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 1]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의 보고가 보존되어 있는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는 파올로 우첼로와 마사치오와 같은 유명한 작가들의 작업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그러나 본당의 주요 제단화를 장식하고 있는 토나부오니 채플(Tornabuoni chapel)을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본당 내부에는 후원자들의 의뢰를 받아 제작되어 가족명으로 불리는 가족 예배당들이 다수 있는데, 그 중 토나부오니 채플이 주요 제단에 자리 잡고 있다. 이 프레스코는 이 성당에서 가장 큰 규모의 벽화이면서 보존 상태가 좋아 전체를 볼 수 있다(도1).
지오바니 토나부오니(Giovanni Tornabuoni)는 이 작업을 의뢰할 당시 피렌체 금융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경쟁자인 메디치(the Medici)가(家)와 결혼, 사업, 정치적으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었다. 그는 1485년에 프레스코의 대가인 피렌체 출신의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Domenico Ghirlandaio, 1449-1494)에게 가족 예배당의 장식을 의뢰하였다. 이 가족 예배당은 1490년에 완성되었으며 이 과정에 1487년부터 기를란다이오에게 배웠던 14세의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도 잠시 참여하였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는 보석상이었던 아버지 아래에서 보석 세공가로 활동하면서 피렌체 여인들이 좋아했던 보석장식 화관, 머리띠, 목걸이를 잘 만들었으나, 이후 회화와 모자이크를 배우고 화가로 활동하면서 프레스코의 대가로 명성을 얻었다.
▲ [도 2]
▲ [도 3]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주요 제단의 세 벽을 장식한 토나부오니 채플 벽화에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와 세례 요한의 생애의 주요 장면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각 장면에서 당시 피렌체의 거리 풍경과 생활상이 펼쳐지며 피렌체의 역사를 기록한 영화처럼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고대 로마 유적의 파편들을 연상시키는 개선문과 신전들의 모습이 마치 무대에 연출된 것처럼 원근법에 기초한 공간 착시가 잘 구현되었고, 역사적인 인물들의 초상화가 성서의 이야기 안에 함께 제시되고 있다(도2). 이렇게 후원자들, 혹은 화가 자신의 모습이 성서의 이야기에 함께 등장하는 것은 르네상스 시기에 흔하게 볼 수 있다. 과거의 유적과 피렌체의 현재가 공존하는 이 작업에는 토나부오니 가와 메디치 가의 구성원들이 성서와 연계된 다양한 사건에 동참하는 인물들로 등장한다(도3).
▲ [도 4]
▲ [도 5]
제단을 바라보면서 마주하게 되는 이 채플의 왼편에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도4), 오른편에는 세례 요한의 생애가 대칭 구조로 펼쳐진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었으며, 세례 요한은 피렌체의 수호 성인인 것을 고려할 때 상징적인 중요성을 담고 있다. 성서에서 중요한 이 탄생 장면들은 피렌체의 건축을 배경으로 전개되고, 토나부오니 가의 주요 여성 인물들이 성스러운 탄생의 장면에 참여함으로써 토나부오니 가의 세속적인 지위가 영속되기를 바라는 의도를 보여주기도 한다(도5).
▲ [도 6]
이렇게 성서의 사건이 15세기 말 피렌체 귀족의 생활상과 연계되어 재구성되어 있는 벽화들 중 성모 마리아의 탄생 장면을 살펴보자(도6). 성모 마리아의 부모에 대한 언급은 신약 성서에는 없으나, 마리아의 정결함과 영적인 정통성을 강조하는 외경의 기술을 포용하여 작업이 구성되었다.
▲ [도 7]
▲ [도 8]
성 안나가 침상에 앉아 있고 유모들이 아기 마리아를 안고 있는 이 방은 피렌체의 르네상스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특히 흥겹게 춤추는 아기 천사들(putti)의 부조로 장식된 프리즈는 고대 그리스-로마 전통을 회상시키며, 다산을 상징하면서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는 세속적인 상징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와 함께 프리즈 하단에 라틴어로 적힌 글에는 예수의 어머니 탄생이 세상의 기쁨이라는 내용으로 마리아의 탄생을 축하하고 있다(도7).
한편,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마리아의 탄생을 축하하고자 들어와 화면 중앙에 서 있는 여인이 눈길을 끈다. 이 여인은 지오바니 토나부오니의 외아들인 로렌조(Lorenzo Tornabuoni)의 딸 루도비카(Ludovica Tornabuoni)의 초상화로 알려져 있다(도8). 부조로 제시된 춤추는 천사들의 동세 뿐 아니라 다른 여인들의 동적인 자세와는 대조적으로 부동의 자세로 옆면으로 서 있는 이 여인은 마치 화려하게 장식된 기념비처럼 서 있는 듯하다. 이것은 사실적인 초상화이기보다는 피렌체 여인의 정결함과 인성의 덕목을 갖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 [도 9]
루도비카의 이 초상화는 맞은편 벽에 그려진 세례 요한의 생애에서 마리아가 엘리자베스를 방문하는 장면에 등장한 지오바나(Giovanna degli Albizzi)의 초상화와 동일한 자세로 제시되며, 토나부오니 가의 문장이 있는 같은 색의 천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도9). 예수와 세례 요한을 각각 잉태하고 있는 두 여인이 만나는 장면의 증인으로 서 있는 지오바나의 초상화는 토나부오니 가의 영예로운 지속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그러나 지오바나가 1488년 출산 직후 19세의 나이에 사망했기에 이 초상화는 출산의 기쁨 이면에 드리운 로렌조의 젊은 부인에 대한 애도가 깃들여 있기도 하다.
이처럼 토나부오니 채플의 프레스코 벽화는 15세기 말 피렌체 귀족의 생활상과 의복, 생활 관습, 건축 등의 당대의 문화적인 맥락에서 성서의 주요 인물들의 생애를 재해석하여 제시하였고, 토나부오니 가계의 명성과 지위에 대한 종교적, 사회적인 인정을 가시화하였다. 제단화로서 중요한 작업이지만, 성서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할에 주력하기보다는 당대 피렌체 사람들에게 토나부오니 가의 지위를 공고히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피렌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려는 인본주의적인 욕망이 기를란다이오의 원숙한 기량으로, 성공적으로 구현되었다고 보여진다.
captions
도1. Tornabuoni chapel, Basilica of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Italy, 1485-1490.
도2. Domenico Ghirlandaio, The Expulsion of Joachim from the Temple, 1486-90, fresco, Cappella Tornabuoni,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도3. Domenico Ghirlandaio, Angel Appearing to Zacharias, 1486-90, fresco, Cappella Tornabuoni,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도4. Domenico Ghirlandaio, The Life of the Virgin, 1486-90, fresco, Cappella Tornabuoni,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도5. Domenico Ghirlandaio, The Birth of John the Baptist, 1486-90, fresco, Cappella Tornabuoni,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도6. Domenico Ghirlandaio, The Nativity of Mary, 1486-90, fresco, Cappella Tornabuoni,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도7. Detail of The Nativity of Mary, 1486-90, fresco, Cappella Tornabuoni,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도8. Detail of The Nativity of Mary showing Ludovica with her retinue, 1486-90, fresco, Cappella Tornabuoni,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도9. Detail of The Visitation showing Giovanna degli Albizzi, 1486-90, fresco, Cappella Tornabuoni, Santa Maria Novella, Flore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