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5일에 개최될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 어느 해보다 치열한 각축전이 될 전망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PTA)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크리틱스 초이스, 골든 글로브, 영국 아카데미(BAFTA) 등 주요 영화제를 휩쓸며 유력 작품상 후보로 거론되는 가운데, <씨너스: 죄인들>, <프랑켄슈타인>, <센티멘털 밸류>등 화제성 높은 작품들이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화제작이 있다. 무려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조쉬 사프디 감독의 <마티 슈프림>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포토 (넷플릭스)
사프디라는 이름은 국내 관객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현시점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는 제작·배급사인 A24가 창사 이래 최대의 예산을 투입하고 할리우드 최고의 청춘스타 티모시 샬라메가 영화의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독과 작품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사프디 감독이 이룩한 영화적 성취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잠시 되돌려 2019년, 동생 베니 사프디와 공동 연출한 넷플릭스 영화 <언컷 젬스>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포토 (넷플릭스)
영화는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부 뉴욕의 다이아몬드 거리를 배경으로, 스포츠 도박 중독자이자 보석상인 하워드의 여정을 시종일관 숨 가쁘게 뒤쫓는다. 일확천금과 생존을 향한 하워드의 맹목적인 욕망 추구는 그를 끊임없이 파멸과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는 동시에 관객들의 등을 땀에 적시게 만든다. 영화를 본 많은 사람이 이 영화가 주는 최고의 매력으로 예측 불가능한 내러티브 전개를 이야기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혁신성은 내러티브 자체에 있지 않다. 평단과 대중을 동시에 사로잡았던 <언컷 젬스>의 탁월함은 관객들로 하여금 하워드의 심리 상태에 강제로 동기화시키는 시청각적 장치의 활용에 있다.
사프디 형제는 <언컷 젬스> 특유의 거칠고 즉흥적인 분위기를 고전 영화의 형식적 우아함과 결합하고자 디지털카메라와 필름 카메라를 혼용하여 촬영했다. 캐릭터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선택한 익스트림 클로즈업 쇼트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배우들의 초점을 잡아내기 위해 첨단 포커스 장비를 도입했다. 피사체의 초점을 완벽하게 통제해 낸 이 성취는, 우발적은 느낌과 완벽한 형식이 공존하는 독창적인 미학을 완성했다. 색채의 활용 또한 치밀하다. 화면 전반에 차갑고 탁한 녹색 톤을 주입하는 동시에, 뉴욕의 밤 조명과 하워드의 상점 내부에는 탐욕을 상징하는 황금빛을 배치했다. 초록색과 황금색이라는 극단적인 보색 대비는 하워드가 맹목적으로 좇는 일확천금과 시시각각 그의 목을 조여오는 어두운 현실의 충돌을 극대화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포토 (넷플릭스)
시각적 압도감 못지않게 관객의 감각을 지배하는 것은 청각적 혼란이다. 등장인물의 대사가 쉴 새 없이 겹치고, 뉴욕의 거리가 뿜어내는 소음, 다이아몬드 거리의 번잡함, 전화벨 소리 등이 정교하게 작곡된 음악과 끊임없이 뒤엉키며 불협화음을 빚어낸다. 영화 음악은 단순한 배경음 역할을 넘어 대사와 현장음을 집어삼킬 듯 전면으로 나서기도 한다. 하워드의 신경증적이고 불안정한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음악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다 갑자기 멈춰버림으로써 관객들에게 극도의 압박감과 고요한 침묵을 동시에 전달한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다큐멘터리적인 즉흥성의 산물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정교한 오디오 디자인을 통해 정교하게 연출된 결과물이다. 도덕적 결함과 그릇된 욕망으로 점철된 반영웅의 여정을 관객으로 하여금 끈질기게 추동하며, 영화는 그를 결코 응원할 수 없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그의 강박적인 정신세계에 동화되어 함께 호흡하도록 이끈다. 이 경이로운 성취 덕분에 조쉬 사프디 감독은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주의 감독의 반열에 올랐고 이제라도 <언컷 젬스>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