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로 현대인의 감성을 날카롭게 건드려 온 박해영 작가의 신작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최근 방영을 시작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화계라는, 한없이 화려해 보이는 무대 위에서 20년째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주인공 황동만이 주변 사람들의 무시, 그리고 자기혐오와 싸워나가는 이야기다. 화면 속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며 한 영화가 떠올랐다. 거장 코엔 형제의 작품으로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지만 유독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럼에도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소개하고 싶었던 영화 <인사이드 르윈(Inside Llewyn Davis)>(2013)이다.
출처 : 네이버영화포토 ㈜블루미지
영화는 1960년대 초반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르윈은 포크 가수로 얼마 전 앨범을 냈지만, 상업적으로는 완전히 실패했다. 솔로 데뷔 전에 듀오로 함께 활동했던 동료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변변한 겨울 코트 한 벌 없이 얇은 재킷에 의지한 채 친구 집 소파를 떠돌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그의 일상이다.
영화 속 포크 음악은 단지 주인공의 직업을 설명하는 요소는 아니다. 1960년대 초반은 미국 대중음악사의 과도기였다. ‘엘비스 프레슬리’로 대표되는 50년대 음악산업의 황금기가 지나가고 ‘비틀즈’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 불평등, 전쟁, 불의에 맞서는 저항 음악 포크가 대중의 인기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장르의 특성상 가사가 중요했던 포크는 지식인이 아니면 즐기기 쉽지 않았고 일반 대중에게는 음악적으로 단조롭게 느껴졌다.
르윈의 여정도 포크 음악처럼 전형적인 성공 서사를 의도적으로 배격하고 있다. 대개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결핍을 극복하고, 성장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지만 이 영화는 이러한 거짓된 희망을 가차 없이 해체한다. 르윈은 늘 까다롭고, 신경질적이며, 사랑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이런 모습을 통해 그는 자신이 처한 교착 상태와 우울증적 내면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출처 : 네이버영화포토 ㈜블루미지
그럼에도 이 영화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이야기는 이처럼 완벽하게 실패한 예술가의 삶이 결코 무가치하지 않다는 데 있다. 잔혹한 현실과 일상의 반복, 주위 사람들의 무시에 시달리면서도 음악을 놓지 않는 르윈의 모습은 그 나름대로 우리에게 위로를 선사한다. 승자만이 살아남는 현실 속에서, 조용히 잊혀간 실패자들의 노력이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무명의 포크가수 르윈 데이비스가 무대를 지켜내지 않았다면, 밥 딜런이라는 시대의 아이콘에게는 싹을 틔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영원할 것 같이 춥고 지독한 르윈의 겨울은 밥 딜런이라는 봄을 잉태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무가치함’이라는 단어가 화두로 던져진 지금, <인사이드 르윈>은 느리고 침착하게 들여다보기 좋은 작품이다. 우리의 인생이, 그리고 이제 막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청춘들의 삶이 영화 속 르윈처럼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겨울의 한복판을 통과하더라도, 그 시간 자체가 숭고한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61년 뉴욕, 추운 겨울을 버텨내는 또 한 명의 황동만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우리 모두를 닮은 그가 자신의 노래를 부르짖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