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성곡도서관 학술서비스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주민철입니다. 국민대학교 기계공학부를 졸업했고, 지금은 국민대학교에서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Q2. 공학도로서 모교인 우리 대학 도서관에 입사하신 이력이 독특합니다.
A. 지금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대학생 시절 태양광자동차 동아리 활동과 관련이 있습니다. 호주에서 열리는 월드솔라챌린지라는 세계대회에 출전을 준비한 적이 있는데요. 국내 대회와는 달리 차량의 크기도 크고 제작 난이도도 높아서 학교 안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았고, 결국 전남과 경남에서 6개월 넘게 머물며 작업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완성한 차로 대회에서 호주 대륙 3,022km를 완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남 항공우주센터의 한 선임기술원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좋은 장비만큼이나, 그 장비의 사용법을 알려주고 문제를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걸 그때 느꼈습니다. 이후로 저도 누군가의 도전을 위해 경험과 기술을 나눠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마침, 졸업을 앞두고 국민대학교 도서관에 메이커스페이스가 개설되면서 운영 인력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고, 제 전공과 경험이 요건과 잘 맞아 이 자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Q3. 그렇다면 지금 하고 계신 업무는 무엇인가요?
A. 성곡도서관의 메이커스페이스인 해동 K*reator’s Library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학생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도록 제작 장비와 교육을 제공하는 공간입니다. 3D프린터, 레이저커팅기, CNC 같은 장비를 운영하면서 학생들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제작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도 함께 고민합니다.
학생들은 수업 과제나 졸업작품, 창업 같은 여러 이유로 찾아옵니다. 처음엔 “이런 걸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아이디어만 들고 오는 경우도 많은데요. 그러면 어떤 장비가 맞을지 같이 고민하고 사용법을 알려준 뒤, 학생이 직접 설계하고 고쳐가며 결과물을 만들어갑니다.
대신 만들어주는 곳이라기보다는,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방법을 익히는 곳에 가깝습니다. 대학생 때 제가 여러 기관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받았던 기억 때문인지, 처음 해보는 학생들이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덜 겪도록 옆에서 방법을 찾아주는 게 지금 제 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Q4. 수많은 취미 중에 ‘클라이밍’을 선택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사실 클라이밍을 처음부터 ‘선택했다’기보다는, 백패킹과 등산을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취미의 범위가 넓어진 경우에 가깝습니다.
처음에는 배낭을 메고 산을 걷고, 직접 텐트를 치며 자연 속에서 머무는 백패킹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등산도 자주 하게 됐고, 단순히 산을 걷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더 높은 곳에 직접 올라가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클라이밍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막상 배워보니 공학을 전공한 저에게는 묘하게 익숙하면서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클라이밍은 단순히 팔 힘으로 버티며 올라가는 운동이 아니거든요. 몸의 중심을 어디에 둘지, 어느 방향으로 힘을 써야 할지, 다음 홀드를 잡기 위해 어떤 동작을 취해야 할지를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머릿속으로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을 그려보고, 그것을 실제 몸의 움직임으로 구현하는 과정이 마치 하나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백패킹과 등산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관심으로 시작했지만, 이렇게 눈앞의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재미와 목표했던 루트를 완등했을 때의 성취감에 빠져 지금은 가장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취미가 됐습니다. 올해로 클라이밍을 시작한 지 4년 차인데요. 요즘에는 5.11a 난이도 완등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일주일에 2~3회 꾸준히 클라이밍장을 찾고 있습니다.
Q5. 다른 취미들에 비해 ‘클라이밍’만이 가진 매력 포인트가 있을 것 같습니다.
A. 저는 클라이밍 중에서도 리드클라이밍을 가장 좋아합니다. 리드클라이밍은 약 15m 높이의 벽을 오르면서 중간중간 설치된 확보물에 직접 로프를 걸고, 추락에 대비하며 정상까지 올라가는 방식입니다.
사실 매번 올라갈 때마다 무섭습니다. 조마조마해요. 로프가 있고 땅에서 빌레이어(아래에서 로프를 조절해주는 사람)가 잡아주고 있다는 걸 알아도, 떨어지기 싫은 마음은 사라지지 않거든요.
그래서 클라이밍은 단순히 신체적인 능력만으로 잘할 수 있는 운동은 아닌 것 같습니다. 충분한 실력이 있어도 높은 곳에서 두려움에 압도되면 평소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결국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음 단계로 올라가려면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스스로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충분히 연습하고 자신의 몸과 실력을 이해한 상태에서 한계를 조금씩 넘어서는 것, 저는 그 과정이 클라이밍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동작을 보여주실 때는 굉장히 쉽게 보이는데, 막상 그대로 따라 해보면 잘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사람마다 키와 팔 길이, 힘, 유연성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가장 좋은 동작이 저에게도 정답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결국 여러 번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면서 제 몸에 가장 잘 맞는 움직임을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그렇게 고민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풀리지 않던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의 성취감은 정말 큽니다. 특히 여러 번 도전했던 루트를 끝내 완등하고, 15m 높이의 벽 꼭대기에서 마지막 로프를 건 뒤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은 지금도 늘 두근거립니다.
Q6.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A. 태국 끄라비에서 했던 클라이밍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장비를 메고 산으로 들어가 암벽을 만나는데, 끄라비에서는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가 해변 바로 앞에서 클라이밍을 합니다. 40m쯤 되는 벽을 한 번에 오르기도 했는데, 올라가다 뒤를 보면 아래에 바다가 펼쳐져 있어요.
바위도 한국이랑은 많이 달랐습니다. 석회암이라 생김새부터 독특하고, 어떤 부분은 유난히 매끈해서 손이 잘 안 걸리는 구간도 있었고요. 어디를 잡고 어떻게 올라갈지 살펴보는 것부터가 꽤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이 잘 안 통해도 같이 클라이밍을 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Take”, “Slack” 같은 기본적인 로프 신호만 알면 같이 오르는데 충분하더라고요. 이런 건 한국에서도 똑같이 쓰는 말이라 현지에서도 금방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끄라비를 다녀온 뒤에는 자연암벽을 좀 더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지금 세운 다음 목표가 북한산 인수봉 멀티피치 등반입니다. 멀티피치는 하나의 긴 암벽을 여러 구간으로 나누어 이어서 오르는 방식인데요. 아직은 배워야 할 것도, 연습해야 할 것도 많지만 언젠가는 인수봉의 긴 벽을 제 힘으로 끝까지 올라가 보고 싶습니다.
Q7. 클라이밍을 하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새롭게 보게 된 경험도 있었나요?
A. 클라이밍을 계속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금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그러다 보니 훈련에 필요한 것도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훈련할 때 사용하고 싶은 도구가 있어서 직접 설계한 뒤 3D프린터로 제작해 본 적도 있습니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수업이나 과제로 무언가를 만들 때 주어진 조건에 맞춰 결과물을 완성해야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에는 출발점부터 달랐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클라이밍을 더 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제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니까요. 일단 만들어서 사용해 보고, 불편하거나 아쉬운 부분이 있으면 다시 설계해 출력하는 과정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도 꼭 수업이나 과제, 공모전처럼 정해진 목적이 있을 때만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공이나 취미, 일상에서 발견한 작은 필요를 직접 해결해 보는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창한 아이디어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이게 조금 불편한데 바꿔볼 수 없을까?’라는 작은 호기심에서 충분히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해동 K*reator’s Library가 학생들이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직접 구현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관심사를 전공과 연결해 직접 설계하고, 만들고, 실패하면 다시 고쳐보는 경험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비교과 프로그램도 한번 운영해보고 싶고요.
Q8. 배우자분과도 클라이밍을 비롯한 여러 취미를 함께 즐기고 계신다고요.
A. 생각해 보면 저희 부부에게는 ‘함께 배우고 경험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취미인 것 같습니다. 클라이밍뿐 아니라 수영, 백패킹, 자전거 등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일을 계속 함께해 왔습니다. 한 사람이 먼저 관심을 가지면 “우리도 한번 해볼까?” 하며 같이 시작하고, 재미를 느끼면 자연스럽게 일상의 취미가 되거나 새로운 여행으로 이어지는 편입니다.
수영도 1년 넘게 아침마다 함께 강습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프리다이빙에 관심이 생겨 국내에서 교육을 받았고, 나중에는 아예 프리다이빙을 할 수 있는 곳을 여행지로 정해 떠나기도 했습니다. 클라이밍 역시 함께 배우기 시작해 태국 끄라비까지 가서 자연암벽을 함께 올랐고요. 돌이켜보면 취미 하나가 또 다른 취미를 만들고, 그 취미가 다시 여행과 새로운 경험으로 이어져 온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서로 리드클라이밍의 빌레이를 봐줄 때입니다. 리드클라이밍은 한 사람이 벽을 오르는 동안 다른 사람이 아래에서 로프를 조절하며 안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높은 곳에서 벽을 오르다 보면 결국 아래에서 로프를 잡고 있는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는데요. 제가 가장 믿는 사람에게 제 안전을 맡길 수 있다는 사실이 좋습니다. 반대로 아내가 오를 때는 제가 같은 마음으로 아래에서 로프를 잡아주고 있고요.
Q9. 해외에서도 클라이밍과 트레킹을 즐기고 계신데,
국내에서 취미를 즐길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A. 더 어렵고 먼 곳에 가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좋아하는 걸 계속하다 보니 국내가 아닌 다른 곳에서의 느낌이 궁금해졌습니다.
가장 매력 있게 느껴졌던 곳은 최근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뚜르드몽블랑(TMB)입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에 걸쳐 몽블랑 산군을 9박 10일 동안 걷는 약 170km 코스인데요. 텐트와 침낭 같은 비박 장비를 포함해서 10kg 정도 되는 배낭을 메고 매일 걸었습니다.
멋진 풍경도 정말 많이 봤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의외로 걸어서 국경을 넘었던 경험입니다. 한국에서 ‘국경을 넘는다’고 하면 보통 공항이나 비행기부터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TMB에서는 그저 산길을 계속 걷다 보면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다시 스위스로 넘어갑니다. 거창한 경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똑같이 이어진 길을 걷다가 어느 순간 나라가 바뀌어 있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TMB를 떠올리면 웅장한 몽블랑의 풍경만큼이나 그 순간이 먼저 생각납니다.
여담이지만 이 ‘비박(bivouac)’이라는 말, 프랑스어에서 왔다는 거 아셨나요? TMB를 걷다가 비박이라는 단어가 적힌 표지판을 봤는데, 평소 익숙하게 쓰던 단어를 현지에서 다시 만나니 새삼 재미있더라고요. 이런 소소한 발견 역시 여행의 재미였습니다.
그렇게 다른 환경에서 걷고 돌아오면 평소 다니던 한국의 산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예전엔 그냥 지나쳤던 나무나 길이 새롭게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요. 오히려 해외에 다녀와야 '우리나라 산은 이런 모습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또렷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곳을 보는 것도 좋지만, 익숙했던 곳을 다시 보게 되는 것도 해외에서 얻는 재미 중 하나입니다.
Q10. 마지막으로 앞으로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A. 가까운 목표는 올해 12월, 아내와 함께 가는 히말라야 ABC 트레킹입니다. 그러고 보니 또 해외네요. 그걸 목표로 산에 다니고 클라이밍하면서 체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다음 목표는 아직 정해두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를 해보고 나면 거기에서 또 하고 싶은 게 생기는 편인 것 같습니다. 등산을 하다가 클라이밍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해외에서 암벽을 올라보고, 긴 트레킹도 해보게 된 것처럼요.
일에서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지금 맡고 있는 일을 충실히 해나가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직접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앞서 클라이밍 훈련에 필요한 도구를 직접 설계하고 만들어봤던 것처럼, ‘한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 거기에 제대로 빠져보는 것이 저와 잘 맞는 방식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몇 년 뒤에는 반드시 이것을 해야겠다’라는 목표를 정해두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하나씩 경험하면서 그 안에서 다음 도전을 발견해 나가고 싶습니다. 하나의 경험이 또 다른 호기심으로 이어지고, 그 호기심이 다시 새로운 도전이 되는 삶, 지금처럼 그렇게 계속 살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