저의 꿈은 기자입니다. 이런 꿈을 꾸게 된 계기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순수합니다. 또래보다 글과 말이 빨랐던 저는 유치원생 때부터 의문이 들면 수없이 질문하고 어른들 말에는 감히(?)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던 아이였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함께 TV뉴스를 보던 어느 날, 어른들은 제게 말 잘하니 아나운서가 되어라 하셨죠. 그 이야기가 당연한 듯 저는 당시 TV에 비친 김주하 기자 겸 아나운서를 롤 모델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현장 취재와 앵커직도 맡을 수 있는 기자를 계속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단순했던 저는 남들이 다니는 학원과 학교를 다녔고, 남들이 노는 것을 따랐고, 남들이 입는 것을 입었고, 남들의 선택을 따랐습니다. 스스로 어떤 것에 결단을 내릴 필요도, 새로운 것을 제시할 필요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남들을 따라 사는 게 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남들이 택한 삶보다 매력적인, 미치게 재미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바로 ‘2PM 오빠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보는 일, 춤과 노래를 익히는 일, 일거수일투족을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챙겨보는 일이었습니다. 2PM 오빠들의 일상이 제 일상이 되던 나날들 속에 저는 어느 날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직접 2PM 오빠들을 보러 가자!’
결심을 하자 저는 거침없이 움직였습니다. 학교를 조퇴하곤 팬 미팅 장소로 달려가기도 했고, 새벽 첫 차를 타고 혼자 공개방송이 열리는 방송국 앞에 가 하루를 꼬박 지내고 오기도 했습니다. ‘오빠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엔 전교생 서명을 받아 홀로 기획사를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남들에게는 ‘철없는 행동’으로 보이는 이런 행동들은 남들이 사는 대로 살아왔던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미치게 재미있는 일을 찾아 결단을 내리고 행동을 하면 남들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불안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려했던 나쁜 일도 없고, 재미있고 행복한 경험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이후로 저는 미치게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결단’을 내렸고, 즉시 ‘행동’했습니다.
다음해에는 또 다른 아이돌에게 반했습니다. 체계가 없는 팬 시스템을 보고 직접 팬 카페를 만들자고 결심했습니다. 팬 카페는 공식 팬 관리자와 소통하며 운영했습니다. 카페를 운영하며 천명에 달하는 팬들을 관리한 경험은 다른 경험으로 이어졌습니다. 학내 사안을 합의하고 싶어 고등학교 학생회에 들어갔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반장을 맡고 동아리를 창설했습니다. 또 TV에 나오고 싶어 KBS골든벨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느 날 TV에서 올림픽 축구경기를 본 후 눈앞에서 공이 날아다니는 걸 보고 싶어졌습니다. ‘직접 날아다니는 축구공을 보러 가자’는 결심과 함께 꼬박 1년을 인천 문학경기장에 출석하며 인천유나이티드를 응원했습니다. 원정경기를 보러 포항까지도 향하곤 했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스포츠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를 통해 스포츠 관련 지식을 쌓자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인연이 생겼고요. 이 경험은 대학에 들어와 스포츠경기 전문 촬영 채널인 'My play cam'의 크루로 활동하는 기반이 됐습니다. 'My play cam' 활동에서 배운 영상 활용 능력은 2016년 동기들과 웹 드라마를 제작하는 계기로 이어졌습니다. 재미있는 일들은 우유부단했던 저를 결단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제가 결단을 내리고 실천한 것들은 모두 좋은 경험으로 남았습니다.

대학은 더 많은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아주 넓은 세상이었습니다. 학부 학생회와 실습실(학회) 활동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때 만난 사람들은 학점에 목매는 대학생활이 아닌 함께 많은 것을 경험하고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게 주었습니다. 활동을 통해 배운 행사 기획력과 PPT 제작 능력은 보너스처럼 제게 남았습니다. 대학 입학 후 가장 원했던 학보사 기자의 꿈도 이뤘습니다. 국민대신문에 입사한 후 학내외 이야기를 제 손으로 작성해 종이신문에 올려내는 것은 제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이듬해에는 평소 관심 있던 광고학을 배웠습니다. 학과 공부와 병행해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기자단으로 활동하며 현업에 있는 분들에게 직접 듣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MBC 서포터즈로 활동하며 꿈에 그리던 아나운서와 PD를 보며 언론인의 꿈을 더욱 키울 수 있었습니다. 아, 개교70주년 홍보도우미로 활동하며 수험생 시절부터 원하던 대학홍보도우미의 꿈도 채워갈 수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내안의 기적은 거창한 게 아니었습니다. ‘결정장애’로 불릴 만큼 사소한 선택 하나 스스로 내리지 못하던 게으름뱅이가 변화한 모습일 뿐입니다. 매력적인 일을 찾고 그 일을 하겠다고 결단을 내릴 때마다 제 모습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점심 메뉴 하나 선택하지 못했던 제가, 잠을 하루 최대 22시간까지도 잤던 제가 삼일 밤을 꼬박 새기도 하고 남들이 만류하는 일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그건, 그 일들이 저의 뼛속 깊은 우유부단함과 게으름, 불안감도 이겨낼 만큼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거창한 기적이 인생을 바꾸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간절히 원하는 일들을 따라 행동한, 사소한 결단들이 제 인생을 바꿔나간 것일 뿐입니다. 앞으로도 저는 미치게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결단’을 내리고 즉시 ‘행동’하며 기적을 계속 써가고 싶습니다.- 김민솔(언론정보학부 15)

#세무사 시험 합격 #성공적인 수험생활 #2년간의 시험준비 #자신감

저는 53기 세무사로 합격한 경제학과 13학번 정호중이라고 합니다. 세무사 시험이나 다른 전문자격증 시험에 관심 있는 학우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고등학교 시절, 제 꿈은 회계사였습니다. 전문직을 가져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거든요. 진학도 경영학과와 경제학과를 고민하다 경제학과로 진학했습니다. 1학년 2학기에 들었던 회계학원론 수업에서 제가 회계학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요. 회계사를 향한 꿈의 본격적인 시작이었죠. 이후 사회복무요원으로 군복무를 하게 됐을 때, 어떻게 하면 군생활 2년을 뜻깊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회계사 시험을 응시하기 위한 취득학점이 부족했어요. 실망만 하고 있을 순 없었기에 회계사와 유사한 자격증을 찾아보던 중 ‘세무사’ 자격증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세무사 시험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과연 내가 합격할 수 있을까? 공부를 하면서 이런 의문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세법 규정을 이해하고 암기했다고 생각했지만 모의고사를 보면 판례와 문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틀리는 일이 수두룩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문은 불안으로 이어졌고 스트레스를 유발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좌절하고 낙담했다면 지금의 결과를 얻을 수 없었을 겁니다. 학원 책상에 앉아 점수압박으로 손이 부르틀 때까지 깜지를 쓰고 있었을 거에요. 저는 불안한 마음이 들 때면 혼잣말로 “괜찮아, 다음에 틀리지 않으면 된다”며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또 미래에 ‘대표세무사 정호중’이라는 명패 뒤에 앉아있을 저를 그리며 마음을 다잡았어요.

2년 반의 고생 끝에 2016년 11월2일, 53기 세무사 최종합격이라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마침, 합격 발표일이 제 생일이라 24년 인생 중 최고의 생일로 기억하게 됐습니다. 시험결과에 적힌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보고 손발이 저릿저릿하고 숨이 차오르던 감격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2차 시험에서 한 과목이 과락을 간신히 면하는 점수로 합격했거든요. 실감이 나지 않아 한 달 동안은 2~3일에 한 번씩 큐넷(한국산업인력공단 자격시험신청 사이트)에 들어가 몇 번 씩 조회하곤 했습니다.

제가 고3 수험생 시절부터 품어온 좌우명은 ‘결과는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 입니다. 공인회계사, 세무사, 노무사, 감정평가사, 관세사 등 전문자격시험을 준비하는 학우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본인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2년 반이라는 수험시간 동안, 중간에 잃어버리거나 버린 볼펜을 제외하고 총 126자루를 모았습니다. 다 쓴 모나미 볼펜 126자루가 저의 노력을 대변해줍니다. 감히, 말씀 드리자면 전문자격시험은 단기간에 합격할 수 있는 시험이 아닙니다. 준비 중에 포기해야할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달콤합니다. 합격에 대한 간절함과 고3 수험생 시절로 돌아갈 자신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시험입니다.- 정호중(경제학과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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